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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원자력에 우호적인 교과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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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사이에 원자력에 대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1993년부터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원자력국민인식조사’를 보면, 원전이 안전한지 묻는 질문에 ‘안전하다’고 답한 사람은 33.6%(2000년)에서 71.0%(2010년)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대해서도 ‘안전하다’는 의견이 23.4%(2000년)에서 49.5%(2010년)로 크게 늘어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여론조사를 의뢰한 원자력문화재단이 원자력 진흥기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원자력 안전을 둘러싼 이러한 인식 변화에는 현실의 추세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다만 이는 사회적 토론이나 합의 과정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원자력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홍보나 교육적 영향력의 확대가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원전이나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부지의 확보 과정에서 매번 결정적으로 드러났듯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수용성을 높이는 방안은 원자력 산업계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였다.

지식경제부 산하 원자력문화재단이 원자력 관련 교과서 수정 요구의 성과를 펴낸 보고서. 이 보고서는 국회도서관에서 열람 가능하다.


그 결과 원자력 홍보는 정부의 지원을 포함한 막대한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계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원자력문화재단은 사람들의 인식에 더 효과적으로 영향을 주기 위해서 교육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원자력에 우호적인 교과서
 
원자력 발전에 관한 논쟁과 갈등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현재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원자력에 대해 긍정적인 내용만 서술하거나 잘못된 사실을 포함하는 사례가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5월 환경운동연합이 원자력에 대한 내용을 담은 교과서를 조사한 결과, 원자력 발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지구과학1, 고등2, 중앙교육진흥연구소) 원전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는 어류 양식에 도움을 주는(한국지리, 고등, 두산) 등 청정에너지일 뿐 아니라 우라늄은 풍부하고 값이 싸 경제적이고(한국지리, 고등, 교학사) 원전이 강진에도 견딜 수 있어 안전하다(과학, 중1, 지학사). 원자력에 우호적인 서술의 유형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원자력의 친환경성: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 온배수도 무해
• 원자력발전소나 방사성폐기물의 안전성: 내진설계로 강진으로부터 안전
• 원자력의 경제성: 우라늄 연료는 경제적이고 재처리할 경우 고갈 우려 없음, 원전 수출
• 원자력의 유용성: 방사선조사식품, 방사선치료 등 관련 기술의 긍정성


이렇게 원자력에 긍정적인 교과서 내용은 우연이 아니었다. 원자력 홍보기관인 원자력문화재단은 1996년부터 ‘각급 학교 원자력 관련 수정 반영을 위한 교과과정 개편 추진 기본 계획’을 마련하고 다음해부터 교과서 수정 내용의 반영을 교육부에 요청했다.
교과서를 직접 저술하는 교육부의 교육과정 편수관을 대상으로 원자력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울진의 원자력시설을 시찰하기도 했다. 통계 수정이나 단순 의견을 제시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2005년부터 원자력문화재단은 교과서 개정 요구안을 만들고 이와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원자력문화재단이 교과서 수정에 이렇게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원자력문화재단의 “원자력 관련 교육과정·교과서 이해 교육 개발 연구”(2010)를 보면 “원자력에 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의 방식이 효과적인 대안”이라며 교과서 수정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원자력에 대한 인식이 ‘막연한’ 부정적 태도로 치우쳐져 있다는 문제의식이 전제돼있다.

“과거 DDT나 고엽제의 문제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어떤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객관적으로 안전성이 확인되는 경우에도 주관적인 불안감으로 인해 과학기술을 거부하거나 도입에 반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자력의 경우 후자의 문제를 겪고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력문화재단은 교과서 내용 수정의 방향을 “원자력 이해 교육”에 두고, 이를 “대안적 에너지로서의 원자력의 장단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으로 정의한다. 원자력문화재단의 요청에 따라 수정된 교과서 내용을 보면, 원자력에 관한 잘못된 어휘나 통계를 바로잡거나 균형 잡힌 관점을 소개하는 것 이외에 원자력의 긍정성만을 보여주는 내용이 상당하다. 앞서 교과서에 나타난 원자력에 우호적인 서술의 네 가지 분류에 따라 대표적인 사례를 아래 정리했다.

원자력의 친환경성

① 고등학교 화학1(교학사). 원자력문화재단의 요청에 따라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활용되는 방법들로 ‘풍력의 이용’ 대신 ‘원자력의 이용’이 제시됐고, 사진도 교체됐다(아래).

고등학교 화학I(윤용 외, 교학사) 88쪽, 공기의 오염과 대책 단원. 원자력문화재단의 요청에 따라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활용되는 방법들로 풍력의 이용 대신 원자력의 이용이 제시됐고, 사진도 교체됐다.


