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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원자력발전이 살해했다” 피폭보다 심리적 붕괴가 더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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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목숨을 끊은 후쿠시마현 농부가 재배하던 양배추 밭. 사진=아사히신문

지난 24일 후쿠시마현에서 유기농 양배추를 재배해오던 한 농부가 목숨을 끊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유출된 방사성물질로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야채 등 일부 품목에 대해 출하 제한 조치를 내린 다음날이었다. 유족은 "원전에 의한 살해"라며 분통해 했다.

방사성물질에 의한 먹을거리 오염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이 공기뿐 아니라 빗물에서도 이미 검출됐다.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국내에서 야채나 우유와 같은 유제품에 어느 정도의 방사선 오염이 피할 수 없다. 구제역 침출수에 더해 우리의 토양과 하천의 오염은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후쿠시마 농부의 자살 사건은 우리가 원전사고와 관련해 놓쳐선 안 될 중요한 문제를 시사한다. 방사능에 의한 직접적인 건강피해를 넘어 사고 지역의 피해자들이 겪을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이 그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의 영향에서도 확인된다. 체르노빌 사고 20주기를 맞아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한 국제기구가 2005년 공동으로 펴낸 보고서 <체르노빌의 유산: 건강, 환경 그리고 사회경제적 영향>에서는 구소련 연방 지역에서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폭 문제보다 정신적 충격, 가난, 삶의 질 저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전하고 있다.

보고서는 "사고와 그 이후에 일어나는 심리적 고통은 개인과 공동체의 습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피해 지역의 주민들은 건강이나 삶의 질에 대한 자기평가에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감정을 심하게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피해에 의한 불안감은 한 세대에 그치지 않는다. "부모들은 경험 사례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신의 불안이나 지나친 보호 의식을 물려줄 수도 있다."

보고서는 "수십 년 동안 구소련에 걸쳐 성인 사망률이 크게 늘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기대 수명은 가파르게 줄어들었고, 특히 이는 남성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003년 러시아 연방에서 기대수명은 평균 65세였고 남성의 경우 59세였다"고 말했다. 다만 이 보고서는 자살에 의한 사망에 대해선 다루지 않았다.

이번 후쿠시마현 농부의 자살은 유족의 호소처럼 단순히 개인의 절망적인 선택으로 치부할 수 없다.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원전사고의 후유증은 개인과 공동체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길 것이다.

방사선은 긴 반감기의 특징에 의해 그것이 미칠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영향은 오래 지속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만큼 그 피해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런 모든 영향은 물론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며 무엇보다도 핵에너지의 비용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대규모 석유 유출 사고에서도 보여지듯, 더럽고 위험한 에너지는 그것이 발생시키는 온갖 피해를 주민이나 생태계를 비롯한 사회로 전가시키고 다시 경제적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지언

링크 <체르노빌의 유산: 건강, 환경 그리고 사회경제적 영향> 보고서
http://www.iaea.org/Publications/Booklets/Chernobyl/chernobyl.pdf

지난 24일 후쿠시마현 스카가와시의 64세 농부가 목숨을 끊었다.

후쿠시마현 스카가와시에서 24일 아침, 64세의 채소 농부가 자택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정부가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야채 일부에 대해 "섭취 제한"의 지시를 내린 다음날이었다. 농부는 지진의 피해에 낙담하면서도 재배한 양배추 출하에 의욕을 보였다. 유족은 "원자력 발전에 의해 살해됐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지진으로 자택과 헛간에 피해를 입었지만, 7500포기 정도의 양배추는 무사했다. 양배추는 품질 검사를 받던 중이었고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유족에 따르면, 농부는 21일 시금치 등에 출하 정지 조치가 취해진 뒤에도 "상황을 봐가면서 양배추는 조금씩 출하해야지"이라고 말하며, 헛간을 수리하기도 했다.

23일 양배추 섭취 제한 지침이 내려지자 그는 목 메인 말을 반복했다. "후쿠시마 야채는 이제 끝났다." 차남(35)의 가슴엔 아버지의 말이 아직도 또렷하게 울린다. 그는 "아버지는 지금까지 심혈을 담아 이루어온 것을 모두 잃은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0년 전부터 유기농을 고집하며 자신이 개발한 부엽토를 쓰는 등 토양 개량을 거듭해왔다. 10년 가까이 양배추 재배에 몰두해 그 지역에서 처음으로 높은 품질을 생산하게 됐다. 그가 재배한 양배추는 일본 농협에서도 인기가 좋았고 지역 초등학교의 급식에도 조달됐다. 그는 "아이들이 먹는 것이니까 신경을 많이 써야 해"라며 안전한 야채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드러냈었다.

유서는 없었지만, 이후에 발견된 그의 작업일지는 3월23일까지 작성됐다. 장녀(41)는 "이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건가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요. 모든 농가가 불안해하고 있어요. 아버지 같은 희생자가 더 늘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고 호소한다.

<아사히 신문> 3월29일자(일본어 원문은 아래 링크)
http://www.asahi.com/national/update/0328/TKY2011032804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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