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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칼럼

8월 지리산에 다녀와서(3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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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작은 계곡이 보입니다. 저는 칠선계곡에 갈 수 없으니, 여기서라도 지리산 계곡물에 발을 담글 수 있겠다 싶었죠. 도보여행자들에게는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없을 것입니다.

처음엔 모두 가만히 발을 담그고 과일 따위를 먹을 뿐이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슬슬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기왕 물을 만난 김에 아예 목 아래까지 잠수하기, 나뭇가지 흔들어 잎과 부스러기 떨어뜨리기, 물 장난치기 따위의, 계곡에 오면 으레 하는 놀이를 하며 잠시 행복해합니다.

저의 눈엔 마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계곡버전으로 옮겨놓은 듯 보이네요.

시원한 물을 만나 즐거운 데에는 '나이'도 없습니다 -.- 오히려 더 즐거워하시는…

물에 젖은 발을 굳이 말릴 틈도 없이 아예 맨발로 흙길을 걷습니다(굳은살 필수).

그런데 조금 더 걸어가니 더 넓은 계곡이 등장하더라구요! 신발 다시 벗을까 잠시 고민했었습니다.

계곡을 나와서 산길을 걸었습니다. 정말 울창한 숲과 가파른 절벽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길이에요.

가장 인상이 남는 구간입니다. 햇빛이 드는 탁트인 길 주위에 높은 나무들이 둘러싸여있는데, 저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죠.

스스로 '가이드'를 자임한 김영숙 활동가. 이날 복장 역시 너무나 가이드와 어울려서 다른 일행 역시 인정했습니다. 배넘이재에서 '가이드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청에 이런 표정이 나오네요.

줄기가 굵고 하늘로 곧게 쭉 뻗은 나무들을 보면 왠지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거의 마을 가까이 오니, 밭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른쪽 식물은 '꼬사리'(팻말에 정말 '꼬사리'라고 적혀있었어요).

어째 쉬는 모습만 보여드리는 것 같네요. 편집자 마음대로입니다. 다들 어디를 보는 것일까요? 제 기억에, 모처럼 흡연시간을 즐기는 박모 팀장님을 함께 바라보며 누군가 이렇게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냄새 나" -.-

하지만 이분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번엔 또 뭘하는 걸까요. 장항교에 매달린 밧줄을 보고 잡아당겨보는군요. 도저히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은 우리 일행은 내친 김에 실상사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이날의 점심은 거의 '폭식'에 가까웠죠. 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습니다. 비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경치가 더 또렷히 보였답니다.

목적지에 근접했음을 이 플랭카드를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박모팀장과 저는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짜서 지리산댐 반대를 위한 연대 퍼포먼스를 생각해냈습니다. 원래는 모두가 다같이 하려고 했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아서(-.-) 이분이 대표로 도로 위에 섰습니다. 물론 저의 역할은 '찍사'

보행로가 좁아서 우리는 나란히 걸어야했습니다. 어느덧 여름해가 지고 있던 모양이에요. 그림자 역시 나란히 걷고 있습니다. 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실상사입니다.

양산의 주인공 김희경 활동가의 단독샷에 성공. 길 한편에 연꽃이 넓게 피어있었습니다.

실상사 방문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느긋한 관람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실상사 보광전과 그 앞에 있는 하나의 석등, 두 개의 삼층석탑을 둘러봤을 뿐이죠.

과연 단청이 없는 실상사의 나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벽도 흰색으로 칠해져있을 뿐 그림은 없었어요. 뭔가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난, 지리산과 어울리는 인상을 줬습니다.

아, 카메라의 배터리가 실상사에서 끝나버렸습니다. 일행은 버스를 타고(버스를 잘못 타는 소동이 있었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날 밤에 혼자 서울로 올라와야해서 너무 아쉬웠는데, 나중에 들으니 나머지 일행은 다음날 칠선계곡에 가서 수영도 하면서 재밌게 놀았다고 합니다. 이번에 다녀왔던 행복한 여행에 힘입어 지리산 꼭 다시 찾아갈거에요. (끝)

글=이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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