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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먼지 가득한 서울에서 태양광 올리려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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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능한 모든 지붕에 태양광발전소를 짓는다면?’


델라웨어대의 에너지 전문가인 존 번 교수가 이런 과감한 상상력을 기초로 실제로 계산한 결과는 상당히 흥미롭다. 물리적으로 이용 가능한 전체 지붕 면적의 40%를 태양광으로 활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서울시 소비전력 25%에 해당하는 10TWh을 햇빛으로부터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낱 단순한 계산이지만,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활용한다면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는 잠재성을 다시 강조한 셈이다.


물론 서울의 현실은 낙관적 상상과는 정반대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에너지 소비량은 서울시의 담대한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달성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25%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지만, 배출량은 2010년 현재 기준년 대비 14% 가량 증가해 사실상 ‘낙제점’의 중간 성적표를 받았다. 


서울의 전력소비 ‘6년마다 핵발전소 1기’꼴로 급증

전기는 에너지 수요를 상승시키는 주범이다. 석유의 경우 고유가로 소비 상승세가 제자리걸음 상태이고, 완만한 상승곡선을 나타내는 천연가스 소비는 도시가스와 천연가스 버스 확대도입에 따른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두드러지는 부문은 전기다. 지난 20년 동안 서울지역의 전력소비량은 3배 가까이 늘었는데, 6년마다 핵발전소 1기 규모의 전기 수요를 늘려온 셈이다. 16개 광역지자체 중 서울의 전력소비량은 단연 1위다.


서울지역은 소비하는 전기는 다른 지역에 의존한다. 해안지역에 위치한 대형 발전소에서는 화석연료나 우라늄을 태워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과 같이 주요 수요지역으로 보낸다. 인천화력발전과 같이 그나마 가까운 곳도 있지만 울진 핵발전소를 비롯해 멀리 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기를 더 먼 곳으로, 더 효율적으로 송전하기 위해서 중간에는 거대한 송전탑이 들어선다. 원거리 전기 수송을 위한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송전탑은 초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 다발을 산과 논밭 위에 드리운다. 수도권에서 전기의 외부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농촌과 소도시가 희생되는 환경 불평등은 심화된다.



올해 서울시는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도시에서 생산하는 도시로 전환해나가겠다”면서 에너지 절약과 생산을 통해 2014년까지 200만TOE(석유환산톤)를 절감하는 ‘원전 1기 줄이기’ 계획을 발표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민 다수가 정부의 핵발전 확대 정책을 거부하는 가운데, 서울시가 내세운 ‘원전 1기 줄이기’란 슬로건은 변화된 여론을 시정에 반영하겠다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최근 일련의 공청회와 시민토론회를 여는 등 시민의 참여가 이번 계획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특히 시민발전소 확대는 현재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는 분야다. 서울시는 시민 참여형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방식인 시민발전소를 올해 25개소를 시작으로 향후 300개소까지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시민발전소 확대가 과연 가능하고 ‘원전 1기 줄이기’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2002년 발전차액지원제도가 도입되면서 여러 시민발전소가 만들어졌다. 재생에너지의 원가를 보장해주는 이 제도는 공동 출자로 설치한 소규모 태양광발전소로부터 발생하는 안정된 수익을 시민 출자자들에게 돌려주었다. 시민발전은 핵발전소의 중앙집중형 공급 방식을 거부하는 ‘대항발전소’ 운동의 맥락에서 추진됐다.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이 성공했던 전라북도 부안에서 2005년 이후 3기의 3kW 시민태양광발전소가 만들어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충북 괴산 ‘흙살림 햇빛발전소’(6kW), 경기도 부천 ‘부천환경교육센터 시민발전소’(3kW), 부산 ‘시민햇빛발전소’(5kW, 30kW, 50kW) 등 전국 각지에서 시민발전소가 생겨났다.


악명 높은 대기오염… 그래도 태양광은 ‘가장 풍부한 재생에너지원’

태양광은 서울에서 가장 잠재량이 뛰어난 재생가능에너지원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건물의 옥상과 벽면을 이용한 태양광 잠재량은 약 30MW로 매우 풍부하고 가장 적합한 에너지원으로 나타났다(의무할당제를 기반으로 하는 신재생에너지설비 유치방안, 2010).


