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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원자력 없어도 도쿄의 여름은 시원해

사고가 발생한지 4개월 넘도록 계속되는 후쿠시마 위기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 핵 에너지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일상적인 원자력 사고의 위협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후쿠시마는 바로 자신들의 문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핵 문제와 관련된 현안이 있는 지역에서 매년 개최되는 반핵아시아포럼이 올해 7월 30일부터 8월 6일까지 일본에서 열린다. 이번 포럼에는 원전에서 여전히 유출되고 있는 방사능의 피해를 겪고 있는 후쿠시마현 지역 주민들이 참가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할 예정이다. 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한된지 올해 66주년을 맞는 8월6일을 전후해 국내외에서 수많은 이들이 모여 반핵평화를 염원하는 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환경운동연합도 다른 한국 참가단체와 함께 활동가를 파견해 아시아 지역의 반핵 연대활동이 진행되는 포럼 현장 소식을 웹사이트와 블로그를 통해 전할 예정이다.


7월30일 일본 도쿄, 비 온 다음 날이라 적당히 흐린 날씨인데도 이날 최고온도는 31도를 기록했다. 습도까지 높아 얼굴은 금세 번들거리기 시작한다.

어느 때보다 일본의 여름 나기가 궁금하다. 3월11일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피해 발생 이후 상당수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춰 전기 공급이 부족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전력 수요가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동 중단된 원전의 재가동 여부를 놓고 얼마 전까지도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도시의 풍경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에어컨, 전철, 불빛... 우리가 전기로 누리는 일상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우리 일행이 숙소로 묵는 중앙 유스호스텔의 센트럴 플라자 건물 입구에는 영업시간 안내문과 함께 설명문이 아래 붙어있다. “전력 사정으로 폐점 시간이 갑자기 변동될 수 있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고층으로 운행하는 엘리베이터에서 1기를 제외한 것도 같은 이유다. 투숙객들이 이용하는 로비의 천장에는 조명이 절반 가량만 켜졌다.

무엇보다 일본은 에너지절약을 위해 방송이나 포털은 물론 전철과 같은 교통수단이나 모바일 어플을 통해 전력소비량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리고 있다. 예를 들어 <야후 일본> 포털에 마련된 ‘절전, 정전’ 페이지에는 전력사용현황뿐 아니라 ‘전기예보’를 내보내고 있다. ‘전기예보’는 전력사의 전력현황과 기상협회의 기상 데이터를 기초로 향후의 전력 사용량이나 집중시간대를 추측해 전기절약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반 히데유키 원자력자료정보실 대표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도 일본은 수력과 화력만으로도 전력 소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며 “지금까지 전력 공급량 예보에 대해 90% 이상의 소비량을 기록한 날은 단 하루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성과를 한 눈에 볼 수도 있다. ‘절전달력’에는 지난해 대비 15% 절전을 목표로 이를 달성해 ‘스마일 도장’이 찍힌 날짜가 표시돼 있다. 이날의 성적은 ‘24% 절약’으로 나타났다. http://setsuden.yahoo.co.jp/tokyo/



앞서 일본 정부는 발전사인 동경전력과 도호쿠전력을 이용하는 전력 다소비업자에 대해 7월1일부터 지난해 대비 15% 절전을 의무화했다. 여기서 전력 다소비업자는 500킬로와트 이상의 전력을 계약한 사무실이나 공장으로 규정된다. 이 이하의 사업자나 가정에 대해선 자발적인 절전이 권고되고 있다. 민간의 전력 소비를 제한하기 위해 정부도 강도 높은 절전 목표를 세웠다. 가장 높은 목표를 내건 부처는 환경부는 28% 절전을 위해 직원들에게 평상복을 입게 하는 것은 기본, 교대근무를 통해 일부는 주중에 쉬고 주말에 출근하게 하는 방침을 세웠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전력 수요가 크게 오를 때마다 한국 정부는 ‘전기를 아껴 써달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겨울과 여름마다 반복되는 지식경제부 장관의 이런 행태는 얼마 전인 7월22일 이번엔 전력회사와 관계기관장들과 함께 모여 지난해보다 서둘러 발표했다는 차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름철 전력수급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는 애초 예측과 달리, 상당수 원전이 가동을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절전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 아야코 오가 ‘폐로(원자로폐지)액션’ 활동가는 “일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전기를 절약해야겠다는 생각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조명이) 어두워진 것에 대해서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과거에) ‘너무 눈부시지 않았나’하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자료정보실에 따르면, 현재 원전 54기 중 39기가 가동을 멈췄다. 후쿠시마 원전 6기와 같이 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로 가동이 멈췄거나 정기 점검 이후 지자체의 승인이 나지 않았기 때문.

결국 많은 일본 사람들은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일상의 변화나 심지어 경제적 부담까지도 원전의 재가동이 불러올 위험성과 바꾸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65%의 사람들이 ‘전기요금이 오르더라도 재생가능에너지의 전력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19%에 그쳤다.

글(도쿄)=이지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