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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거래제, 순조로운 출항 전부터 좌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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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로 예정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눈앞에 둔 가운데 정부가 준비를 위한 법적 시한을 넘기면서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법에 따라 제도 시행 6개월 전인 6월30일 전까지 배출권 할당계획이 마련돼야 하지만, 이미 기한을 2개월 이상 넘기도록 확정되지 않고 있다.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올해 1월 국무회의에서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이 확정된 데 이어 5월말에는 환경부가 배출권 할당계획안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기획재정부장관이 지금까지 할당위원회를 개최를 하지 않고 수차례 연기해왔다. 할당계획 확정이 미루어지면서 7월31일까지 완료됐어야 할 할당대상업체 지정도 무산됐다. 법령이 정한 절차를 정부 기관이 잇따라 위반한 셈인데, 사회적 토론과 여야 합의에 따른 국회 입법권을 명백히 침해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새롭게 도입되는 배출권거래제를 안착시켜야 할 정부가 오히려 법령 위반이라는 직무유기까지 감행하며 파행을 거듭하는 이유에 대해 산업계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것 말고 설명할 길이 있을까.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배출권거래제 시행에 따른 산업계의 기득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비합리적인 주장을 제기해왔다. 심지어 지난 7월엔 제도 시행을 2020년 이후로 미룰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정부가 산업계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배출권거래제를 강행했던가. 그렇지 않다. 제도 시행이 애초 예정된 2013년이 아닌 2년 뒤로 유보됐고, 산업 부문의 감축 비율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비율인 30%에 크게 못 미치는 18.5%로 설정됐을 뿐 아니라, 2015-2017년까지의 1차 연도 동안엔 100% 무상할당(2018-2020년엔 무상할당 97%, 다만 ‘민감업종’에 대해서는 계속 100% 무상할당이 가능)과 감축률을 추가 10% 완화한 16.6%로 적용한 과정은 합리적 토론보다는 산업계의 부담을 가중시켜선 안 된다는 신경질적인 호소에 따른 결과였다.


6월까지 예정된 할당계획이 무산되면서 시행이 연기되는 것 아니냐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보수 언론 <동아일보>는 제도 시행 연기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단독]정부, 온실가스거래제 연기’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제도 시행 여부를 둘러싼 논의 과정이 매우 불투명한 가운데, 기획재정부, 산업부, 환경부 장관이 8월14일 비공개 회동을 갖고 배출권 거래제를 내년에 계획대로 시행하되 기업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업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체 할당량의 5%에 해당하는 9천만 톤 가량의 배출권이 추가 할당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촉구해오던 시민단체들조차 ‘제도 무용론’을 언급할 정도로 치명적인 정책의 후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외에도 과징금을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약 530개 업체, 8100개 사업장을 포괄한다. 직접 배출량뿐 아니라 간접 배출량도 포함되는데, 값싼 전기요금으로 산업계가 특혜를 받는 상황을 고려하면 타당하다. 이들 대상업체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1.4%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출권거래제의 성패가 국가 감축목표 달성 여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7위(2011년 배출량 기준)에 1인당 배출량 세계 3위를 기록하는 한국에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과 이행 노력은 우리 사회의 합의이자 국제 사회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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