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남 주상절리 주변은 훌륭한 풍경을 자랑한다. 사진=이지언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 핵발전소가 있는지 아냐고 물어보면 대개 의외라는 반응이다. 경주시 양북면과 양남면에 걸쳐 자리 잡은 월성원전 말이다.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던 도성의 이름이다. 반달처럼 생긴 성의 모양에서 유래해서 반월성이라고도 부른다. 경주원전 대신 월성원전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양남면의 해안가 마을에 월성1호기 건설이 시작된 1977년 당시 경주시와 월성군의 행정구역 통합이 되기 전이라서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한해 천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일부겠지만, 핵발전소를 견학하러 경주를 찾는 방문객들도 수만 명 규모에 이른다. 월성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는 홍보관과 핵발전소 견학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한다. 가족의 경우 핵발전소 인근에 마련된 숙소를 무료 이용할 수 있는 ‘1박2일 원전숙박체험’을 신청할 수도 있다.
그럼 핵발전소 관광을 하러 꼭 홍보관을 견학해야 할까. 그렇진 않다. 사실 나아해변에 가면 누구나 ‘출입금지’ 표지판 뒤로 돔 모양의 원자로를 가깝게 관찰할 수 있다. 원자로와 고작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말이다. 혹시 핵발전소에 접근한다고 해서 주변에서 방사능 경고 표지 따위를 발견하리라고 예상해선 안 된다. 현실은 무서운 그림과는 다르다. 그 대신, 여느 해변에서처럼 낚시를 하거나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월성원전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나아해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량의 냉각수를 위해 바닷가에 위치하는 핵발전소에는 초당 50톤씩 온배수가 드나는다. 사진=이지언
원자로 앞 1킬로미터까지 개방
다만 월성원전이 방사능을 다량 방출한다는 사실은 미리 파악해두자. 월성원전은 경수로에 비해 방사성 트리튬(삼중수소)을 30배나 더 내뿜는다고 알려졌다. 경수로와 달리 월성원전은 감속재로 ‘무거운 물’인 중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삼중수소는 보통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해 물이나 수증기 형태로 존재한다. 실제로 경주 지역에서 측정한 빗물과 지하수에서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의 소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방사능이 검출됐다. 핵발전소 운영사는 건강 피해를 입힐 수준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피폭이 지속되는 경우라면 안전성을 장담하긴 어렵다.
방사능 유출뿐 아니라, 39만 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월성원전 부지에 저장 중이다. 월성원전보다 가동된지 더 오래된 부산의 고리원전에 저장된 5천여 다발보다 훨씬 많은 규모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서 우라늄을 태우고 남은 고독성 핵폐기물을 말한다. 여기엔 핵무기의 원료이기도 한 플루토늄도 포함됐다.
중수로인 월성원전은 농축우라늄이 아닌 천연우라늄을 쓰는 대신 5배나 많은 사용후핵연료를 발생시킨다(국내 23기 가동 원전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의 절반 이상을 월성원전이 차지한다).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 독성은 매우 오랫동안이나 사라지지 않아 수십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세계 어디에도 사용후핵연료의 영구 처분장은 아직 없으며, 월성원전처럼 어쩔 수 없이 발전소 부지 내에 보관 중이다.
일부러 핵발전소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경주의 동해안 여행코스를 짜면서 문무대왕암이나 양남 주상절리를 염두에 뒀다면 바로 월성원전 근처에 가겠다는 셈이다. 10미터가 넘는 정교한 돌기둥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주상절리를 감상할 수 있는 해안 탐방로는 남녀노소를 위한 명소다.
