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한다면?
서울시는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원자력 발전소 유치를 선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빌딩과 대학교가 밀집한 서울에 더 값싼 전기를 공급하고 정부 지원금을 비롯해 재정 확대에도 도움이 된다. 원자력이 이산화탄소를 거의 내뿜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라는 점은 서울시의 ‘기후친화 도시’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한다.
방송을 통해 뉴스가 보도되자마자 논란은 일파만파로 퍼진다. 한 언론은 원자력 발전소 가동에 쓰이는 초당 50톤 정도의 냉각수를 한강에서 공급 가능한지에 대한 의혹을 제시한다. 환경단체들은 발전소 주변의 수온 상승으로 인한 생태계 영향 등을 근거로 발전소 유치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한편 서울시는 건설부지로 ‘서울숲’이나 마곡습지를 후보로 선정해 지역난방 확대를 포함한 친환경 에너지제로 타운 계획을 실현을 공언한다. 여기에 원자력 발전소 견학은 유익한 관광수익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사람들의 이목을 경제논리로 분산시킨다.
한편 원자력 주식회사는 축적된 한국의 기술력에 의해 안전에는 문제가 없으며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여의도 국회 옆에 지을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다. 여당과 야당 의원들이 발전소 서울 유치의 적절성을 놓고 <100분 토론>에서 갑론을박을 길게 이어간다. 사회자가 최근의 놀라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소개한다.
물론 가상의 이야기로서, 영화 <동경 핵발전소>의 상상력을 우리의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봤다. 5년 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일본의 수도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 오늘날 서울의 상황으로 번역돼 읽히는 것이 어쩔 수 없었다.
“니들은 전기 필요 없냐!”
허덕이는 재정을 단번에 세운다며 도쿄 도지사가 던진 원자력 발전소 유치 폭탄선언에 회의 참가자들이 당황한 것은 당연. 도지사가 간부들의 우려 하나 하나를 각개격파 해나가는 대목에 탄성이 나온다.
“니들은 전기 필요 없냐!고 하든가”(도쿄도지사)
정책보도실장이 반대여론이 들끓을 것을 우려하자 도지사는 대수롭지 않게 단호한 한 마디로 대꾸한다. “니들은 전기 필요 없냐!고 하든가.” 늘어나는 전기 소비는 도쿄와 같은 대도시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서울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 전력 소비량이 3배나 늘었다. 원자력이 3분의 1 정도의 발전량을 차지하는 상황도 일본과 한국이 닮은꼴이다. 늘어나는 도시의 전력 소비를 외면한 채 신규 발전소 건설만을 문제 삼는 것이 어쩌면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왜 굳이 도쿄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야 하냐는 환경국장의 발언은 도지사의 꾸지람으로 되돌아온다. 지방에 대형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지면서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될 뿐만 아니라, 철탑과 송전선으로 경관마저 망친다는 것. 도쿄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는 니카타나 후쿠시마와 같은 인근 지방에 있다는 사실이 상기된다. 역시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전라도와 경상도의 해안 지방에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한 한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도쿄 사람이 물 쓰듯 전기를 쓰기 위해 그만큼의 환경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도지사는 역설한다. 환경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대도시에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가 역설적으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핵 발전소는 대도시와 잘 어울려”
도지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자력 발전소 유치가 불러올 막대한 경제효과에 거는 기대도 크다. 해당 지자체에 지급되는 정부의 보조금, 또 만약 지방에 유치할 경우 발생되는 산림이나 어업권의 막대한 매수비용이나 장거리 송전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선진국에 비해 3~4배 더 비싼 일본의 전기가격이 대폭 떨어지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일본엔 현재 55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핵시설 계획이 취소된 지역 3곳도 있다. 자료=일본시민핵정보센터
글쎄,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 원자력은 전기 가격을 값싼 수준으로 유지시켜주는 ‘효자’ 노릇을 한다고 홍보돼 왔다. 동일한 양의 전기를 만들 때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력발전에 비해 원자력은 더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값싼 전기는 발전소의 건설계획부터 송전까지의 모든 과정에 대한 비용을 고스란히 포함하고 있을까? 가령 부지 선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나 송전탑이 지나는 지역주민에 대한 건강영향과 같이 수치로 계산하기 어려운 비용 따위 말이다. 결국 대도시에 발전소가 들어설 경우의 ‘경제효과’는 거꾸로 말해 지방에 들어서는 발전소로 인한 온갖 비용이 사회와 전기가격에 ‘전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값싼 전기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바로 국민들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출력을 바꾸면 너무 위험해 전기 공급 조정을 못 해요. 