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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핵에너지의 공포 아래서 음악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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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프로듀서 그리고 연주자로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며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s)>와 <마지막 황제> 등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유명한 류이치 사카모토가 "인류와 핵에너지는 공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후쿠시마 핵 재앙의 고통이 일본 사회에 씻기 힘든 상처를 남기고 핵발전 폐지와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영향력 있는 예술인의 목소리는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과 송전탑 갈등이 심각해져 가는 한국에도 귀감이 될 만 하다.

 

아래는 <아사히신문>의 고토 요헤이와 류이치 사카모토의 인터뷰를 토대로 정리한 기사를 번역해 옮겼다.

 

류이치 사카모토

나를 평화주의와 반핵운동으로 처음 이끌었던 것은 노벨상 수상작가인 겐자부로 오에의 <히로시마 노트>와 나카자와 케이지의 만화 <맨발의 겐>이었다고 생각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세계적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어린 아이였던 나조차도 핵전쟁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했다.

 

냉전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한 나는 핵무기를 이용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 공포에 사로잡힌 것 같다.

 

핵무기와 동일한 핵분열 원리를 이용한 전력 생산에도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다.

 

십대 시절엔 베트남 전쟁이 격렬해지고 전세계적으로 평화를 위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나도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폭격이나 소이탄을 피해 달아나는 것처럼, 부모 세대로부터 전해 들은 전쟁의 공포나, 극심한 배고픔과 같이 베트남인들이 겪었을 일들을 상상하면서 살육은 중단돼야 한다는 마음을 강하게 품었고 내 안에 깊이 자리잡게 됐다.

 

1986년에 체르노빌 핵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 그저 난 다른 평범한 시민들처럼 관심을 갖는 정도였다. 지금에야 돌아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와 같이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 수십 년 전 핵발전소 폐쇄를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게 후회된다.

 

뉴욕에 거주하고 있던 2001년 9월 11일 아침 발생한 테러 공격은 일상적으로 전쟁이나 내전의 공포를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경험하게 했다.

 

살인이나 피살의 위협 아래에서는 음악을 창작하거나 감상하기란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들게 됐다. 하지만, 음악을 향유하기 위해 평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어떤 이들은 내가 순진하다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친구와 동료와 함께 모은 자료를 가지고 <히센(전쟁 반대)>이란 책으로 엮었다.

 

9/11 테러를 경험한 이후 확신하게 된 다른 한 가지는 생존하기 위해선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행동 뒤에 어떤 목적이 있고 어떤 배경이 숨어있는지를 이해한다면, 다음에 일어날 일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 한다면, 총알이 발사되는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미국이 왜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됐는지에 대한 이면의 역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9/11 이후였다. 이는 내가 일본 시민으로서 원자폭탄을 떨어트린 미국에서 사는 모순에 대해 스스로에게 직접 질문하게 만들기도 했다. 난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마련하지 못 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세 번의 다른 사건에 의해 심각한 방사선 피폭의 고통을 겪은 유일한 국가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위해서 일본은 전세계에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핵무기는 물론 전력 생산 방식으로도, 인류는 핵에너지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1952년 태어나 1978년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음악 제작자와 작곡가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사카모토는 대지진 피해자 지원에도 열의를 보여왔을 뿐 아니라 핵에너지와 핵무기 폐지와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번역=이지언, 사진=이토 조이@플리커

 

원문 Ryuichi Sakamoto: Mankind cannot live with nuclear ener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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