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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주택가에 나타난 방사능 오염, 주민 뒤로 숨은 원자력 안전 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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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월계동에서 방사능 아스팔트 문제가 처음 불거진지 한 달을 앞두고 있다. 문제의 아스팔트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분류될 만큼 고농도의 방사능을 나타내고 있음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방사성폐기물의 처리와 재발방지를 위한 어떤 뾰족한 대책안도 나오지 않았다. 독성 방사성물질이 어떻게 도로 포장재로 섞여 들어갔는지 규명되지 않았을 뿐더러, 방사능 아스팔트가 주민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인지를 놓고 정부와 환경단체 사이의 주장도 엇갈리고 있다. 아래 서울환경운동연합 이지언 활동가가 <함께사는길> 2011년12월호에 기고한 글을 옮긴다.

노원구 월계동의 주택가 아스팔트에서 높은 방사선량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11월1일. 정밀 분석을 통해 정부는 일주일 뒤 아스팔트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방사성폐기물 기준치의 2-3배를 웃도는 농도의 세슘137이 도로 포장재에 섞여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핵분열 과정에서 생성되는 인공 핵종인 방사성 세슘은 체내로 들어갈 경우 세포나 유전자를 공격해 암과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독성물질로 알려졌다. 그런데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인근 주민들의 방사선 피폭량은 기준치 이하라며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문제의 아스팔트가 월계동 주택가와 한 고등학교 앞 도로에 설치된 시기는 2000년이다. 주민들은 11년 이상 아무도 모른 채 고농도 방사능에 노출됐다는 사실에, 그리고 방사선 계측기를 보유한 한 시민에 의해 우연히 오염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길게 이어졌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누구보다도 학부모들은 방사선에 의한 건강 영향을 가장 우려했다. 원자력안전위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정부를 향한 불신과 분노만 키웠다. 그렇다면 방사능 아스팔트에 대해 원자력안전위가 안전하다고 평가하는 근거는 뭘까?

11월8일 원자력안전위는 “지역 주민이 받을 수 있는 연간 방사선량은 0.51-0.69밀리시버트(mSv)로, 원자력안전법에서 정한 일반인 연간 선량한도인 1밀리시버트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인근 주민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대해 언론은 ‘월계동 방사능 안전한 수준’ 따위의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원자력안전위가 말하지 않은 3가지 문제가 있다.
 
원자력안전위의 계산을 인정하더라도, 이 정도의 피폭량은 분명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안전한 수준의 방사선량이란 없기 때문에 ‘기준치 이하라도 위험하다’는 것이 의학계가 도달한 합의다. 의학적으로 보면, 0.5밀리시버트의 피폭량은 2만 명 중 1명에게서 암 발병률을 높인다고 알려졌다. 월계동 주민들은 평균 피폭량에 더해서 굳이 받지 않아도 될 방사선을 집 앞에 깔린 아스팔트 때문에 추가로 받는 것이다.

11월4일 노원구청이 월계동 주택가에서 고농도 방사능이 확인된 아스팔트를 굴착기를 동원해 걷어내고 있다(위). 문제의 아스팔트는 2000년에 시공됐다. 11월6일 200미터 남짓의 노원구 월계동 고등학교 앞 도로에서 방사능 아스팔트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도로는 상가와 주택이 밀집한 구간으로 학생을 비롯한 인구와 차량 이동이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지언/서울환경운동연합


게다가 계산된 피폭량은 실제보다 축소됐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매일 1시간’ 노출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피폭량은 방사선의 세기와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얼마나 방사선에 노출됐는지는 이와 관련된 영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하다. 11월2일 주택가에서 방사선 계측을 실시한 원자력안전기술원은 도로에서 매일 평균 1시간씩 피폭된다고 가정했다. 이 근거는 이후 추가로 방사능 오염이 확인된 고등학교 앞 도로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그런데 주택가와 달리 도로는 인구와 차량 통행이 많고 상가가 밀집한 구간이었다. 10년을 이곳에서 살았다는 주민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차가 다니는 도로이기 때문에 먼지가 날리고 바로 옆에 주택가와 상가가 있어 우리들은 사실상 24시간 방사능에 노출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도로에 붙어서 24시간 생활하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떻게, 정부 관계자가 주민들보다도 현장의 생활환경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일까?

정부가 왜 이런 근거를 들이댔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례가 얼마 전 일본에서 있었다.  지난 10월 도쿄도 세타가야구 주택가의 한 도로에서 고선량의 방사선이 계측된 것. 정부가 아닌 시민이 최초로 계측해 제보했다는 점, 그리고 대도시의 한 주택가에서 방사능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노원구 사례와 여러모로 닮았다.
 
주목할 부분은 일본 정부가 방사선량에 대한 건강영향을 평가하는 대목이다. 문부과학성은 오염지점에 매일 8시간씩 서있는 경우 17밀리시버트의 피폭량을 받을 수 있지만, 건강에 해는 없다고 발표했다. 17밀리시버트라면 이번에 원자력안전위가 발표한 최대 0.69밀리시버트의 무려 24배이며, 국내 기준의 17배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이렇게 발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반인의 연간 피폭선량을 1밀리시버트에서 20배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한국 원자력안전위는 ‘매일 1시간’ 근거를, 일본 문부과학성은 ‘매일 8시간’ 근거를 댔다. 어느 쪽이든 결국 정부가 도달하고 싶었던 결론은 ‘기준치 이하’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빤한 결론에만 도달하면 정부는 “건강에 이상 없다”고 발표할 수 있다. 여기에 어떤 근거를 적용할지는 매우 임의적이고 정치적으로 결정됐다.

