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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원자력 팔아서 돈 벌자는 생각은 20세기형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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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들은 3∙11 이후에 정말 변했다. (65%가 중단된 핵발전소의 재가동에 반대하는데) 이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수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이다 데츠나리 일본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 소장(사진)은 어제 열린 강연에서 핵발전소의 재가동에 반대하는 일본의 다수 여론이 이후 상황에 따라 뒤바뀔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홋카이도 전력의 토마리 핵발전소 3호기가 정기 점검에 들어가면서 일본은 지난 5월6일부터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게 됐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오는 여름철 전력수요가 부족할 것이란 예측자료를 근거로 일부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추진 중이지만, 해당 지역주민과 반핵단체들은 이에 강하게 맞서고 있다.


'핵발전소 재가동 반대 여론은 꺾이지 않을 것'

이이다 데츠나리 소장이 정부와 기업의 ‘정전 협박’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하는 여론이 다수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각성된 일본인들의 인식이다. 그는 “3∙11 이전에는 일본 사회가 원자력이나 방사능에 대해서 몰랐고, 정부나 전력사가 이렇게까지 엉터리인 줄 몰랐다.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일본인들은 실상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이유는 전반적인 방사능 오염으로 후쿠시마 사고는 장기간 동안 ‘현재진행형’ 재앙으로 남을 것이란 전망이다. 세슘을 비롯한 방사성물질이 물과 토양을 통해 음식물까지 오염시켰고, 내륙 하천을 통해 방사능이 도쿄에까지 계속 유입 중이다. 일본인들에게 방사능 오염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일본에서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방사능 오염은 세 차례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떨어졌던 원폭 투하와 지난해 일어났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다. 인간이 자신을 방사능에 오염시켰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는 미래 세대와 세계의 다른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책임을 지고 있다.”


후쿠시마 재앙 이후 핵발전소를 둘러싼 한국 내 여론에 대해서 이이다 데츠나리 소장은 “이렇게까지 가까운데도 ‘강 건너 불구경’이란 인상이다”고 말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한국에서 원전 지지율이 과반수에 가깝다고 들었는데, 이는 3∙11 이전의 일본 사회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환경재단과 동아시아탈원전자연에너지네트워크의 공동 주최로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 커뮤니티에서 열렸다.


재생에너지 확대만이 '유일한 출구전략'

지난해 여름 일본에서는 일부 핵발전소가 가동하는 가운데 순환정전과 대형 사업장의 의무 절전을 비롯한 강도 높은 수요관리대책으로 다행히 심각한 전력난을 피할 수 있었다. 올해 전체 5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면서 천연가스를 포함한 화력발전의 비중이 커진 가운데, 지난해 수준의 절전 실천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이다 데츠나리 소장은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에너지 확대만이 ‘유일한 출구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핵발전소 건설비용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으며 후쿠시마 사고로 안전기준이 강화되면서 비용 상승세는 더욱 심화됐다. 높은 투자 리스크를 근거로 은행이 핵발전 분야에 융자를 꺼리는 이유다.


건설비용뿐 아니라 재해로 인한 천문학적인 손해액을 고려하면 핵발전은 결코 경제적이지 않다. “한국의 대통령도 그런지 모르겠는데요, 원자력을 팔아서 돈을 벌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머리가 20세기적 사고에 머물러있는 셈”이라고 이이다 소장은 비판했다.


반면 재생에너지의 성장세는 확고부동하다. 이이다 데츠나리 소장에 따르면 풍력 설치규모는 지난해에만 4천4백만 킬로와트를 기록해, 1000MW급 핵발전소 43기의 분량이 늘었다. 풍력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현재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3년 뒤에는 핵발전을 추월하게 된다. 풍력의 뒤를 따라가는 태양광도 10년 이내에 핵발전보다 늘어날 것이란 설명이다.


사회에 필요한 에너지의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부터 공급할 수 있다는 여러 시나리오가 유럽뿐 아니라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지난해부터 한국과 일본에서도 발표되기 시작했다.


우라늄이나 화석연료 기반의 대형발전소에 의존해왔던 기존의 에너지 공급정책에 맞선 새로운 대안 시나리오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이이다 데츠나리 소장은 독일과 덴마크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확대해온 사회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철학과 비전을 가진 정치인과 이를 실현할 현명한 정책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5월10일 환경재단과 동아시아탈원전자연에너지네트워크의 공동 주최로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 커뮤니티에서 열린 이이다 데츠나리 강연회에 가수 마사키 씨, 통역을 맡은 환경운동가 박매화 씨,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한승동 한겨레 기자가 함께 했다(왼쪽부터).


일본에서는 두 달 뒤부터 재생가능에너지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고정가격 구매제도가 실행된다. 이이다 데츠나리 소장은 제도 실행 초기에 태양광 설치량의 급증을 예상하면서도 전력사의 독점 체계나 여러 규제를 염두에 두며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증가하지 못 하도록 억제하는 힘이 여전히 존재”고 말했다. 


현재 일본에서 천연가스를 포함한 화력은 핵발전을 대체하며 90%의 발전비중을 차지한다. 수력은 8% 그리고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를 비롯한 재생가능에너지는 2% 수준이다.


"서울시민들도 에너지 혁명에 함께 하자"

단기간 내 재생가능에너지가 주요 발전원으로 확대되기는 어렵겠지만, 에너지 독립의 실험은 지역에서 이미 활발하다. 나가노현은 2050년까지 에너지의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부터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나가노현 이이다시에서는 2004년부터 시민출자 발전소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유치원과 주민회관과 같은 공공건물의 지붕 등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설치해 전기를 판매하고, 지역 시설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 절약 서비스 사업도 병행됐다. 정부의 보조금 없이 소액의 시민 출자금으로 태양광발전소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은 서로 공유됐다. 현재 이이다시는 일본에서 태양광 밀도 가장 높은 지역으로 변했다.


이날 강연회에 이아디 데츠나리 소장과 동행해 자신을 ‘광합성 아티스트’로 소개한 마사키 씨는 “지난해 나가노현의 시민과 기업, 지자체가 함께 재생가능에너지 100% 실현을 위한 ‘신슈네트워크(신슈는 나가노현이 위치한 지역의 이름)’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혜와 의지가 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이이다 데츠나리 소장의 말이 마음에 든다”며 “서울시민들도 에너지 혁명에 함께 합시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탈원전 지방자치단체장 회의가 결성돼 전국 70개 단체장이 참여했다. 이이다 데츠라니 소장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실행하는 지역에서는 이를 지원하는 지자체장이 공통적으로 존재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2월 45개 지자체장이 탈핵 도시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변화는 주변부에서 만들어지고 일어난다. 지역에서의 실천에 근거한 정책은 결국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교토대학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하고 10년 이상 핵발전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던 이이다 데츠나리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ISEP) 소장은 북유럽의 재생에너지 현장을 보게 된 뒤에 이른바 '원자력 마을(한국어로는 '핵마피아' 또는 '원전마피아'와 유사한 일본어 표현)'에서 탈출했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 종합자원에너지조사회 기본문제위원회와 내각 관방 원자력 사고재발 방지 고문회의 위원에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와 됴쿄도 등 지자체 에너지 정책에 큰 영향력을 주고 있다.

글·사진=이지언

링크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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