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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칼럼

상하이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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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반대하는 운동은 좀 괴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다른 대중 저항 운동들과 달리 이 운동은 풍요가 아니라 내핍을 위한 운동이다. 더 많은 자유가 아니라 더 적은 자유를 위한 운동이다. 가장 이상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대항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이다.”
- 조지 몬비오의 <CO2와의 위험한 동거> 중에서

#1. 비행기 여행과 확장되는 국제공항

비행기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은 환경운동가로서 결코 드러낼 만한 이야기거리가 아니다. 지난 5월의 기억이 떠오른다. 국제회의를 조직하기 위해서 세계적 환경단체인 지구의벗(friends of the earth) 영국의 기후변화 활동가를 서울에 초청하려고 연락했었다. 런던에서 보내온 전자우편의 내용엔 거절에 대한 완곡한 사과와 함께, 몹시도 긴 거리를 비행기로 여행하면서 배출하게 될 온실가스에 대한 우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구의벗 영국은 런던의 히스로 국제공항 확장반대 운동을 해오고 있던 참이었다(대신에 나중에 그는 비디오 컨퍼런스를 제안해왔다).


몬비오가 언급한 환경운동가의 자기모순, 나도 어쩔 수 없나보다. 배를 타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아랑곳하지 않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인터넷 항공권 구매페이지에는 온갖 해외여행 상품들이 쏟아져나와있다. 내가 선택한 항공사의 탑승구는 '제2터미널'에 있었다. 한참 계단을 오르 내리고 중간에 터미널 이동용 전철까지 갈아타서야 제2터미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인천공항 역시 '확장' 경로를 밟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상하이에서 알게 됐지만, 이런 경향은 상하이 푸동국제공항 역시 마찬가지였다).

#2. 상하이 공원, 도심의 허파
중국은 뭐든지 크게 만든다고 했던가. 상하이 도심 곳곳에 있는 공원들 하나 하나의 규모가 상당하다. 내가 방문한 인민공원, 푸싱공원, 상하이 동물원은 물론이고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공원들 역시 풀과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지난 20년 동안 상당한 상하이의 농경지와 녹지는 도시화로 인해 개발지역에 자리를 내준 것도 사실이다(아래 첨부자료). 자동차의 매연과 도로의 대기오염도 서울보다 분명히 심각해보였다. 하지만 그나마 상하이의 공기가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데는 도심에 있는 크고 작은 공원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년 엑스포를 염두에 둔 것인지, 상하이는 도심에 진입하는 차량의 대기오염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올림픽을 전후해 베이징시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흐름이 '반짝' 정책이 아닌 지속적인 정책으로 이어진다면 상하이의 대기질은 개선될 여지가 많을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가 동네북처럼 정치인들의 입에 가볍게 오르내리는 한국의 풍토에서 중국의 도시들은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3. 아열대 기후와 폭우, 그리고 팬더
어느 공원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자수과의 나무들은 아열대 몬순기후에 속하는 상하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7월말의 상하이 날씨는 한낮에 30도를 훨씬 웃도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운 좋게도' 내가 방문할 당시 흐리고 비오는 날이 이어지는 선선한 날씨를 유지했다. 하지만 상하이 기상국에 따르면, 최근 폭염일수가 '명백하게' 크게 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래서 챙이 넓은 모자를 준비하는 것을 나는 필수처럼 여겼는데, 의외로 햇볕이 따가운 낮에 모자를 쓰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이것이 적응능력의 차이인가.

7월30일 오후 상하이 안팅루의 모습, 사진 출처: Nicholas Kruse, shanghaiist

다섯째날(7월30일)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 적색경보가 내린 경우는 이번이 두번째. 짧은 시간에 내린 집중호우로 거리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다. 이날 하루 12센티미터 이상의 강우량을 기록한 폭우였지만, 상하이의 배수 시스템과 빗물 관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상하이는 바다와 면한 항구도시기 때문에 파도나 해일과 같은 해양재난에도 취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상하이 황푸강에 수문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제기되는 맥락을 얕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상하이 동물원을 방문한 것은 팬더를 만난다는 기대가 크게 작용했다. '특별관리'를 받고 있는 듯한 팬더의 하루일과와 식단은 정확하게 짜여져 있었다. 팬더에 대한 설명도 문답 형식으로 덧붙여져있다: 팬더는 왜 위기에 처했을까요? 여기에 해당하는 여러 요인들이 있습니다: 식량부족, 기후변화, 산림벌채, 인간의 활동 등이죠. 오직 1,500마리 남짓의 야생 팬더가 생존해있고, 그중에서 200마리가 생포되어 있습니다.” 북극곰이 온난화로 인한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팬더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맥락에서 기후변화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잠을 자는데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는 팬더의 웅크린 모습이 몹시 나른해보였다.

