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기후 재원이 석탄화력 발전소를 늘리는 데 쓰인다면 어떨까. 실제로 선진국이 기후 재원의 이름으로 개도국 석탄화력 발전소 건설에 지원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한 비난에 휩싸이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일본이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의 석탄화력발전 사업에 기후 재원 명목의 6억3000만 달러를 대출 형태로 지원했다. 인도 쿠드기에서는 석탄화력 건설로 인한 환경 오염을 우려하는 농민과 경찰이 무력 충돌로 갈등이 격화되어왔다.
일본 정부는 해당 석탄화력 사업이 고효율 기술이 적용돼 기존 석탄화력에 비해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한다. 개도국의 경제성장과 전력 공급을 위해선 석탄화력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도 제기된다. 이토 타카코 일본 외무성 대변인은 “고효율 석탄화력을 확대하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효과적인 접근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 재원은 유엔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선진국이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 지원을 약속한 자금이다. 하지만 기후 재원을 둘러싼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석탄과 같은 더러운 화석연료 기술의 수출이 지원 대상에서 확실히 제외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4일부터 인천 송도에서 열린 녹색기후기금 이사회에서도 이런 의견이 제시됐다. 지난해 일본은 녹색기후기금에 15억 달러, 한국은 1억 달러를 내겠다고 각각 약속했다. 녹색기후기금은 지금까지 100여개 국가로부터 약 102억 달러의 기여 약속을 받아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기간을 위한 초기 목표인 1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인도 쿠드기 석탄화력 사업에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자금의 일부를 조달했다. 일본국제협력은행은행은 자국 기업의 해외 사업에 대출이나 보증과 같은 지원을 제공하는 수출신용기관이다. 한국의 경우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해당한다. 일본국제협력은행은 석탄화력발전에 들어갈 발전설비 구매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2014년 1월 인도 발전기업인 NTPC에게 2억1000만 달러의 대출에 합의했다. 해당 발전설비는 도시바의 자회사가 제조사다.
석탄화력 발전소 건설을 둘러싸고 심각한 저항이 이어졌고, 경찰의 발포로 2명의 농부가 총상으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부상당한 농부 중 한 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길에서 쓰러지고 피를 많이 흘렸다”면서 이후 병원으로 옮겨져 두 달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농민 조직을 이끌고 있는 시드라마파 란자나기는 “우리에게 전기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건 아니다”면서 “미국의 경우 건강 피해를 우려해 석탄화력발전소가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태양광 발전을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 우리는 집에서 태양광 발전을 사용하고 있고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일본 환경단체가 일본국제협력은행 관계자를 만나 쿠드기 석탄화력발전 건설로 인한 인권 침해와 환경 피해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며 지원 철회를 촉구했지만 “인권 상황이 개선됐고 환경 문제가 해결됐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사업은 승인됐고 기후 재원의 목록에 포함됐다.
비슷한 일이 한국에 대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 한국 정부도 녹색기후기금에 기여를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모두 불투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일본 못지 않게 수출신용기관을 통해 자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석탄화력 발전소를 늘리도록 지원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실제로 2007~2013년 동안 한국 수출신용기관을 통한 해외 석탄 사업 지원금액은 총 46억6천만 달러로, 일본 150억 달러와 미국 72억4천만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녹색기후기금에 약속한 1억달러와 비교하면, 정작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보다는 온실가스 다배출 시설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셈이다.
한국 정부는 녹색기후기금의 사무국 유치만 홍보할 것이 아니라 해외 석탄화력 발전소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약속을 해야 한다. 개도국에서 한국 기업의 석탄 사업에 막대한 공적 재원을 계속 지원하면서 기후 재원에 대해 생색내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해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 위상과는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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