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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에 ‘방사능 아스팔트’ 놓아드려야겠어요

구청의 방사성폐기물 이전에 한나라당 구의원 등 규탄 집회 열어
공릉동 원자력연구원 부지 놓고도 정부는 책임 회피…


노원구 방사성폐기물의 처리를 놓고 정부가 침묵하는 가운데, 문제가 지역내 정치적 갈등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오늘 오전 9시경 노원구의회 소속 구의원과 상계동 지역주민 50여 명은 노원구청에서 방사성폐기물의 반입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앞서 방사성 세슘에 오염됐다고 확인된 330여 톤의 아스팔트는 월계동 도로에서 철거돼 인근 공원에 임시로 옮겨졌다가, 지난 18일 노원구청 뒤 공영주차장 부지로 일부 운반됐다.

11월18일 노원구청 뒤 노상주차장으로 반입된 방사능 아스팔트 폐기물의 모습. 이날 오후 홍정욱 의원과 일부 주민들이 방사성폐기물의 반입에 항의하기 위해서 아스팔트를 구청 현관 앞으로 직접 나르면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집회에는 원기복 노원구의회 의장을 비롯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 그리고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해 지역 의원과 주민과의 협의 없이 방사성폐기물을 반입하려는 구청의 결정을 강하게 비난했다.

현재 일반자루에 담긴 방사능 아스팔트는 구청 옆 부지로 80% 정도 반입돼 쌓여있고 천막을 덮어놓은 상태다. 노원구청은 이 부지에 원자력안전기술원의 권고에 따라 임시 방사성폐기물 보관시설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방사선 계측을 실시한 결과, 폐기물 포장의 표면에서는 최대 자연 방사선량의 10배 수준의 방사선이 나타났다. 계측기를 표면으로부터 1미터 떨어뜨리자 자연 방사선에 가깝게 계측됐다.

정부가 제시한 임시 건물의 설계안은 콘크리트, 팔레트, 방수포를 바닥에 깔고 벽체와 지붕을 씌우는 구조. 여기에 3미터 높이의 울타리를 추가로 설치해 일반인의 접근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방사선을 측정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노원구청은 이번 집회에서 제기된 비난에 대해 정부가 방사성폐기물의 처리 지침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론했다. 김성환 구청장은 집회 현장에 직접 나가 사건의 경위를 비롯한 이와 같은 내용을 전달했지만, 집회 참가자들의 거센 항의에 둘러싸였다.

방사능 아스팔트의 처리가 누구의 책임인지를 놓고 정부와 구청 사이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방사능 관련 규제 책임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난 뒤 방사성폐기물의 처리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발표 자료에는 구청이 걷어낸 아스팔트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다만 언론은 방사능 아스팔트의 처리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자문'이나 '기술적 협조' 역할만 할 뿐 책임은 노원구청에 있다는 관계자들의 발언을 공공연하게 인용해왔다.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을 보면, 방사성폐기물의 운반, 저장, 처리, 처분에 대한 책임은 '방사성폐기물 발생자'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사성물질이 어떤 경로를 통해 도로 포장재에 섞여 들어갔는지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자체가 도로를 관리하기 때문에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해석은 얼마나 타당할까.


사진1. 원기복 노원구의회 의장이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과 동행한 가운데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2. 이날 집회에는 구청에서 400미터 떨어진 용화여고 학생들 다수가 참가해 이목을 끌었다. 앞서 어제 용화여고 박흥원 교장은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노원구청의 결정에 항의하는 민원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마스크를 쓴 채 '스쿨존 방사능존' 등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있었다.

사진3. 집회 참가자들은 '방사능 아스팔트 상계동 이전 결사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사진4. 집회 현장에 나온 김성환 노원구청장이 참가자들에 둘러싸여 거센 항의를 받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스콘 재료에 대한 기준 마련이나 조달이 정부 소관으로 돼있는데다, 방사성물질 규제의 일차적 책임은 원자력안전위원회(과거의 경우 교과부)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전이나 방사성물질 생산을 통해 일정한 이익을 얻는 과정에서 방사성폐기물을 배출하는 원전 운영사나 방사성동위원소 업체 따위가 일반적으로 '방사성폐기물 발생자'로 규정되는 반면, 지자체의 경우 방사성폐기물과 관련해 어떤 이익도 얻지 못 했기 때문이다.


현실성을 고려해도, 정부가 방사능 아스팔트의 관리 책임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승인한다면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옛 원자력안전연구원 부지에 방사성폐기물을 추가로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부지에는 과거 2기의 연구용 원자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온 1400여 드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이 임시 보관 중이다.

원자력연구원에는 아스팔트를 일반 폐기물과 방사성폐기물로 분류할 수 있는 핵종 분석기와 저장고의 방사선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도 이미 갖추고 있다. 지금 노원구청 뒤에 건설하려고 하는 임시 저장시설을 별도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렇게 반입된 방사성폐기물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인근 주민에게 공개한다면 불안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

방사능 아스팔트 문제가 마치 지역적 갈등이나 정치적 경합의 양상으로 연출됐지만, 사실 정부가 주민 뒤에 숨은 채 상황을 관망만 해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방사능 피폭에 대해 "주민 건강에 이상 없다"고 발표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결시키려 했던 원자력안전위원회로서는 연일 논란이 커져가는 과정을 가장 당황스럽게 지켜봤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원자력이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원이라고 줄곧 홍보해왔다. 지역에 막대한 지원금을 약속하며 경주에서 첫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의 건설 계획이 발표됐을 때에도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 했다. 그런데 막상 집 앞 아스팔트에서 방사성폐기물이 나오자 정부는 대응 절차를 내놓기는커녕 시민과 지자체에 책임을 맡긴 채 숨어버렸다.

글과 사진=이지언

*방사성폐기물 이미지(아래)=©ISTOCKPHOTOS


링크
'방사성 물질 검출' 폐아스팔트, 어디로 가나? (MBC뉴스)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967205_5780.html

노원구청 보도자료, 정부는 월계동 방사능 폐기물 옮길 장소 즉시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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