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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블로그 다이어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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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가 나갔다. 깜빡거리는 후미등 없이 서울의 밤거리를 달리고 싶지는 않다. 편의점에 들러 건전지를 갈아끼운다. 나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귀가를 했다….

서울에도 가을은 온다. 선선한 저녁바람을 가르며 또 골목의 어둠과 인파 사이를 가로지른다. 알록달록한 조명으로 물든 광화문광장을 지나고, 자동차 불빛이 시끄러운 종로와 청계천을 지난다. 조용히 유영하듯 차량 사이를 빠져나가며 페달을 밟으니, 요며칠 속상했었던 일들이 사그라지듯 어느새 마음이 가볍다.

목적지는 같지만, 경로는 매번 조금씩 다르다. 그저 나에게 초록불을 밝혀주는 신호를 따라, 방향이 대중 맞으면 모르는 길이더라도 가보는 것이다. 두달전에는 마포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남산 부근에서 길을 헤매어 남산중턱의 소월길까지 자전거를 끌고올라가며 고생한 적이 있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기가 심심해 계속 가다보니 언덕이었던 것이다.

모니터에 시달렸던 두 눈은 도로의 먼지와 불빛 앞에서 더욱 시리다. 후미등처럼 두 눈도 감정없이 감았다 떴다를 반복할 뿐이다.

집에 돌아오니, 이전에 군대에 있던 내게 친구가 적어 보내줬던 시 한 편이 생각나 옮겨본다:

어깨가 무거운
게가 한 마리 별빛을 짚으며
걸어가는 서쪽 하늘
어딘가 잘리지 않은 몸으론 다 갈 수 없는 곳이 있나보다 반달 간다
꽃 못 핀 풀들은 마른 몸 비틀어 뿌리로 숨는다 아무도
나를 보지 마라!
게가 한 마리 불빛을 찍으며 가는
골목 위 반달
흔들리던 문 걸면 전신으로 흔들리는
집 나와 집으로 가는 길
아픈 몸에서 아픈 몸으로 가는 길
누군가 날 보아 물 고이게 하고
살[肉]엔지 마음엔지 반달 가게 하나

- 장석남, <반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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