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국민투표에서 94%가 핵발전에 반대했다. 사진=Alberto Pizzoli/AFP
“아마도 이탈리아는 핵에 결별을 고해야 할 것 같다.”
투표가 종결되기도 전에 실비아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패배를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3일 로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재생에너지원에 모든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위기가 발생한 이후 핵 에너지의 이용에 대해 최초로 열린 이탈리아의 국민투표에서 반핵운동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최악의 핵 참사였던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고 1년 뒤인 1987년 이탈리아는 이번과 같은 국민투표를 통해 핵발전 정책을 포기하기로 했다. 당시 정부는 단계적으로 핵발전을 폐지하기로 결정했고, 1990년 마지막 핵발전소가 폐쇄됐다.
후쿠시마 이후 핵에너지에 관한 최초의 국민투표
베를루스코니 정부 들어서 핵발전 비중을 25%로 높이고 그에 따라 핵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자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1년 동안 보류하기로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2014년을 시작으로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의도는 포기하지 않았는데, 결국 이번 국민투표가 그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투표 결과, 이탈리아 국민의 94%가 핵발전에 반대하는 것으로 공식 추산됐다.
이탈리아의 환경단체인 레감비엔떼의 빅또리오 코글리아띠 데짜 사무총장은 “오늘 핵 에너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틀림 없다. 국가 발전의 새 전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결과를 통해 이탈리아는 스위스, 독일과 같이 앞서 핵발전 폐지 정책을 선택한 다른 유럽 국가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지난 20년 동안 유럽연합(EU)에서는 177개에서 143개로 핵발전소가 34개 줄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143개의 핵발전소 중 87개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핵심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의 결과가 발표된 뒤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Roberto Monaldo/AP
스위스에서는 지난 5월에 있었던 대규모 반핵 집회 이후 핵 에너지의 이용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5기의 핵발전소는 정해진 수명까지 가동된 이후 2034년엔 최종적으로 폐지될 예정이다. 핵 에너지가 충당했던 스위스 전기의 40% 가량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재생가능에너지가 대체하게 된다.
에너지효율과 재생에너지 확대하면, 핵 에너지 ‘불필요’
스위스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30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22년까지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독일 전역의 20개 도시에서는 10만 명 이상이 핵발전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었다(아래 관련글). 독일은 내년을 시작으로 총 17의 핵발전소 중단에 들어간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 독일은 건물의 효율성 향상(벽체 단열보강이나 이중창 도입)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에너지 수요가 재생에너지원만으로 충당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론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를 비롯한 수많은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지난 3월 유럽연합은 “2050년 저탄소 경제를 향한 로드맵”이라는 제목의 새로운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수준에서 80-95% 저감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유럽연합의 저탄소 경제에서 재생가능에너지는 커다란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여기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에너지효율 향상,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투자 그리고 유럽 대륙 전역에 걸친 전력망 구축이 그것이다.
지난달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도 2050년까지 세계의 에너지 수요 중 80%는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충당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핵발전 없는 에너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힘을 더하고 있다.
한편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는 2014년까지 완전 중단하기로 한 7개의 핵발전소에 대한 가동 허가를 연장하지 않을 계획이다. 유럽의 최대 핵발전 국가인 프랑스에서도 77%의 국민이 핵발전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프랑스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발표했다.
또 폴란드에서는 집권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농민당(PSL)이 핵발전 정책에 대해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지난 13일 요구했다. 현재 발전량의 94%를 석탄에 의존하는 폴란드는 유럽연합의 온실가스 배출 제한 규정에 따라 화석연료를 줄이기 위해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 첫번째 핵발전소를 가동하려는 계획이다.
앞서 도날드 투스크 총리가 이끄는 폴란드의 중도우파 정부는 후쿠시마 위기 이후에 모든 핵발전소를 폐지하기로 한 독일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의 기존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당의 로버트 만테주크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농민당은 핵발전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최근 일본의 상황이나 독일의 핵발전 폐기 결정과 관련해 사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에 따르면 15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폴란드 원전 수주를 놓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 프랑스, 일본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한국전력을 비롯한 한국 컨소시엄이 수주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서 한국은 지난해 3월 폴란드와 핵에너지 협력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지언
독일이 '핵 포기 선언'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독일의 사례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요인으로 분석했다. 한국에서 독일과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원전 포기를 독일의 보수당 정부가 결정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첫째는 독일인의 오랜 원전 반대 전통과 에너지 전환에의 광범위한 참여, 둘째는 원전 없이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민간 싱크탱크의 존재, 셋째는 원전 폐기와 에너지 전환을 핵심 강령으로 채택한 정당의 존재다.”
반세기 원전 반대 결실 맺다 [한겨레21] 2011.06.13 제864호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9786.html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독일의 사례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요인으로 분석했다. 한국에서 독일과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원전 포기를 독일의 보수당 정부가 결정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첫째는 독일인의 오랜 원전 반대 전통과 에너지 전환에의 광범위한 참여, 둘째는 원전 없이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민간 싱크탱크의 존재, 셋째는 원전 폐기와 에너지 전환을 핵심 강령으로 채택한 정당의 존재다.”
반세기 원전 반대 결실 맺다 [한겨레21] 2011.06.13 제864호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97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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