#4. 상하이는 공사 중
앞에서 말했지만 상하이는 2010년 엑스포 개최를 앞두고 있다. 현재 황푸강변을 비롯한 상하이 도심의 곳곳에서 공사와 건축이 한창이다. 대표적 관광지인 와이탄에서 동팡밍주를 비롯해 황푸강 너머 고층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을 구경하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대신 아래 파노마라 사진과 같이 건설장비와 겹쳐진 풍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상하이시는 엑스포 유치를 명목으로 건축에 열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건축과 개발 그 자체가 베이징 올림픽 예산을 훨씬 상회하는 수익금의 원천이라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언론 역시 매일 엑스포와 관련된 기사를 내보내면서 이런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풍요'에 대한 중국인들의 열망을 탓할 순 없겠지만, 이런 방식의 풍요가 결코 지속가능하진 않을 거라는 점에서 무거운 우려가 떠나지 않았다. 아이를 옆에 데리고 있는 한 여성이 공사장의 먼지와 매연으로 뒤범벅이 된 와이탄 주변의 임시도로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5. 자동차 전시장에 몰린 인파
중국도시의 풍경에서 가장 부러운 것 중 하나는 단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심지어 폭우가 내려도 우의를 입을 뿐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는다.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 상주시 정도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일반화된 전기자전거도 인상적이다. 2년전 처음 중국에 방문했을 때, 페달도 밟지 않고 모터 소리도 나지 않는,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아닌 탈것을 보고 의아해하면서 나 스스로 '귀신 자전거'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우려가 나오고 있듯, 중국에서 자동차로 교통수단을 바꾸는 사람들이 최근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자동차 산업계의 시각에서 본다면 거대한 잠재적 내수시장일수도 있다. 상하이미술관에서 파노라마 사진전을 열고 있었다. 만리장성, 광활한 초원과 빼어난 절벽을 포함한 전형적인 중국의 풍경들. 그런데 이런 풍경과 나란히 전시된, 유명 자동차 전시장에 몰린 수많은 인파를 포착한 사진은 중국의 현재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사진에서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확고부동해보인다. 그래서 이 사진을 바라보는 중국 아이의 생각과 미래가 무엇일까 궁금해서 초조해지기까지 한다. 석탄발전소와 자동차로 상징되는 석유시대, 어쩌면 바로 중국이 석유시대의 마지막 제국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섬뜩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5. 현지언론이 바라보는 중국의 기후변화
중-미 청정에너지 협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과 같은 이슈가 7월말 상하이 현지언론의 기사로 등장했다. 또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가진 전문가들의 기고가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정작 쓰레기 매립장에 대한 기사다. 직접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진 않지만, 대도시의 쓰레기 배출량이 한계용량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 등 독성가스가 인체와 기후에 동시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한 번 눈여겨볼 주제라고 여겨진다. 기사를 거칠게 발췌해봤다:

“베이징은 쓰레기 처리용량을 초과할 것이다. 현재 23개 쓰레기 처리장은 이미 용량 이상을 처리하고 있고, 쓰레기더미는 매년 8퍼센트씩 늘고 있다. 지방자치정부는 2015년까지 17개의 처리시설을 늘릴 계획이지만, 전문가들은 고작 4년 이내에 베이징시의 매립지가 꽉 차서 너무 늦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13개의 주요 매립장은 이미 용량을 초과한 상태이고, 오수와 독성 가스가 누출될 우려가 있다. 게다가 1,000개 이상의 작은 매립장들이 베이징시에 걸쳐 분산돼있다. 베이징시가 유일한 사례가 아니며, 지난해 정부의 보고서는 중국 도시의 3분의 1 이상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밝혔다.

베이징시에 있는 23개 쓰레기 처리장 중 한 매립장의 모습. 사진: china daily

국가적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소각장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청화대 환경과학공학과 녜용펑 교수는 "소각은 쓰레기의 부피를 96퍼센트까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현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실용적 대책"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시는 쓰레기 소각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며, 90퍼센트의 쓰레기가 매립지로 이동된다. 베이징시의 가오안툰 매립시설은 하루에 1,000톤의 쓰레기를 처리하도록 2002년에 설계되었지만, 2008년까지 가정에서 배출된 하루 4,000톤 가량의 쓰레기를 처리해오고 있다. 이곳에서 과부하로 인한 메탄가스의 40퍼센트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으로 검사됐다.

이렇게 발생된 악취는 10킬로미터 반경까지 확산돼, 20만 명의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집에서 올림픽 경기를 보기 위해서 마스크를 써야 했다. 폐막식을 보던 당시,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었고 병원에 실려가 독성가스 흡입에 의한 폐감염 진단을 받았다." 매립장에서 3.5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거주하는 자오레이(35)씨가 말했다.

 
기사 원문보기(영문)

*덧붙임: 이번 방문은 복잡다단한 중국에 대한 관심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해줬다. 서울에 돌아와서 예전에 중국학 수업을 들었던 장윤미 선생님의 신간 소식을 듣고 책을 구입한 이유도 그렇다.

글 | 이지언 활동가
*개인 블로그에서 6일간의 상하이 여행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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