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핵은 답이 아니다

후쿠시마 재앙 14개월 뒤… 핵발전소 ‘괴물’과 맞서는 시민들

홋카이도 전력의 토마리 핵발전소 3호기가 정기 점검에 들어가면서 일본은 지난 5월6일부터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게 됐다. 약 50년 만에 핵 발전량이 처음으로 0으로 돌아선 것이다. 전체 54기의 핵발전소가 운전을 멈추면서 일본 에너지 정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가동을 멈춘 핵발전소 중에는 지난해 3월11일 노심용융 사고가 일어난 3기의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포함됐다.


첫 시험대는 다가오는 여름철 전력 부족의 대처 방안에 달렸다. 일본 열도가 특유의 길고 습한 여름에 접어들면 에어컨 사용을 비롯한 냉방수요가 급증해 정전과 이에 따른 경제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일부 핵발전소가 가동하는 가운데 순환정전과 대형 사업장의 의무 절전을 비롯한 강도 높은 수요관리대책으로 다행히 심각한 전력난을 피할 수 있었다.


현재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가 일본에서 90% 남짓의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이미 세계 최대의 액화천연가스 수입국인 일본은 핵발전을 대체하는 가스 수입량이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일본의 모든 핵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하게 되면 석유 수요량이 하루 450만 배럴로 올라 1억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화석연료를 제외하고 전력의 8% 정도는 수력에서, 나머지는 태양광, 풍력, 지열 그리고 바이오매스를 포함한 재생가능에너지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재생가능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5-3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지만, 당장 큰 변화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여름철 수요 급증을 고려해 핵발전소의 재가동이 불가피할 것이란 일본 정부와 산업계의 예측은 아직 불투명해 보인다. 일본에서는 정기점검에 들어간 핵발전소가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재가동 승인을 받을 수 없다. 후쿠시마 노심용융 사고 이후 유럽에서도 전체 143개 핵발전소를 대상으로 실시 중인 이 엄격한 안전검사는 자연재해뿐 아니라 조작 실수나 테러공격에 견딜 수 있는지를 평가하게 된다. 


형식적 절차인 스트레스 테스트 이외에도, 일본 사회 내 형성된 반핵여론은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막는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한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일본 서부의 후쿠이현에 위치한 2기의 오이 핵발전소를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재가동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하지만 여론 결과는 지역 핵발전소의 재가동에 줄곧 회의를 표시했다. 최근 일본 <교도통신>의 여론조사를 보면, 59.5%가 오이핵발전소의 재가동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면 찬성한다는 의견은 26.7%에 그쳤다. 주민 여론이 재가동 여부에 법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락세의 지지도를 기록 중인 노다 총리가 지역의견을 무시한 정치적 결단을 쉽게 내릴 것 같진 않다.


후쿠시마 재앙은 원자로의 벽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냈다.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성역으로 치부되던 핵에너지 문제는 수많은 토론과 논쟁에 부쳐졌다. 세계 각국에서는 핵발전소에 대한 반대 여론이 고조됐고, 독일과 이탈리아에서처럼 핵발전을 영구적으로 포기하기로 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핵발전소 반경 30킬로미터 내에는 3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밀집해있다.


새로운 합의에 따라 기존의 산업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17기에 이르는 독일 핵발전소 건설을 맡아왔던 공업 분야의 대기업인 지멘스는 지난해 9월 “우리를 위한 시기는 끝났다”며 핵발전 사업에서 완전히 빠지기로 선언했다.


반면 한국이나 인도, 러시아와 같이 핵발전 확대 정책을 고수하던 국가에서는 핵기술의 수출과 신규 발전소 건설을 위해 후쿠시마 사고를 도리어 새로운 ‘핵 비즈니스’의 기회로 삼으려는 노골적인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일본 핵발전소에서 폭발과 방사능 유출로 모두가 긴장해있을 때 한국 정부는 오히려 ‘우리나라 원전’의 기술적 우월성을 선전하기 좋은 때라고 조바심을 냈다.