② 고2-3학년 경제(법문사). “경제주체의 합리적 선택” 단원에서 “정부는 (중략) 강 하류 지역의 홍수 피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목적 댐을 건설하기로 하였다.”에서 “정부는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하였다.”로 내용이 수정됐다.

③ 고3학년 물리2(상문사). “원자와 원자핵” 단원에서 “원자력 발전은 우리나라 총 전력 생산량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에서 “원자력 발전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효과적으로 줄이면서 에너지 수요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인식되어(후략)”로 내용이 수정됐다.

④ 고1학년 과학(지학사). “환경” 단원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온실 기체의 발생량을 줄이는 것이다. 즉,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석유, 석탄 등의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에서 “신재생 및 원자력 등 저탄소 에너지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로 내용이 수정됐다.

⑤ 고2학년 지구과학1(중앙진흥교육연구소). 지구온난화 문제가 제시된 내용에서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중요한 대책으로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방식의 발전소를 세우는 것이 있다. 현재 원자력 발전소가 이에 속하며”로 수정됐다.

고등학교 화학I(김희준 외, 천재교육) 211쪽. 신재생에너지에 해당하지 않은 원자력발전소가 하나의 사례로 소개됐다.


원자력발전소나 방사성폐기물의 안전성

① 중1학년 과학(지학사). “큰 지진이 일어날 경우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 두어야 한다”는 내용에서 “우리 나라 원전은 부지에서 예상되는 최대지진인 규모 5.0 보다 훨씬 큰 규모인 6.5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여유 있게 내진설계되어 있다. (중략) 원자력 발전소의 성능과 안전성을 신뢰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원자로 건물은 단단한 암반 위에 건설하고 있어 강진에도 잘 견딜 수 있다.”로 수정됐다.

② 고등학교 화학1(천재교육). “현재 방사능 폐기물은 폐광이나 지하 깊은 곳에 보관하고 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방사능 폐기물이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에서 “방사능 폐기물의 대부분은 위험성이 크지는 않지만, 안전한 관리를 위해 보호 시설이 갖춰진 지하 깊은 곳으로 운반하여 저장한다.”로 내용이 수정됐다.

원자력의 경제성

① 고등학교 경제지리(지학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업의 사례가 ‘조선공업’에서 ‘원자력발전’으로 교체되고 UAE 원전 수출 내용이 실렸다(아래).

② 고등학교 한국지리(교학사). “동력자원에는 석탄, 석유, 천연 가스 등이 있다.”에서 “동력자원에는 석탄, 석유, 천연 가스, 우라늄들이 있다. 우라늄은 원자력의 원료가 되며 매장량이 고르고 풍부하여 값이 싸 경제적이다.”로 내용이 수정됐다.

③ 고2학년 화학1(교학사) “인류는 (중략) 자원의 편재성과 채굴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에 착수하고 있다.”는 내용이 “인류는 (중략) 자원의 편재성과 채굴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원자력 발전을 늘리고 있으며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에 착수하고 있다.”로 교체됐다.

고등학교 경제지리(최운식 외, 지학사) 198쪽.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업의 사례가 조선공업에서 원자력발전으로 교체됐고, UAE 원전 수출 내용이 실렸다. 실제 수출 계약액이 과정돼 소개됐을 뿐 아니라, 계약 내용에 대한 논란과 의혹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장 그대로 교과서에 반영됐다.


원자력의 유용성

① 중3학년 기술가정(지학사). “원자력 발전과 원자 폭탄 비교” 내용에서 원자폭탄에 관한 내용이 삭제되고 대신 방사성 동위원소의 긍정적인 이용하는 사례가 소개됐다.

② 고2학년 가정과학(상문연구사).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도 문제이지만, 방사성 동위원소의 이용 증가, 방사선 물질의 취급 부주의에 의한 피해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 “이 사건[과거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화재사건]을 계기로 선진 원자력발전 운영 국가들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안전한 사용을 위해 체계적인 보완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혹시나 야기될 수 있는 방사는 오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방사성 동위원소를 식품이나 농업분야에 활용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긍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로 교체됐다.

원자력문화재단의 교과서 수정 반영률은 최대 30%까지 상승했고, 이에 대해 스스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원자력문화재단이 한 해 원자력 대국민 홍보사업에 지출하는 예산은 100억 원 규모에 이른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원자력문화재단은 초·중등 교육과정 교과서에 대해 매년 각각 309건, 240건, 269건의 수정 의견을 제출했고 이 가운데 95건, 35건, 77건이 받아들어졌다.

