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고 Q&A』, 고이데 히로아키, 무명인, 8천원
『원자력의 거짓말』, 고이데 히로아키, 녹색평론사, 1만원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 정남구, 시대의 창, 1만6천5백원
『안젠데스까 안전합니까』, 이이다 데쓰나리, 가마나카 히토티, 서해문집, 9천5백원
후쿠시마는 세 번째 잔인한 봄을 맞았다. 여전히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사고는 수습되지 않았고 방사능 오염은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결국 “지금 일본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내도 방사능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공기, 물, 음식 등을 구하지 못”하게 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나 이른바 ‘전문가’들은 핵발전소에 대해 ‘안전하다’거나 방사능 영향이 ‘당장 인체에 해를 끼칠 정도가 아니다’는 식의 말만 되풀이한다.
유례없는 심각한 핵 재앙을 맞은 이웃나라의 상황을 보면서도, 한국의 핵산업계는 오히려 공세적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번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국내 핵발전소의 안전성과 추가 건설 계획, 그리고 방사선 피폭의 영향 따위에 독점적인 발언권을 행사한다. 반면 핵발전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전문가든 노동자든 핵산업계 종사자 중에서 핵발전의 위험성을 전면적으로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가 드물다는 것은 한국 탈핵운동의 어려운 상황을 말해준다.
그래서 후쿠시마 재앙을 전후해 일본에서 출간된 여러 핵발전 비판서들은 더 반갑게 느껴진다. 저자 약력을 보면 물리학이나 원자력공학을 전공했던 이들이다. 그들이 반핵운동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정부-기업-학계를 아우르는 핵산업계의 기득권 세력인 ‘원자력촌’ 안에서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았을 것이다.
일찍이 일본의 반핵운동가 다카기 진자부로가 그랬고, 『후쿠시마 사고 Q&A』, 『원자력의 거짓말』을 쓴 고이데 히로아키도 현재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실 조교로 일하면서, 그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호소해왔다. 고이데 히로아키는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발표를 대신해 시민들에게 실상을 알리거나 방사능의 해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지하 차폐막 설치와 같은 실질적 대책을 정부에 제안했다.
원자력핵공학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재생가능에너지 전문가로 유명한 이이다 데쓰나리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 소장은 핵발전소 안전 조사에 참여한 경험에 근거해 『안젠데스까 안전합니까』에서, 핵산업계 내부에 팽배한 안전 경시 문화를 질타한다. 이 책에서 함께 대담을 나눈 가마나카 히토미 감독 역시 세계를 돌며 방사능 피폭자들을 인터뷰하고 ‘핵의 최전선’인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을 취재한 다큐 등을 제작해온 현장 전문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일본은 유일한 원폭 피폭국인데, 어떻게 또 다시 파국을 자초했나”는 고통스러운 역설의 질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답하려고 했다. 핵무기 보유와 민간 차원의 핵발전 산업 육성을 추구해왔던 미국 등 패권국들은 방사능의 영향을 무시해왔다. 일본 원폭장해조사위원회가 9만 명의 피폭자를 검사하면서 정작 치료는 전혀 하지 않았던 사실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학자들은 핵무기의 파괴성에 대한 반성보다는 그저 과학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데만 주력했다. 결국 후쿠시마 재앙은 비판에 귀를 닫은 핵산업계, 다시 말해 “정·관·재가 일체가 된 ‘괴물’ 권력이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추진한 원자력 개발이 낳은” 참상이라는 것이다.
정남구 기자가 후쿠시마 사고에서 ‘원폭 피해자 2세’인 고 김형률을 떠올렸다고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에서 고백했듯, 시민과학자들과 고통 받는 이들이 연대하는 과정에서,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핵산업계의 관행은 점차 힘을 잃을 것이다.
이지언
이 글은 <탈핵신문> 2013년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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