사고 직후인 3월14일 아랍에미리트 핵발전소 기공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원자력발전소 안전성 측면에서 한국 원전이 최고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안현호 지식경제부 제1차관도 “우리나라 원전은 쓰나미가 온다고 해도 침수가 안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이어받았다. 한국의 원자로는 일본의 그것과 기종이 다르고 ‘3중’ 방호벽 대신 ‘5중’ 방호벽을 갖추고 있다며, 이웃나라에서 벌어진 불행은 매우 ‘예외적인 사고’로, 특히 아주 이례적인 큰 지진에 의한 예외적인 사고로 치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각 신문에 1면 광고를 내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국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지진, 쓰나미 등의 모든 자연재해에 대비 안전하게 설계하여 운영”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나 핵산업계의 자신감과는 달리, 대재앙을 목격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핵발전에 부정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이 사실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내외에서 실시된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한 국제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은 후쿠시마 사고로 가장 반핵 여론이 높아진 국가다.


국제여론조사 기관인 IPSOS와 로이터통신이 7개 핵발전 국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 61%가 핵발전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66%로 조사된 7개국 중 가장 높았다. 한편 2010년까지 매달 ‘대국민 원전 인식도’를 조사해 이를 발표해왔던 원자력문화재단은 지난해부터 여론조사를 아직까지 실시하지 않았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국민의 이해 증진’이란 명분을 위해 1992년 설립된 원자력문화재단은 핵발전에 우호적인 인식을 확산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정기적으로 해왔던 여론조사를 지속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얼버무렸지만, 원자력문화재단은 핵에너지를 둘러싼 ‘부정적 인식의 제거’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던 그간의 성과가 후쿠시마 사고로 흔들리지 않도록 대응해나갔다.


지난해 4월말 원자력문화재단은 한국과학기자협회와 공동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정확한 이해와 대응방안’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재환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은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국민적 소통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형식적으로는 핵발전과 방사능 사고에 대해 나름대로의 위험소통에 나선 것처럼 보였지만, 내용의 대부분은 핵에너지의 안전성을 반복해 강조했다.


기조연설을 맡은 장순흥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국내 원전에서 사용하는 가압경수로 방식은 증기발생기에 의해 원자로가 분리되기 때문에 “사고시 방사능 물질의 유출을 막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벽이 더 존재”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다양한 비상냉각 시스템의 구축, 격납건물의 부피가 10배 커서 그만큼 느린 압력상승, 수소 제어 시스템으로 수소폭발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국내 원전이 안전하다는 근거로 들었다. 장순흥 교수는 “고리 1호기를 (수명) 연장시키면서 제일 강화시킨 부분이 수소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사고에서 나타난 위험 요소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핵산업계 인식과 달리, 환경단체들은 일본과 유럽에서 실시 중인 ‘스트레스 테스트’를 한국의 핵발전소에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하기도 했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지난해 12월 울진1호기와 고리3호기 등 잇따른 원자로의 불시중단 사고의 원인을 지적하며 “유럽에서는 수개월째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 동안 형식적인 조사만 진행하였고, 그 결과 어떠한 문제도 잡아내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정작 기본적인 비상대응 시스템에서 발견됐다. 최근 고리1호기에서 비상전원 상실 사고가 은폐됐다가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 드러났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월9일 한수원이 고리 1호기의 발전기 보호계전기 시험을 진행하던 중 외부전원의 공급이 중단되고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여 발전소 전원이 12분간 상실되었다가 복구되었다는 사실을 한 달 뒤인 3월12일에 안전위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핵연료봉을 장착한 원자로에서 “냉각기능이 상실되면 후쿠시마 4호기 사고에서처럼 폭발사고와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외부 전원공급이 상실되었을 때를 대비한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무용지물이었으며 핵산업계와 안전당국의 ‘안전’ 주장이 허구였음이 밝혀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한수원이 사고 사실을 늦게 보고했던 3월12일은 후쿠시마 재앙 1주년을 맞아 서울과 부산 도심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반핵집회가 열리고 이틀 뒤였다.