2007년 수정 의견 제출이 30%라는 반영률을 나타내자 원자력문화재단의 “2008년도 초·중등 교과서 원자력 관련 수정·보완 내용 성과 분석”에서는 “획기적인 발전”이라면서 “이전까지는 어느 기관에서도 교과서 개정의견을 이렇게 받아들여서 이렇게 개선하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교과서 출판사인 교학사 편집부의 한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특별한 사실 오류가 아닌 일반적인 내용에 대해 수정 요청을 많이 하는 곳은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독보적이다”이라고 언급했다.
 
원자력문화재단이 매년 ‘대국민 홍보사업’에 쓰는 예산은 100억 원에 이른다. 그 중에서 교과과정 수정과 교재 개발, 교원직무연수, 원자력 탐구올림피아드, 원자력페스티벌, 체험전시를 비롯한 “차세대 이해증진사업”에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 동안 사용한 액수는 179억에 이른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의 변화

교과서 원자력 내용과 관련해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일본에서 있었다.
 

6월2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원자력 안전 각료회의에 참석한 일본 반리 가이에다 경제산업성 장관은 “일본에는 ‘안전신화’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며 “일본의 원자력 발전 기술에 대해 비상식적으로 자만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고 발언했다. 일본 탈핵 운동에서 유명해진 “언제나 거짓말이었지”라는 노래의 가사에는 “학교 교과서와 광고는 원전이 안전하다고 말했었지/언제나 거짓말이었다는 게 결국 폭로됐지/원전이 안전하다는 말은 정말 거짓이었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초등학생용 “두근두근 원자력 캘린더”와 중학생용 “도전! 원자력월드”와 같은 교과서 부교재에 대해 다카키 요시아키 문부과학성 장관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곳은 고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부교재들에는 ‘원전은 큰 지진이나 지진해일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거나 ‘지진이 일어나더라도 방사성 물질은 빠져나가지 않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져 보호되고 있다’, ‘큰 지진에도 기능을 잃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일본의 반핵 활동가가 원전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있다.


일본의 경우 원자력에 우호적인 교과서 내용 수정은 2004년부터 본격화됐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동경전력 부사장이었던 카노 토키오가 199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추진됐다. 카노 토키오의 영향력 아래 교육부 관계자들은 원자력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교과서 수정을 지시했다. 한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는 유럽에서 확대되는 반핵운동에 관한 내용이 삭제됐다.
또 다른 교과서의 경우 체르노빌 사고를 다룬 설명이 각주로 밀려났다. 이런 교과서 수정 효과 때문인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일본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는 원자력을 지지하는 비중이 젊은 층에서 높다고 보여준다.

후쿠시마 사고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문화재단은 매년 해왔던 교과서 수정 작업을 올해도 실시했다. 1992년 설립된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원자력의 긍정적 이미지를 확대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홍보를 담당하는 지식경제부 산하 공공기관으로서, 1995년부터는 국민이 내는 전기세에 포함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부터 매년 100억 원 가량 지원받기 시작했다.
 
최근 원자력문화재단의 교과서 수정 문제를 인식하고 초록교육연대와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에서 ‘공동 실천을 위한 수업안’을 마련해 원자력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교육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민단체의 노력은 방대한 자금과 연구 프로젝트에 의한 원자력문화재단의 교과서 수정 요청 작업에 비하면 미약해, 원자력에 관해 보다 객관적인 교육을 위한 대책이 요구된다. 원자력 진흥을 담당하는 부서인 교육과학기술부가 교과용 도서 수정·보완 절차 업무를 함께 담당해 행정당국의 객관성을 확립해야할 과제도 있다.


이 글은 이지언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가 2011년 시민환경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원자력에 우호적인 교과서 분석>에서 일부 형식을 수정해 옮긴 것입니다.

도움 받은 글
교과서 원전 내용 일방적으로 바뀌다, 변진경 기자, 시사인 189호(2011년4월30일)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제출자료, 조승수 의원, 2011.3.24
원자력 관련 교육과정·교과서 이해 교육 개발 연구, 지식경제부·한국원자력문화재단, 2010
원자력에너지 관련 교과서 자료 개발 연구, 지식경제부·한국원자력문화재단, 2009
2008년도 초·중등 교과서 원자력관련 수정·보완 내용 성과 분석, 한국원자력문화재단, 2008
공동 실천을 위한 수업안 자료집, 초록교육연대·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2011,6.9
‘Safety Myth’ Left Japan Ripe for Nuclear Crisis, Norimitsu Onishi, The NewYork Times, 2011년6월24일

관련글
한국원자력문화재단, 333건 교과서 수정 요청(2011년7월13일, 원자력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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