수요가 있든 없든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바보처럼 풀가동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두십시오.” 공급 조정을 못 하는 원자력 발전의 특성과 달리 전기 수요는 일정하지 않다. 남는 전기를 밤에 싸게 공급하는 심야전기가 도입돼 결국 전기 과소비의 확대로 이어진 맥락은 원자력을 빼놓고 설명될 수 없다. 전력회사들이 지고 있는 막대한 부채 역시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된다. 한국전력은 지난해만 3조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이 콘크리트 정글에 참신한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야. 핵발전소는 대도시와 잘 어울려.” (도쿄도지사)
“핵발전은 CO2 삭감에 도움이 되니까. 텔레비전에서 그러거든요.” (도시계획국장)
그래도 그렇지, 도쿄 한복판에 정말 원자력 발전소를 들여놓자는 것일까? 환경국장의 말처럼 ‘꿈 같은 이야기인데 정말 가능할까’? 앞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대도시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지 말아야 하는 명분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아니, 이제 명분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비추어 질문에 답을 스스로 구할 수밖에 없다.
원자력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기
왜 이렇게 조용할까? 아무도 원자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원자력에 대해 다루는 기사는 대개 기술이나 ‘경제효과’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또는 ‘환경을 지키는 에너지 원자력’ 따위의 광고를 보거나. 선전은 있지만 논쟁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원자력에 관한 갈등이나 불안이 해소된 것일까?
2003년 3월27일, 서울 종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고창, 영광, 영덕, 울진군에서 상경한 7천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지난 2월 당시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핵 폐기물 저장시설 유치를 반대하기 위한 집회가 열렸다. 사진=박종학
오랜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발전소 유치에 대한 찬반 입장을 내놓기 주저하는 간부들에게 도지사가 말한다. “국가정책을 방관하는 건 찬성과 마찬가지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원전이나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의 부지 선정문제는 가장 첨예한 사회적 균열을 만들어왔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계획대로 2030년까지 11기의 원전이 신규 건설된다면, 4~6기의 발전소 부지를 새롭게 선정해야 하는 선택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최악은 심지어 우리가 방관하는지조차 모른 채(자신이 ‘선택’을 내렸는지조차 모른 채) 어딘가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의 3분의 1을 소비하는 수도권에서 원자력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얼마나 끌고 있을까?
알고 있나요?
실제로 지난 2004년 평범한 16명의 시민들이 모여 원자력 중심의 전력정책을 놓고 집중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원자력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은 다양한 입장의 정보들을 접하고 민주적인 토론을 거친 뒤 ‘전력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합의회의 시민패널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 읽기
영화 <동경 핵발전소>가 던지는 “열린 공간에서 논의하자”는 메시지는 이 기이한 무관심을 어떻게든 깨보려는 몸부림으로 나타난다. ‘세상 일에 가장 무관심한 도쿄도민’ 눈앞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자는 것과 같은 무리수로 말이다. 논의가 계속되고 원자력을 둘러싼 질문은 다른 대안을 탐색하는 데로 이어진다. “전력을 조달하려면 원자력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제 우리도 원자력의 신화에 의문을 던지는 데 주저하지 말자.
글=이지언 서울환경연합 에너지팀(leeje@kfem.or.kr)
한국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 지도. 현재 울진, 월성, 고리, 영광 4개 지역에서 20기가 운영되고 있다. 자료=한국수력원자력
<덧붙이는 글> 지난 12월10일에 열린 영화 상영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환경운동연합에서 오랫동안 반핵운동을 하고 있는 양이원영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기술 발전을 통해 원자력이 갖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불확실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맹신의 첨단에 있는 분야로서 원자력 발전과 유전자 조작 기술을 꼽았다. 핵분열과 같이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까지 통제하려는 시도보다 에너지를 근본적으로 줄여나가는 시도가 원자력 문제의 해법이라는 것. 원자력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언급은 영화 <동경 핵발전소>에서 직접 확인해보길 권한다.
[영화 상영 및 구입 문의] 환경운동연합 02-735-7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