‘매일 1시간’ 근거 외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아스팔트 먼지가 공기로 비산돼, 인근 주택이나 상가로 이동해 잔류하거나 인체에 흡입돼 내부피폭을 일으킬 위험성이다. 실제로 방사선영향평가 자료를 보면, 오염된 도로이용과 관련된 ‘세부 피폭 시나리오’에서 비산먼지에 의한 인체 흡입 경로는 배제됐다. 정부는 방사성물질이 10년 이상  도로 아스팔트에 ‘고정’됐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데 그쳤다.

이렇게 정부가 아스팔트 방사능 오염을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치부하면서, 이번 사건에서 자신의 책임을 교묘하게 지우려고 한다. 구청이 아스팔트를 시급히 모두 걷어내고 서울시장이 현장에 방문해 도로의 확대 검사와 건강조사를 하겠다는 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원자력안전위는 “건강에는 이상 없다”고 ‘자문’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무를 끝내려 했다.

게다가 자신의 직무유기를 합리화하려는 의도에선지, 원자력안전위는 건강역학 조사를 하겠다는 서울시의 신중한 결정에 딴죽을 놓기도 했다. 한 언론은 “후쿠시마 원전사태 같은 대형 사고에서 피폭되지 않은 이상 (그 원인이) 방사선 노출 때문인지를 밝혀낼 수 없다”는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당장 방사능 오염이 확인된 아스팔트를 걷어내긴 했지만, 이번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선 몇 가지 문제가 더 남았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신뢰할 만한 건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 보건당국이 전문가, 환경단체와 함께 연구조사팀을 구성해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자체가 방사능 오염 문제에 의한 건강영향을 다루는 첫 사례인 만큼, 전문가들은 특히 조사를 진행하면서 주민들의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에 해당하는 아스팔트의 처리를 놓고 정부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경주에 건설 중인 방사성폐기물처리장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아스팔트를 임시 보관해야 한다. 원자력안전위는 노원구 관계자에게 임시 보관용 건물의 설계안을 전달했을 뿐, 재원 마련을 비롯해 폐기물 처리를 위한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등은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이 아스팔트 재료에 들어간 것은 엄연한 범죄라며, 바로 이를 책임져야 할 정부가 지자체 뒤에 숨는 행태를 보인다며 비난했다.

11월16일 서울환경운동연합 등은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정부의 방사능 아스팔트 폐기물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한숙영/환경운동연합


도로 포장재에 섞인 방사성물질이 어디서 왔는지도 불투명하다. 의료나 산업시설, 해외 폐기물 유입, 원전시설 폐기물 등 아직까지 추측만 제기됐을 뿐 실태가 드러나지 않았다. 방사능 오염의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2의 월계동’이 얼마든지 더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포항과 경주의 도로에 이어, 추가로 전주의 대학병원과 인천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까지 평균선량을 웃도는 방사선이 계측됐다. 그야말로 생활 주변에서의 방사능 오염이 전국적으로 확인되기 시작했다. 원자력안전위가 올해 말까지 도로포장과 관련된 정유, 철강, 아스콘 업체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이겠다지만, 방사능 오염이 도로를 넘어 이미 훨씬 더 광범위하게 존재해 왔다는 의미다.

잠자던 정부의 규제를 피해 방사성물질의 유출 사고가 이미 빈번하고 일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녹색연합은 정부의 관리 부실로 방사성동위원소 업체로부터 방사성물질이 지속적으로 유출된 것을 생활 방사능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며, 문제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방사선 기술개발을 무분별하게 부추겨온 원자력진흥계획과 방사성물질 이용 진흥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방사능 위협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핵물질이나 방사성폐기물의 보관과 이동에 대해 아무런 위험 정보를 전달받지 못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원자력연구원의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가 1985년 대전으로 이송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13년 뒤 트럭에 실은 299개의 사용후 핵연료가 인천항을 통해 미국으로 나갔다는 정보를 인근 주민들은 알고 있었을까? 만약 차량이나 선박의 사고 따위로 일부의 핵연료라도 유출된다면, 원전 사고 이상의 방사능 오염으로 이어질 텐데 말이다. 따라서 핵물질과 방사성폐기물의 일상적 이동과 관리에 관한 실시간 정보를 정부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방사능 위험을 소통하기 위해서 우선 전제될 조건이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방사능을 감시하는 활동도 활발해져야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생활주변에서 방사선 이상준위가 발견되는 경우 국민의 불안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하여’ 생활방사선기술지원센터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월계동 사례를 통해 이제 원자력 안전 당국은 오히려 국민의 신뢰로부터 완벽하게 멀어졌다. 결국 정부가 핵기술 진흥 정책을 근본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정부에 대한 불신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서 그랬듯, 방사능 아스팔트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자발적인 방사선 감시 운동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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