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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고질라>와 <아톰> 그리고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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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후쿠시마 위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래는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신야 와타나베가 <ARTINFO>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을 번역해 옮긴 것이다. 원제는 '후쿠시마 이후: 예술은 이번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After Fukushima: How Art Can Again Help Japan Find Its Way)'이다. <편집자>

끔찍한 대지진이 발생하고 9일이 지난 이시노마키에서 16살 된 진 아베가 돌더미에서 구조됐다. 인터뷰 중 미래에 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그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작가 무라카미 류가 뉴욕타임즈에 썼듯, 최근 참사가 일어나기 전 일본은 인구 감소와 경제적 침체에 직면해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지진 이후 일본은 모든 걸 잃었지만 오직 희망만이 남았다. 지진과 잇따른 쓰나미 그리고 핵의 위협을 거치면서 일본인들은 일본을 재건해왔다.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단합했다. 생존자 구출이 연일 계속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아직 약탈행위에 대해선 거의 듣지 못 했다. 하나의 집단으로서 일본인들의 진심이 확인됐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두 번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또 다시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된 방사선의 공포에 맞닥뜨리게 됐다. 매일 일본인들은 공기 중 방사선 수치를 알기 위해서 텔레비전을 봐야 한다. 그들은 음식, 물 그리고 안전을 걱정하게 됐다. 일부는 슈퍼마켓으로 몰려가 음식을 사재기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도쿄도 지역에서 음식을 구하는 일이 어렵게 됐다. 방사선에 노출됐던 후쿠시마 지역에서 운송된 남은 음식을 제외하면 말이다.

뉴욕과 도쿄에서 활동하는 현대예술 큐레이터로서, 난 전후 일본에 대한 “원자 햇빛 속으로(Into the Atomic Sunshine)”나 예술과 정령신앙에 관한 “화산의 연인들(Volcano Lovers)”과 같은 전시회를 열었던 적이 있다. 오늘날, 이번 재앙을 맞아, 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자발적인 예술가들과 전세계의 지지자들과 더불어 우리의 행동이 희망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와 시민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지 이해하려면, 1945년 이후의 일본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가 일본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한 역사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전후 일본의 정책은 전적으로 경제 성장에 맞춰졌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그에 따른 미군의 점령으로, 일본은 오직 소련과 공산주의 중국에 대항하는 자본주의 블록의 한 축으로서 경제성장의 추구가 용인됐다. 정치적 독립은 없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정보당국은 일본인 요원이자 A급 전범이었던 마츠타로 쇼리키를 일본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ission)의 초대 위원장 자리에 발탁했다.

일본을 핵 의존국으로 만드려는 여정은 이미지의 전쟁으로 수행됐다. 쇼리키는 1955년초 미디어 캠페인을 벌여, 일본이 부족한 자원을 핵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는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 에너지 엑스포”를 개최해 일본에서의 반핵과 반미 운동을 불신하게 만들었고, 이는 현재의 핵 정책에서 복잡한 배경을 만들어줬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도 일본에서 핵발전소의 위험성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이 후쿠시마 제1원전의 비등수형 원자로를 설계한 뒤 35년 전 세 명의 GE 과학자들이 원자로의 설계 결함 사유로 사임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핵 단체들은 “안전”의 신화를 선동하는 홍보를 확대했다. 그 결과 일본은 과도한 핵발전 의존국이 됐다.

그렇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트라우마로 인해 핵 시대의 공포는 몇 세대에 걸쳐 일본 문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다. 오사카의 의사였던 오사무 테즈카는 “아스트로 보이(Astro Boy, 영어 원제목은 Mighty Atom)”라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창작했다. 만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인 “아톰(Astro)”은 폭탄을 태양으로 가져가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유명한 일본 괴물 고질라는 비키니섬 핵폭탄 실험의 부작용으로 탄생했다. 고질라는 일본어로 “고래”를 의미하는 “쿠지라”와 “고릴라”의 혼성체다. 외계인 침략에 대항하는 자위대를 지원하기 위해 다른 별에서 온 슈퍼영웅 울트라맨은 오키나와인 테츠오 킨죠에 의해 탄생됐는데, 베트남 전쟁에서 고조되던 핵 충돌의 긴장감을 반영하고 있다.

유명한 일본 괴물 고질라는 비키니섬 핵폭탄 실험의 부작용으로 탄생했다. 고질라는 일본어로 고래를 의미하는 쿠지라와 고릴라의 혼성체다.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회상하며 오노 요코의 평화 예술 연작은 일본에 투하된 두 개의 원자폭탄과 긴밀히 연관됐다. 그는 심지어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를 폭로한 전 이스라엘 핵 공학자 모드차이 바누누에게 평화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2010년엔 오노 요코 자신이 히로시마 예술상을 수상했다.) 현대예술가 야스마사 모리무라 역시 일본의 유산에 대해 “미사곡: 미시마(Requiem: Mishima)”를 남기며 젊은 일본 예술가들에게 전후 일본사와 그들 자신의 예술적 표현에 관해 생각해보자고 호소했다.

젊은 일본 예술가 세대는 전후 유산의 어두운 면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재난으로 각성한 일본은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재고할 위치에 서게 됐다. 이는 단지 에너지 정책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더 큰 그림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후 체제를 넘어서 무언가 새롭고 더 인간적인 체제로 가기 위한 방법 말이다. 예술가로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

예술가들은 현재 사회를 재고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최근 예술가 사회는 지진 피해자들을 돕고 모금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예술가, 배우, 학자, 영화 제작자 그리고 창작산업 종사자들은 ‘일본을 위해 행동하라(ACT FOR JAPAN, A4J)’라는 모임을 구성했다. 이 모임의 목적은 지진 피해자들을 재정과 문화적 측면에서 돕는 것이다. A4J는 자신의 예술작품을 기증하고 싶은 예술가들을 위한 웹 플랫폼을 제공해서 온라인 자선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다.

독립 큐레이터인 켄지 쿠보타 역시 ‘예술 기부’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술가들과 함께 모금을 해서 피해 지역에서 예술기관과 활동의 복구에 쓰일 예정이다. 정부는 4월1일 개최될 예정이었던 도쿄 국제 예술박람회 전시장이 재난 생존자들의 피난소로 변환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큐레이터, 신야 와타나베

마지막으로 독립 큐레이터로서 내 계획은 일본인을 비롯한 국제 예술가들과 함께 자선 예술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아마 아트 바젤(Art Basel,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품 견본 시장) 기간 동안 스위스에서 말이다. 전시회에는 이번 사고에 깊은 영향을 받아 탈핵 시대에 대한 자신만의 표현을 창작하려는 예술가들이 참여할 것이다. 예술가들은 모든 작품을 기증하게 되고 성금은 쓰나미 피해자들에게 기부될 것이다. 이 계획이 실현되려면 기부자와 해외 후원자들도 필요한데, 그만큼 할 가치가 있다. 지금은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며, 예술이 지금의 삶을 재건하는 데 역할을 할 때이다.

신야 와타나베는 도쿄와 뉴욕에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이다. 그는 일본 템플대학 예술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웹사이트는 www.shinyawatanabe.net이며 info@shinyawatanabe.net로도 연락할 수 있다. ARTINFO는 자사 웹사이트에 게재된 글이 그의 개인적 견해라고 밝혔다.

번역=이지언

원문
http://www.artinfo.com/news/story/37325/after-fukushima-how-art-can-again-help-japan-find-its-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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