최근 원자로의 자동 정지 사건은 더 잦았다. 가령 올해 1월12일엔 새벽 4시24분 월성 핵발전소 1호기가 냉각재 펌프 고장으로 자동 정지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환경단체는 이를 단순 고장이 아닌 중대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징후로 봐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원자로를 재가동하지 말고 아예 폐쇄하자고 주장했다. 마침 1982년 11월부터 상업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가 올해로 설계수명인 30년을 모두 채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일찍 노후된 핵심부품을 교체하면서까지 월성 1호기의 가동을 연장하려다가 이번 고장사고를 맞았다. 특히 월성 핵발전소의 경우 다른 원자로 유형에 비해 훨씬 위험성이 크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6월 한국을 찾은 그린피스의 핵 전문가 하리 람미는 캐나다형 원자로(CANDU)로 설계된 월성 핵발전소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캔두(CANDU) 원자로에서는 냉각수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핵 연쇄 반응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격납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심각한 방사능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유럽에서는 수명연장은 물론 캔두 원자로의 건설 승인조차 받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캔두 원자로는 더 많은 방사성물질을 내뿜을 뿐 아니라 핵연료를 핵무기의 재료인 플루토늄으로 전용하기가 훨씬 용이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로 실제로 세계에서 캔두 원자로의 가동이 연장된 사례는 없었다고 알려졌다.


더 심각하게는, 매우 복잡한 핵발전소의 가동 시스템을 고려한다면,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천 또는 수만 가지의 사고 가능성을 인간이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핵발전소의 사고를 놓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우발적 실수인지 또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제2의 후쿠시마’로 볼지 상이한 시선이 교차되는 가운데, 핵산업계는 핵기술의 수출에 더욱 열을 올렸다. 지난해 9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세계원자력대학(WNU)와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 원자력 올림피아드는 가장 좋은 예다. 이 행사에는 말레이시아, 인도, 터키와 같이 한국이 핵에너지 시설에 대한 수출의 기회를 노리던 국가들에서 온 대학생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주민의 원전 수용성 제고 방안’이란 주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국제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소속 아시아 태평양 지역 단체들은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핵 재앙을 세계가 목도하는 가운데 이런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은 특히 일본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핵 산업계의 비인간성을 보여준다며 원자력 올림피아드 행사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위험한 기술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일은 후쿠시마 재앙으로 10만 명의 방사능 이재민을 낳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3월 핵안보정상회의를 겨냥해 열린 반핵아시아포럼에서 일본의 반핵운동가 소노 료타는 “(후쿠시마) 사고 후 정부는 ‘책임 회피와 인명 경시와 사고 비즈니스화’를 철저하게 추진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난이니까 모든 힘을 합치자고 외치며 국가주의를 선동함과 동시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운영사인) 동경전력을 향한 책임 추궁을 약화시키는” 수법을 정부가 동원해왔고 비난했다.


게다가 사고 발생에 책임이 큰 동경전력과 핵발전 관련 대기업은 제염작업, 원자로 폐로, 재해지역의 복원을 다시 자신의 비즈니스 기회로 삼는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핵발전소가 일어나도 동일한 수법을 취할 것이므로, 우리는 핵발전소 수출과 핵 관련 국제회의를 추진하는 따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산업성 앞에서 텐트를 치고 탈핵을 정부에 요구하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3월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폭발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전 세계인들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지켜봤다. 사고 이전 핵발전 확대 정책은 정부의 주도로 추진되던, 감히 맞서기 불가능한 ‘괴물’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면, 점차 많은 시민들이 핵발전소를 민주적 감시와 통제 아래에 둬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발적 방사능 감시와 대안 에너지 시나리오의 연구, 그리고 재생에너지 시민발전소와 같은 ‘대항발전소’의 지역적 확대를 통해 핵 없는 사회의 실현에 도전하고 있다.


이 글은 시민과학센터가 발행하는 시민과학 제92호(2012년 3·4월호, 기획: 후쿠시마 원전 그 후 1년)에 실린 이지언 서울환경운동연합 대안정책팀 활동가의 원고를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