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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원자력이 청정에너지? 재생가능에너지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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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초원 위에 서있는 커다란 나무 주위에서 평화롭게 뛰어놀고 있다. 맑은 하늘 뒤에 하얀색 돔 모양의 형체가 보인다. 성우가 정해놓은 멘트를 읽는다. "환경을 지키는 에너지 원자력". 화면 아래 자막은 '온실가스 배출량은 화석연료의 1~2%'라고 쓰여있다….

부지런함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련된 광고를 이렇게 꾸준히 틀어주니, 보는 나로서도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2년 전, 원자력 산업계는 "원자력이 기후변화를 막을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중요한 대안 중의 하나"라고, 다소 방어적 뉘앙스로 대처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기후변화 이슈가 언론을 장식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고, 마침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카드를 빼들었다.

며칠전 국무총리실에서 입법예고한 녹색성장기본법안에는, 원자력이 아예 '청정에너지'로 명시돼 있다. 지난 1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국제 원자력산업계는 원자력을 교토의정서에 의한 청정에너지체계(CDM)로 인정받으려고 무던히 전방위적인 로비활동을 벌였다. 정부가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10~11기 추가 건설하기로 결정한 한국에서 원자력 산업 및 대규모 건설사들은 여러모로 반가운 국면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니, 광고비로 매년 120억 원의 세금을 쓰는 원자력문화재단에 대해 '거짓말 발전소'라며 "즉시 해체"를 요구하던 목소리는 바위 앞의 계란처럼 위태로운 형국에 몰려있다.


▲ 원자력 에너지의 '지구온난화 방지' 효과를 홍보하는 원자력문화재단의 광고.

원자력, 정말 '탄소 제로'일까
원자력 산업계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는 그렇다 치고, 과연 누구 말이 옳을까? 흥미롭게도, 마치 입을 맞춘 것처럼 해외나 국내의 원자력 산업계는 똑같은 주장을 내놓고 있다: 바로 '깨끗한 에너지'로서의 원자력.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자력이 아예 '탄소 제로(carbon-free)'의 발전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광고 문구처럼, 원자력 발전은 화석연료에 의한 발전방식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저히 낮은 것이 사실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호기심이 여기서 그친다는 것이다. 이렇게도 물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원자력 발전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그리고 그것은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와 비교한 이후에도, 과연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지난해 발표된 논문 <핵발전으로부터의 온실가스 배출량 평가: 비판적 연구>(Benjamin K. Sovacool, 2008)라는 논문은 여기에 대해 어느정도 답을 내놓고 있다.

전 과정평가를 통한 원자력의 온실가스 평가
우선 저자의 연구 방법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원자력 발전소의 이산화탄소 환산 배출량을 연구한 103개의 논문을 검토했고, 세 가지 엄격한 원칙을 만족하는 19개의 연구를 뽑아냈다. 세 가지 기준이란, 10년 내 발표된 최근 연구, 대중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연구, 내용의 출처와 명확한 방법론을 명시한 연구를 말한다.

이렇게 선정된 기존의 연구를 바탕으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전 과정평가를 통한 이산화탄소 환산 배출량을 계산한 결과, (즉 결론만 말하자면) 1 킬로와트시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평균 66.08 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고 밝혔다. 최저 1.36 에서부터 최대 288.25 까지의 평균값이다(단위는 g CO2e/kWh).

여기서 각 과정별로 비중을 따져보면, (1)우라늄 채굴과 제련부터 농축까지의 초기단계에서 17, (2)발전소 건설에서 19, (3)운영 과정에서 9, (4)연료 처리와 임시 저장 및 폐기물 영구격리를 비롯한 후기단계에서 15, (5)마지막으로 원자로 폐기와 우라늄 광산의 매립을 포함한 폐쇄 과정에서 13 을 차지한다.

초기 건설 운영 후기 폐쇄  합계
 온실가스
배출량
17  19  15  13   66.08
▲ 각 원자력 발전소당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 (g CO2e/kWh)

화석연료에 의존한 원자력 산업
그렇다면 66.08 이라는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과연 원자력 발전소는 '탄소 제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발전소 건설과 폐쇄, 그리고 우라늄 채굴과 농축의 에너지 집약적인 연료처리 과정에서 기존의 화석연료에 의존한 기반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자력 에너지가 결코 '탄소 제로'나 '배출 제로'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 우라늄 채굴이나 수송에서 화석연료에 의존한 기반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사진출처:Canadian nuclear association

이어서 그는 "원자력 에너지가 비록 석탄과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보다 (순수하게 온실가스 배출량의 관점에서) 더 나은 편이지만, 재생가능에너지나 소규모 분산전원보다는 뒤떨어진다"라고 밝히고 있다(아래 표). 풍력은 9~10, 태양열은 13, 태양광은 32, 그리고 지열과 바이오가스는 각각 35, 14~41 수준으로 나타났다.

▲ 전기발전원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량의 전 과정평가

기후변화 대안이라고? 스스로 증명하라!
저자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대부분의 자료가 갖는 지나친 불투명성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지적을 쏟아냈다. 그는 "원자력 발전소의 전 과정과 관련된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복잡성과 변수를 구체화하려기 보다, 대부분은 그것을 덮어버리려고 한다'며, "원자력 에너지가 실제보다 더 깨끗하거나 더 오염을 유발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양쪽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꼬집는다.

결국 원자력 에너지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청정에너지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원자력 산업계는 관련된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확한 검증을 통해서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비밀주의에 갇힌 채, 원자력이 화석연료보다 낫다는 식의 유리한 주장만 반복한다면, 온난화 방지와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진지하고 생산적인 논의는 그만큼 연기될 수밖에 없다.

논문 <Valuing the greenhouse gas emissions from nuclear power: A critical survey> 원문 다운로드(영문) [pdf]

글=이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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