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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의 '골든타임'은? <관저의 100시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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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탈핵' 도서



<관저의 100시간>

기무라 히데아키 지음, 정문주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지금, 우리는 지금까지도 잃어버린 ‘대통령의 7시간’을 찾고 있다. 촌각을 다투는 긴급 재난 상황에서 ‘콘트롤타워’의 대처는 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참사를 예방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생중계로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며칠이 지나도록 수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속수무책의 상황이야말로 극도의 분노와 무기력함을 불러일으켰다. 후쿠시마 사고의 ‘골든타임’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관저의 100시간>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사고대책통합본부가 세워진 15일 저녁까지의 ‘100시간’에 주목한다. 문부과학성과 핵발전 관료조직이 피난 경로 예측 시스템(SPEEDI)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피폭 피해를 키우는 모습, 원자로 폭발은 없다고 장담하다가 이에 대비하지 못한 채 폭발을 지켜보게 만든 전문가 집단의 무능, 사태를 해결하기보다는 현장에서 철수하는 데 급급한 도쿄전력의 무책임 등을 생생하게 담았다. <아사히신문> 기자인 저자는 전대미문의 사고 앞에서 ‘발표된 내용’ 이면의 심층에 다가가지 못하는 언론이 핵발전소 사고의 ‘두번째 패배’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우리 균도-느리게 자라는 아이

이진섭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1

“1차 걷기를 시작하기 사흘 전 직장암이 발견됐다. 3차 걷기 이후 이번에는 균도 엄마가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균도는 고리 원전 근처에서 자폐를 안고 태어난 아이였다. 나는 2012년 7월 한수원을 상대로 건강권 소송을 제기했다.”


#2

“4차 걷기는 고리 원전 근처에서 평생을 살아온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원자력발전의 책임을 묻는 행진이기도 했다. 우리는 발달장애인법 원안 통과, 부양의무제 폐지와 더불어 탈핵을 외치며 동해안 원자력 발전소들을 따라 걸었다. 나는 이를 ‘원자력 밟기’라 불렀다.”


작년 10월,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한 갑상선암 발병 피해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며 탈핵 운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진섭 씨는 사실 장애인 활동가 ‘균도 아빠’로 더 유명하다. 1992년, 고리 원전 근처에서 태어난 그의 아들 균도는 올해 스물네 살 청년이 되었지만 다섯 살 지능에 시시때때로 과잉 행동 장애를 일으키는 발달장애 1급의 자폐아이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애환을 알리고 싶어 도보 시위를 시작한 부자는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도보 시위를 시작했다. ‘균도와 세상걷기’는 다섯 차례에 걸친 3천 킬로미터 국토대장정이 되었다.





83일- 어느 방사선 피폭 환자 치료의 기록

NHK 도카이무라 임계사고 취재반, 이와모토 히로시 지음, 신정원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1999년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 ‘JCO 도카이 사업소’에서 핵연료 가공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대량의 중성자선에 피폭된 사고가 발생했다. 20시버트의 고농도 방사능에 피폭된 오우치 히사시는 피폭 83일만에, 피폭량이 그의 절반 이하였던 동료 시노하라 마사토는 211일째 숨을 거두었다. <83일>은 오우치가 피폭한 순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루하루 겪어야 했던 방사능 피폭의 결과들과 전례 없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치료를 이어가는 의료진의 고뇌, 그리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영역 저 너머에 있는 방사선의 무서움을 담담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이 책은 “오우치의 83일은, 피폭된 뒤의 하루하루는, 원자력 발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의 하루하루에 무엇을 묻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난이 계속된 가운데 2014년 후쿠시마현 후타바 마을은 텅 비어 있다. 도로 표지판에는 ‘원자력은 밝은 미래의 에너지’라고 적혀 있다. 사진=AFP/Yoshikazu TSUNO


<후쿠시마의 10가지 교훈>

후쿠시마 소책자 간행위원회 펴냄


핵발전을 가동하거나 계획 중인 각국의 방재 대책에 ‘후쿠시마의 교훈’이 반영돼야 한다는 일본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일본국제협력NGO센터와 피스보트를 비롯한 일본 시민사회는 3월 센다이에서 열린 유엔 방재세계회의에 맞춰 ‘원전재해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후쿠시마의 10가지 교훈’이라는 책자를 발표했다. 4년째 ‘현재 진행형’인 후쿠시마 핵 재난이 재해예방과 피해경감에 관한 국제적 협력을 논의하는 이번 회의에서도 주목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도 ‘후쿠시마의 교훈’은 ‘일어날 수 없는 재해란 없다’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시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낙후된 과소지역 해안가’인 후쿠시마에 핵발전소가 처음 들어서게 된 1960년대에 전력회사는 ‘방사능 위험은 없다’며 불안과 반대의 목소리를 억눌렀다. 하지만 “그 ‘안전’이라는 것은 원전을 만들고 싶어하는 정부나 대기업, 전력회사의 전문가들이 그럴싸한 데이터에만 근거해 주장”되는 것이었다.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거나 건설될 예정인 다른 국가의 주민과 시민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담은 이번 책자는 “핵발전소 계획과 관련된 완전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혼란스러운 경험을 토대로 핵발전소 재난에 대응할 현실적인 조언을 제공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재대책으로서 ‘탈핵’의 메시지가 담기지 않는 대목은 아쉽다. 70페이지짜리 이 책자는 한국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4개 언어로 출간됐고 웹사이트(http://fukushimalessons.jp)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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