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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의 고의적 엉터리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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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정부가 “주민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근거는?

어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노원구 도로에서의 방사능 측정결과를 평가하면서 “인근 주민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원자력안전위는 월계동 주택가와 학교 주변 도로를 이용하는 지역주민이 받을 수 있는 연간 방사선량은 0.51-0.69밀리시버트(mSv)로 나타나, 일반인 연간 선량한도 1mSv 미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매일 1시간’이라는 피폭 시나리오에 근거했다. 원자력안전위는 주택가 도로뿐 아니라, 상가가 도로에 바로 인접해 밀집해 있는 학교 앞 도로에도 이 근거를 동일하게 적용했다. 인체가 받는 피폭량은 방사선량의 강도와 피폭 시간에 비례하다.

하지만 주민들은 대체로 정부의 설명에 대해 납득하지 않는 것 같다. 아래는 한 언론이 보도한 주민의 반응이다.

10년을 살았다는 이모(36·여)씨는 “집 앞 도로에서 서울시 평균치의 25배에 달하는 방사능이 검출됐는데도 정부는 염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하니까 혼란스럽다”면서 “항상 차가 다니는 도로이기 때문에 먼지가 날리고 바로 옆에 주택가와 상가가 있어 우리들은 사실상 24시간 방사능에 노출된 상태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도로에 붙어서 24시간 생활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이 지역에서 검출된 방사능 수치는 인체에 유해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방사능 도로에 종일 노출됐는데…정부선 걱정말라니”… ‘아스팔트 방사능’ 서울 월계동 현장 르포(2011년11월7일, 국민일보, 이선희 기자)

어떻게 된 일인지, 정부 관계자가 주민들보다도 현장의 생활환경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일까? 정부가 왜 이런 근거를 들이댔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례가 얼마 전 일본에서 있었다. 

지난 1일 차일드세이브와 환경운동연합이 노원구의 방사능 아스팔트에서 계측한 결과, 시간당 2.146밀리시버트가 조사됐다. 자연 방사선량의 17배 이상 수준이다. 다음날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이 구간을 정밀 조사한 결과 인공 방사성 핵종인 세슘137이 검출됐다.


지난 10월 도쿄도 세타가야구 주택가의 한 도로에서 고선량의 방사선이 계측된 것. 정부가 아닌 시민이 최초로 계측해 제보했다는 점, 그리고 대도시의 한 주택가에서 방사능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노원구 사례와 유사하다.

주목할 부분은 일본 정부가 방사선량에 대한 건강영향을 평가하는 대목이다. 문부과학성은 시간당 3.35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을 놓고 건강에 해는 없다고 발표했다. 월계동의 경우 시간당 최대 1.9마이크로시버트가 계측됐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상당히 높은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문부과학성의 계산법은 이랬다. 오염 부분 옆에서 매일 8시간씩 365일 서있게 되면, 연간 17밀리시버트의 피폭량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반인의 연간 피폭선량을 1밀리시버트에서 20배 상향해 20밀리시버트로 재조정했다. 17밀리시버트라면 이번에 원자력안전위가 발표한 최대 0.69밀리시버트의 무려 24배 수준이지만, 결국 일본에서는 기준치 이하라는 것이다.

한국 원자력안전위는 ‘매일 1시간’ 근거를, 일본 문부과학성은 ‘매일 8시간’ 근거를 댔다. 어느 쪽이든 결국 정부가 도달하고 싶었던 결론은 ‘기준치 이하’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결론에만 도달하면 정부는 “건강에 이상 없다”고 발표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어떤 근거가 적용됐는지는 매우 임의적이고 정치적으로 결정됐다.

‘매일 1시간’ 시나리오 외에 원자력위원회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아스팔트 먼지가 공기로 비산돼, 인근 주택이나 상가로 이동해 잔류하거나 인체에 흡입돼 내부피폭을 일으킬 위험성이다.

도시의 경우 포장도로에서 발생하는 비산먼지가 대부분이다. 환경부 환경통계연감(2002)를 보면 서울의 경우 포장도로에 의한 비산먼지 배출이 78%에 해당한다. 주요 원인은 차량의 통행. 타이어와 아스팔트의 마모로 도로표면에 산재한 먼지가 차량의 움직임에 의하여 재비산하여 발생하는 것이다(비산먼지 국가배출목록 구축, 김현구 외, 2003).

지난 6일, 두 아이와 엄마가 오염된 아스팔트가 철거된 도로를 걷고 있다. 아스팔트 해체는 상가 건물의 문턱 바로 앞까지 이뤄졌다. 거꾸로 말해 주민들은 아스팔트와 바로 인접해 생활해왔다는 의미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방사선영향평가 자료를 보면, 오염된 도로이용과 관련된 ‘세부 피폭 시나리오’에 도보이용, 차량탑승, 도로유지 보수(차선도색, 교통표지판 설치, 드릴링 작업) 그리고 도로상에서의 야외활동 등 4가지 요인만을 포함시켰다. 비산먼지에 의한 인체 흡입 경로는 ‘피폭 시나리오’에서 배제된 것이다.

이는 치명적인 발암물질인 방사성 세슘137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방사성물질이 인체에 흡입될 경우, 여기서 방출되는 방사선이 장기나 세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위험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는 방사성물질이 10년 이상 동안 아스팔트에 ‘고정’됐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데 그쳤다.

주민들의 안전에 이상이 없다고 굳건히 믿는 원자력안전위는 결국 서울시장이 어렵게 검토를 약속했던 건강역학 조사를 성급한 ‘즉석행정’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한 언론은 “후쿠시마 원전사태 같은 대형 사고에서 피폭되지 않은 이상 (그 원인이) 방사선 노출 때문인지를 밝혀낼 수 없다”는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어제 월계동으로 찾아가 주민들을 만났다. 원자력안전위의 발표가 있고 난 직후였다. 전날 노원구청이 진행한 주민설명회가 의문점을 푸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됐다며 환경단체에 다시 설명을 의뢰한 것이다.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주민 대표가 원자력안전위 발표를 보도한 신문 기사를 인쇄해서 읽어 내려갔다. 

지난 6일 방사능 아스팔트가 검출된 월계동 주택가를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 첫번째)이 아스콘을 걷어낸 자리에서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원전특위원장(오른쪽 두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은 불안해했다. 정부가 방사능에 대해 ‘기준치’ 이하라고, 그래서 “안전에 문제 없다”고 했더라도, 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 했다. 특히 아이 엄마들은 더욱 그랬다.

한 주민은 “정부가 문제를 이 정도에서 덮으려고 한다”면서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떠들었던 언론도 똑같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불안감을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건강조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물론 이상증세가 방사능에 의해 나타났는지 그 연관성을 밝혀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최소한 인근 주민들의 염려를 해소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오염에 의한 심각한 사회적 영향 중 하나는 바로 심리적 피해다. 원자력 안전 당국이 열심히 계산기를 돌렸는지는 몰라도, 주민들의 불안을 덜어내는 데는 완벽히 실패했다.

글과 사진=이지언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

링크
원자력안전위원회 보도자료, 서울 노원구 일부도로 방사성 물질 분석 결과 및 향후대책(11월8일)
http://www.nssc.go.kr/nssc/notice/report.jsp?mode=view&article_no=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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