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아무런 제한 없이 배출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내년 1월1일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제도에 따라 온실가스 대량 배출업체들은 이제 ‘배출권’을 확보해야 한다. 배출권이란 말 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정부가 배출권의 총량을 정하고 이를 업종과 업체별로 다시 할당한다.
2015년부터 배출권 거래제 시행
배출권의 총량은 곧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배출권을 단계적으로 줄여서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겠다는 목적에 맞춰 정해진다. 배출권이 남거나 모자라는 경우 업체들은 주식을 거래하듯 배출권을 팔거나 살 수 있게 해 ‘배출권 거래제’라고 불린다. 만약 배출권을 추가로 확보하지 않고도 온실가스 기준치를 초과한 업체는 배출권의 시장가격보다 3배 높은 수준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하기로 했다.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을 앞두고 산업계로부터 여전히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이 제도가 온실가스를 ‘가장 비용효과적인’ 방식으로 감축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기대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배출권 거래제가 포괄하는 약 530개 업체, 8100개 사업장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9%에 이른다(2011-2013년 직접배출량 평균 기준). 향후 배출권 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하느냐 여부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성패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배출권이 너무 많이 할당돼 남아도는 상황이다. 배출권이 지나치게 넉넉해지면 기업들로선 당연히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사라진다. 게다가 배출권이 너무 많아져 그만큼 가격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배출권 가격이 하락하면 산업계가 화석연료를 줄이거나 에너지 효율화에 투자하기보다는 차라리 값싼 배출권을 구매해 비용을 아끼려는 선택을 내리려고 할 것이다.
결국 과다한 배출권은 곧 온실가스의 과다 배출로 이어져 정책 실패로 연결된다. 2005년 배출권 거래제를 처음 도입해 시행한 유럽에서도 배출권이 과다 할당되면서 가격 하락과 일부 기업의 부당 이득으로 이어지는 등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정부가 ‘과도한 부담’을 호소하는 산업계의 입김에 밀려 배출권을 과다하게 할당하지 않도록 시민사회의 감시가 필요한 대목이다. 다른 한편으로 탄소시장에서 배출권을 사라지게 해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막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환경운동연합과 고려대학교 창업벤처기업인 ㈜토람이 공동 운영하는 ‘착한탄소기금’이 그것이다.
착한탄소기금은 시민들이 낸 기부금으로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들이고 이를 바로 없애는 활동이다. 배출권의 총량이 정해진 탄소시장에서 착한탄소기금이 없앤 배출권만큼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배출권 1만 톤 '소각'
착한탄소기금 준비위원회는 지난 6월25일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서 1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권을 태워 없애는 행사를 진행했다. 지난해부터 누적된 양을 합하면 11,859톤에 이른다. 한국인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연간 14톤(2011년 기준) 정도이니, 847명의 국민이 배출한 온실가스를 줄인 수준이다. 온실가스 1톤당 5천 원을 내면 누구나 착한탄소기금에 참여할 수 있다.
올해 착한탄소기금이 확보한 1만 톤의 배출권은 중유연료를 천연가스로 전환한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청정개발체제’ 사업을 통해 유엔기후변화협약기구(UNFCCC)로부터 발급받은 것이다. 착한탄소기금과 같은 자발적인 배출권 소각과 관련해, 2012년 자발적인 취소인증 제도가 마련된 이후 올해 6월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795,680톤에 해당하는 배출권이 공식적으로 소각됐다.
내년부터 배출권 거래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착한탄소기금과 같은 시민들의 참여 프로그램이 더 활성화될 수 있을까. 사실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새로운 제도 시행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업계가 되도록 배출권을 보유하면서 거래에는 소극적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탄소시장에서 배출권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유럽과 달리, 한국의 경우 대상 업체들만이 매매할 수 있어서 착한탄소기금과 같은 외부 행위자는 업체들의 자발적으로 배출권 매각에 기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는 ‘착한 시민’만큼 기후변화 대응에 책임을 보이는 ‘착한 기업’도 많이 나오길 기대하는 이유다.
이지언
이 글은 <함께사는길> 2014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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