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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블로그 다이어리

휴지통에 버렸다 꺼낸 기억(1) 석양의 신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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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 교차로 한가운데서 긴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도로 안전지대에 서있는 경찰이 나를 힐끔 거린다. 작지만 덩치 있는 체구의 경찰관이 입은 가죽 유니폼은 석양의 빛을 반사하며 물들어있었다. 헬멧 아래로 보이는 왕잠자리 선글라스의 이미지는 영화 속에 비친 전형적인 경찰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왜 나를 힐끔거릴까. 큰 도로의 한복판에 자전거 한 대가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 의아한 것일까. 자전거가 횡단보도를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와 나란히 신호대기를 하는 것에 '주의'라도 주려는 것일까.

결국 멋진 석양이 펼쳐진 퇴근길 도로에서의 이상한 적막을 그가 깨뜨렸다. 선글라스 너머 관찰하기를 멈추고 다가온 그는 의외의 말을 내게 던졌다.

"이런 자전건 얼마나 해요?"

대사도 대사지만 그의 어조에는 근엄한 경찰의 목소리 대신 옆집 아저씨의 말투가 배어있었다.

글쎄, 정해진 도로선을 따라 반복적으로 이동하는 차량 행렬을 바라보는 무료함 속에서 하나의 재밌는 장난감을 봤던 것일까? 비번인 날에 가까운 공원으로 자전거를 타는 취미도 시작해보고 뱃살도 뺄 겸 자전거를 구입해보고 싶은 충동이 스쳤던 것일까? 이미 여러번 스쳤던 충동, 그리고 매번 쉽게 망각됐던 충동 말이다. 어쩌면 그냥 말을 걸어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지. 공무수행 중이더라도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궁금하면 물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길지도 짧지도 않은 대답을 하고나자 신호가 바뀌었다. 나는 인사를 건네고 그의 앞을 지나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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