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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블로그 다이어리

코로나 투병 일지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피해자는 반드시 현장을 다시 찾는다 5월의 마지막 날. 그날 아침엔 비가 왔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정신이 다시 아찔해온다. 보행로를 탔던 게 화근이었을까. 아니면 보도블록 때문에? 나란히 한 방향으로 결이 나있는 블록이었다. 바퀴가 결을 살짝 벗어나자마자 자전거는 고꾸라졌다. 물론, 나도 함께 고꾸라졌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 결은 보도블록이 빗물에 미끄럽지 않도록 일부러 해놓은 모양이다. 보행자를 위한 것일까? 자전거의 경우도 그럴지도 모른다. 이 결을 따라 똑바로 앞으로만 간다면 말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정해진 트랙을 약간만 벗어나려고 한다면, 특히 내가 타는 미니벨로처럼 작은 바퀴라면, 타이어는 다시 트랙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힘을 받고, 결국 균형을 잃게 되는 것은 순식간. 고속도로의 경사로에서 이런 방식의 트랙이 적용된 경우를 흔히 .. 더보기
휴지통에 버렸다 꺼낸 기억(4) 녹색성장 박람회의 고릴라 지난해 10월 열렸던 녹색성장 박람회. '친환경'과 '녹색'을 내걸고 자기 홍보에 나선 온갖 부스들. 한 구석에 아기자기한 전시물들이 단연 눈에 띄었다. 나란히 전시된 유명인들의 얼굴 포스터. 흑백 얼굴의 특정 부위에 녹색이 칠해졌다. 히틀러의 콧수염, 마릴린 먼로의 점. 더보기
휴지통에 버렸다 꺼낸 기억(3) 새벽의 황당한 산책 사진 파일에는 촬영된 날짜와 시각이 저장돼있다. 2009년 4월 22일 오전 5시52분. 나는 여수의 이름 모를 곳을 걷고 있었다. 내가 왜 그때 그곳에 있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당시 찍었던 이 날것의 사진을 보면 새벽 그곳의 황량하고 고독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너무 일찍 왔구나'하면서 생면부지의 마을에서 멈출 줄을 몰라 그냥 아무데나 걷고 있었다. 이보다 더 무료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출렁이는 바다도, 세검정 마을 어귀에서 죽은 척 잠든 개도 무료해보였다... 여수에서 보낸 한때다. 더보기
휴지통에 버렸다 꺼낸 기억(2) 파주 헤이리의 지렁이 이번 겨울의 유난한 추위는 5월초 한풀 꺾여 있었다. 주말에 파주 헤이리에 놀러가자고 형이 연락해왔다. 몹시 화창한 날이었다. 외진 낯선 마을에 사람들이 저마다 차를 끌고 북적 모여대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놀이동산과 주거지역이 뚜렷한 경계 없이 섞여있는 마을이었다. 마을에 들어선 건축물을 소개하는 두꺼운 책이 따로 있을 정도로 획일성을 탈피한 건물들, 미술 전시관과 온갖 박물관들, 갈대가 우거진 소박한 호수 옆 나무 그늘에서 자리를 깔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 헤이리는 상업적이었지만 차별된 놀거리를 주고 있었다. 이름이 '지렁이다'였던가. 재밌는 간판을 보고 들어간 곳은 가까운 농산물와 친환경 상품 판매장이었다. 손글씨 간판과 간결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이곳은 얼마 전에 문을 열었단다. "이케아보다 낫.. 더보기
회화나무 마당에 온 짧은 봄 어제 오늘 무척 덥습니다. 땡볕 더위에 갑작스런 소나기까지... 6월의 한여름인가요? 사진을 정리하다가 누하동 환경센터의 회화나무 마당을 종종 찍었던 사진을 발견했어요. 매번 마당 앞을 왔다갔다 하면서 마당이 이렇게 멋질 때가 있나 싶습니다. 지난해 마당 한구석에 있던 콘크리트를 걷어낸 자리엔 아직도 모래만 수북하지만 조금씩 풀이 자라나면서 회복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텃밭도 가꾸면서 마당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는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놀러 오세요~! 더보기
휴지통에 버렸다 꺼낸 기억(1) 석양의 신호등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 교차로 한가운데서 긴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도로 안전지대에 서있는 경찰이 나를 힐끔 거린다. 작지만 덩치 있는 체구의 경찰관이 입은 가죽 유니폼은 석양의 빛을 반사하며 물들어있었다. 헬멧 아래로 보이는 왕잠자리 선글라스의 이미지는 영화 속에 비친 전형적인 경찰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왜 나를 힐끔거릴까. 큰 도로의 한복판에 자전거 한 대가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 의아한 것일까. 자전거가 횡단보도를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와 나란히 신호대기를 하는 것에 '주의'라도 주려는 것일까. 결국 멋진 석양이 펼쳐진 퇴근길 도로에서의 이상한 적막을 그가 깨뜨렸다. 선글라스 너머 관찰하기를 멈추고 다가온 그는 의외의 말을 내게 던졌다. "이런 자전건 얼마나 해요?" 대사도 대사지만 그.. 더보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배터리가 나갔다. 깜빡거리는 후미등 없이 서울의 밤거리를 달리고 싶지는 않다. 편의점에 들러 건전지를 갈아끼운다. 나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귀가를 했다…. 서울에도 가을은 온다. 선선한 저녁바람을 가르며 또 골목의 어둠과 인파 사이를 가로지른다. 알록달록한 조명으로 물든 광화문광장을 지나고, 자동차 불빛이 시끄러운 종로와 청계천을 지난다. 조용히 유영하듯 차량 사이를 빠져나가며 페달을 밟으니, 요며칠 속상했었던 일들이 사그라지듯 어느새 마음이 가볍다. 목적지는 같지만, 경로는 매번 조금씩 다르다. 그저 나에게 초록불을 밝혀주는 신호를 따라, 방향이 대중 맞으면 모르는 길이더라도 가보는 것이다. 두달전에는 마포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남산 부근에서 길을 헤매어 남산중턱의 소월길까지 자전거를 끌고올라가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