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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칼럼

멕시코만 석유재앙, 불구경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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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최대 환경재앙’


오바마 미 대통령이 멕시코만 기름 유출사고에 대해 지난 1일 이렇게 규정했단다. 이런 표현 역시 왠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으로 온통 색칠된 처절한 현장에서 어지러울 정도로 독한 원유의 냄새를 맡거나 끈적이는 기름에 뒤범벅돼 죽어 널려있는 생물의 사체를 눈으로 직접 본다면 말이다. 3년 전 삼성중공업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기억 때문에(물론 이 사고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번 사고 소식을 마냥 차분히 듣기가 어렵다.

외신을 통해서 종종 뉴스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중요하고 자세하게 다루는 보도를 보기 어려워 보인다. 보도 횟수 자체도 적어 피해 규모나 대처 상황에 대한 궁금증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해외 언론이나 미국 환경단체의 입장 따위를 검색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2007년 12월 기름유출 사고로 신두리사구 보호구역에서 기름을 뒤집어쓴 채 죽어가는 뿔논병아리. 사진=최예용/환경운동연합

유출 규모를 비교해봤다. 21년 전 발생한 엑손 발데즈 유조선 사건은 단연 첫 비교대상이었다. 당시 유출된 기름은 10.8백만 갤런. 2007년 서해안에서 유출된 원유(1만2547킬로리터)의 3배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번 멕시코만 기름유출 사고규모는 117.7백만 갤런에 달했다. 엑손 발데즈 사고 규모를 이미 지난달 27일 넘어서 열배 넘는 원유를 멕시코만 해상에 쏟아냈고, 현재도 유출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달초 국내 신문은 오바마 행정부의 강력수사 방침에 대해 보도하면서 ‘유출방지 새 시도 낙관’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20년 넘게 금지돼온 미국의 해상 석유 채굴에 대해 최근 허용 결정을 내린 것이 바로 오바마 정부이기 때문이다.

올해 3월 오바마 대통령은 대서양, 멕시코만, 알래스카 3개 지역 해상에서의 석유 채굴 재개를 허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사고 이후인 5월27일 오바마 대통령은 채굴 허용에 대해 ‘6개월 유예’만을 선언했을 뿐 중단 결정을 내리진 않았다. 석유 재앙의 반복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저하는 것이다.

멕시코만 기름 유출사고 지도. 6월6일 현재 117.7백만 갤런의 원유가 유출됐다. 출처=뉴욕타임스

전히 낙관보다는 ‘악화’를 알리는 소식이 대부분이다. 사고 책임자인 BP가 유정에서 원유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나마 일부에 불과하고 이미 오염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기름 유출사고는 비슷한 양상으로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

얼마 전 아이티에서 일어난 재앙에 세계가 주목하며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예측이 어려운 자연재해를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새삼 환기됐다(기후변화로 재해의 횟수나 강도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으니 이젠 순수한 ‘자연’재해로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인재는? 사람과 정책의 실수로 일어나는 엄청난 재앙에 대해서는 왜 상대적으로 이렇게 관대할까. 사건과 뒷처리 과정의 스펙터클은 주목을 받지만 사전예방을 향한 이목은 차갑기만 하다.

"BP, 새우는 분홍색이어야 하잖아!"ⓒ지구의 벗

물론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BP를 비롯한 채굴 관계자들에 있다. 서해안 기름 유출사고에서 삼성 중공업의 책임이 그렇듯 말이다. 이들 석유/기업들의 책임성은 더욱 강조돼야 한다. 유조선을 이중선체로 하라는 요구가 제기되기도 했다. 맞다. 그런데 좀 더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이번 멕시코만 사건은 시추선으로부터 발생했다. 석유기업들에게 강화된 안전기준을 요구해야 맞겠지만, 기술적인 온갖 문제를 요구할 필요는 없다. 그건 기업의 당연한 몫이다.

사고가 발생한 해당 지역들의 주민들에겐 어업과 관광업에 대한 어마어마한 타격일 수밖에 없다. 바다와 습지에 살던 다양한 생물들은 심각한 오염에 의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유엔이 정한 세계 생물다양성의 해에 이번 사고가 일어난 사실 자체가 엄청난 역설이다). 그럼 나머지 우리에게 이번 사고, 반복되는 실수가 던지는 의미가 뭘까.

글쎄, 아마 이 질문에 답하려면 석유와 나와의 관계를 고민해봐야할 것이다. 몹시 우스운 질문 같지만, 우리가 석유를 입고 먹고 쓰며 살아가는 ‘호모 오일리쿠스’라는 사실을 알면 그렇지도 않다. 독한 냄새와 끈적끈적함을 없앴지만 석유는 다양한 변신을 통해서 우리 생활을 구성하고 있다. 비닐과 플라스틱, 옷과 고무는 물론 의약품과 화학비료에까지 석유가 쓰이니 '먹는다'는 표현이 과연 틀리지 않다.

물론 우리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흡연에 대한 전방위적인 교육을 통해 금연 캠페인까지 생겨났지만, 오늘날 우리가 석유중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석유중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면, 결국 기름유출 따위의 사고는 재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엄청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 어느 해안에서 원유를 뽑아내고 그것을 유조선으로 끊임없이 운반하며, 그것을 정제하고 다시 운반하고, 다른 제품으로 가공해 또 운반하고... (물론 운반에도 석유가 쓰일 것이다) 이런 과정을 매일 수백 번씩 반복하면서 충돌이나 유출사고 없는 무사한 하루를 기대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이지언

참고
지구의 벗(US) The Gulf Oil Spill http://www.foe.org/gulf-oil-spill
뉴욕타임즈 Tracking the Oil Spill in the Gulf 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10/05/01/us/20100501-oil-spill-tracker.html?ref=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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