그럼에도 서울은 그동안 시민발전소의 후보지로서 별로 매력을 끌지 못 했다. 무엇보다 서울의 악명 높은 대기오염은 태양광 설치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먼지로 뿌연 대기는 일조량이 높을수록 유리한 태양광의 발전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서 재생가능에너지가 차지하는 발전량은 매우 미미하며, 그나마도 폐기물이나 하수를 활용한 바이오 에너지가 대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서울은 가장 풍부한 재생가능에너지원을 거의 활용하지 못 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창립한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대기오염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발전의 수익성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협동조합은 서울지역의 태양광 발전시간을 하루 평균 3.2시간으로 산정했다. 태양광 기술의 효율이 꾸준히 개선되는 가운데 일반적으로 3.5시간 이상의 발전시간이 통용된다는 점에 비해서 보수적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태양광 부품가격이 하락하고 지자체의 공공기금을 활용해 저리융자를 받는다면 서울에서도 시민발전 조건은 불리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이는 최근 시흥에서 만들어진 시민발전소를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시흥환경운동연합과 시흥시 그린스타트 네트워크 등은 지난해 ‘시흥시민햇빛발전’을 구성하고 68명의 시민주주를 모집해 시흥시청 옥상에 30kW의 태양광을 설치했다. 12월말 착공된 태양광발전소는 전액 시민출자로 지어졌다. 애초 모금 목표액은 1억5천만 원이었지만, 모듈과 인버터의 가격 하락으로 실제 사업비는 9천5백만 원이 들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시흥시민햇빛발전소는 올해 초부터 시행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에 따라 전력사에 전력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시흥시민햇빛발전은 향후 12년 동안 kW당 450원에 전력을 판매하고 한해에는 약 1,300만 원의 순익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표 참조). 수익금은 출자자들에게 배당되거나 장학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30kW 사업성 분석[1년 기준] (단위:원)


30kW 사업성 분석[종합] (단위:원)


표=시흥시민햇빛발전의 사업성 분석. 출처=시흥시민햇빛발전


태양광은 비교적 넓은 설치면적이 필요하지만, 이 점은 건물이 많은 서울에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건물의 옥상뿐 아니라 지붕의 경사면, 벽면을 활용하면 별도의 설치면적이 추가로 들지 않는다. 이는 태양광 발전차액에도 유리하다. 건물의 기존 시설물을 활용해 설치된 태양광은 전력판매에서 1.5배의 가중치를 받게 돼있다. 건물의 외벽에 태양광 모듈을 마감재료로 활용하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발전 시스템’은 건설비용도 줄이면서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디자인 요소로도 활용 가능하다.

하지만 서울지역의 건물 부지에 대한 높은 임대료는 태양광 설치를 소극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공공건물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민간에 대한 임대료를 대폭 감면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을 검토 중이다.

추가로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가능에너지 설치에 대해 공공기금에서 저리 융자하는 방안도 협의되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 효율개선을 위해 서울시가 2010년부터 조성한 기후변화기금은 재생에너지의 보급 사업에 기금을 융자하거나 보조하도록 조례에 명시됐다. 이 기금은 주로 건물의 에너지효율화 사업에 활용돼, 매년 300억 원을 민간 시설물 개선에 융자 지원해왔다.

급증하는 전력소비를 염두에 둔다면, 대도시에서 태양광을 늘리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누구나 자문해볼 만하다. 과거 시민발전 사례의 경험을 들어보면, 시민들이 직접 발전소를 세우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자신의 손으로 발전기를 직접 만지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가 가능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의 이해당사자가 늘어났다. 이는 독일에서 ‘탈핵’ 결정을 이끌어냈던 힘이 35만 명에 이르는 재생에너지 산업 종사자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과거 핵발전 정책은 국가의 강력한 주도 아래 추진되던, 감히 쉽게 저항하기 어려운 ‘괴물’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면, 점차 많은 시민들이 핵발전소를 사회적 감시와 통제 아래에 둬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눈 밝은 시민들은 자신의 공동체에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대항발전소’를 늘려가고 있다.

글·사진=이지언 서울환경운동연합 대안정책팀 활동가

이 글은 환경운동연합 <함께 사는 길> 2012년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링크
우리동네 시민햇빛발전소: 서울아, 해를 품자

서울시 자료, 햇빛 도시 서울 … 1만여 개 건물옥상에 태양광발전 설치(2012년4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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