녹색연합, 한살림, 환경운동연합 등 핵없는세상을위한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이 5월30일 경주를 방문했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왼쪽 두번째)이 안내를 맡았다. 사진=이지언
양남 주상절리에서 문무대왕암까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형태의 양남 주상절리가 산책로 조성과 함께 일반에게 공개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애초 이 일대가 군부대의 해안 작전지역이었다가 2009년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그 희귀한 모습을 드러냈다. 펜션이나 횟집과 카페와 같은 편의시설이 변화된 상황을 보여준다. 읍천항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바다를 만끽하고 흔들거리는 출렁다리에 몸을 맡기며 재미도 느껴보자. 이 다리는 ‘지역의 문화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한수원 월성본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나아해변으로부터 북쪽으로 가면 문무대왕암이 있는 봉길해변이 나온다. 과거에는 해안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새롭게 개통된 터널이 유일한 통로가 됐다. 두 해변을 잇는 2.5킬로미터 구간의 봉길터널은 안전과 건강을 위해 반드시 차량이나 버스로 통행하길 바란다. 보행로가 확보되지 않았을 뿐더러 통풍이 원활하지 않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해안도로는 월성원전 인근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공사를 위한 도로로 전용됐다(그렇다. 경주엔 6기의 핵발전소뿐 아니라 국내 유일의 방폐장도 건설돼 운영될 예정이다). 방폐장은 아직 준공 전이지만 이미 2천5백여 드럼(1개 드럼=200리터)의 방사성폐기물을 반입해 보관 중이다. 방폐장에 저장되는 폐기물은 고준위 핵폐기물이 아닌 작업자의 보호장구와 같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이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주상절리가 내려다 보이는 해안 탐방로에서 경주시청과 원자력환경공단이 설치한 우체통 옆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지언
우리가 후손에게 남겨줄 유산은 무엇일까… 핵발전소가 경주에 들어선 것이 애꿎다고 여기면서도 여행 내내 머릿속을 사로잡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찬란한 신라의 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의 이미지로만 부각되는 것과 달리 경주는 산업화에 대한 갈증을 강하게 호소해왔다. 고도 경제성장 과정에서 과거 경주보다 규모가 작았던 인근의 울산과 포항은 각각 인구 200만과 70만의 공업도시로 성장한 반면 경주시는 26만으로 오히려 인구가 줄어들었다.
후손에게 남겨줄 유산
이는 경주가 처한 핵발전소의 역설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경주시가 스스로를 ‘원자력 산업의 메카’라고 추켜세우며 핵 산업을 유치하는 데 혈안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금 경주 양북면 장항리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와 직원 사택 공사가 한창이다. 주민들이 방폐장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받은 한수원본사 이전의 이행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원자력환경공단(구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과 양성자가속기 연구센터도 경주에 들어선 핵 산업 관련 기관이다.
이와 관련해 경주환경운동연합은 “(경주) 도심은 문화유적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로 묶였고, 일부 개발이 허용되는 지역도 기형적으로 이뤄졌다. 이런 박탈감이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쉽게 회유되면서 핵산업에 더욱 의존하는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면서 “(경주가) 주변 지역의 산업화 못지 않게 대한민국의 대표적 역사유적 도시로 잘 개발되고 시민들의 긍지를 살려왔다면 지금처럼 핵산업으로 만신창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감은사지는 양남 주상절리, 문무대왕암과 함께 월성 핵발전소 주변에 있는 대표적인 자연문화유적이다. 사진=이지언
멀찌감치 쌍둥이처럼 솟은 두 개의 삼층석탑은 어느덧 감은사지에 가까이 왔음을 알려준다. 신라 문무왕이 바다로 침입해 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지었다는 이 절터에는 신라시대의 가장 큰 석탑과 함께 금당과 강당, 회랑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있다. 건축물의 터와 주춧돌뿐이지만 천 년의 풍파를 견뎠다고 생각하면 새삼 고귀하다.
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이, 그러니까 따스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감은사지처럼 고귀하지는 못할지언정, 다름 아닌 핵폐기물이라면 틀림없이 매우 미안할 것이다. 이곳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월성1호기는 30년의 수명을 마치고 가동을 중단한 채 정부의 안전성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월성1호기의 공급 비중은 0.8% 가량으로, 7~15% 수준의 전력 예비율을 고려하면 대정전('블랙아웃')에 대한 영향은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계속 핵발전을 앞세울 것인가 아니면 지금에서라도 핵발전소를 줄여나가면서 새로운 역사를 찾아갈지는 오롯이 지금 세대의 결정에 달려있다.
이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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