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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칼럼

8월 지리산에 다녀와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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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20일부터 있었던 2박3일 동안의 여정 중에서 첫 이틀 동안의 에피소드들을 사진과 함께 정리해봅니다.

서울을 출발한 것은 목요일 오후 5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운전은 박용성 팀장님과 염형철 처장님이 번갈아가며 맡았고, 뒤에는 김영숙, 이지언, 김희경, 김창민, 신재은 활동가 5명이 탔습니다. 도시를 지나 전라도에 가까워졌을 때였을까요. 해가 질 무렵 하늘이 더 어두워지더니 잠시 뒤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앞유리창에서 와이퍼가 빗물을 분주하게 닦아내는 동안, 무서운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꿈틀거립니다. 김영숙 활동가가 전해 들은 이야기를 하나 꺼내더군요. 지리산에서 일행이 길을 내려오는데 하얀 소복의 할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내려가길래 따라 내려갔더니 무사히 아래로 도착했다는, 다소 심심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당시는 주위가 온통 어둡고 빗물의 범벅으로 앞의 시야까지 차단당한 상황이라 이 일화가 묘하게 버무려졌고, 결국 이번 여행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며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머물 곳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김석봉 환경운동연합 대표님의 자택. 밤이 돼서야 도착했는데도, 대표님은 배웅을 나와 직접 일행을 맞이해주셨습니다. 숙소로 정해주신 방에서 흙냄새가 풍겨나왔습니다. 나뭇가지를 끼워둔 방충망도 인상적이었구요.


대표님의 자택에서 맛있는 저녁밥을 얻어먹었습니다. 강아지 '바둑이'는 한시도 가만있는줄 모르는 철저한 '애교덩어리' 자체죠. 특기는 아무 사람 앞에서나 벌렁 드러눕기입니다. 마치 "날 쓰다듬어줘"라고 말하는 것 같죠.

김석봉 대표님에게 '환경운동과의 인연'에 대해 말씀을 청했습니다. 저는 서울과 지방에서 몇번 대표님을 봤을 뿐인데, 대표님이 농부인 줄은 몰랐습니다(물론 시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죠). 80년대에 교도관으로 일하게 된 일화와 87년 민주항쟁 당시의 에피소드, 그리고 진주환경운동연합과의 '우연한' 인연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은 '현재 성장을 대체할 만한 가치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가'라고 물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덕성'보다는 '능력'을 앞세운 지도자를 선택하게 된 사회적 변화에 환경운동가들이 긴장과 책임을 실감하는지 꼬집습니다. 운동의 방향에 대해 묻자, '누구도 모르며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사람들의 '감성'을 바꾸는 운동을 역설한 목소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사모님이 집에 들어오셨는데, 마침 전날이 생일이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석에서 생일축하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사모님은 무척 활기가 넘치셨는데, 내가 사진기를 들자, (대표님의 속옷차림을 가리키며) "이런 모습을 찍으시려구요?"라며 농담을 건네십니다.

사모님께 대표님과 함께 살면서 있었던 일들을 말씀해달라고 요청하자, 옆에 앉아서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셨습니다(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쓸 수 없습니다). 옆에서 듣기가 멋쩍은지, 대표님은 몇마디 대꾸를 못 하시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저 웃기만 하셨어요. (…) 이야기가 막걸리 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도란도란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아침의 하늘은 맑았습니다. 대표님은 농부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올해 고추농사가 제법 소출이 많은 모양이에요. 어젯밤 그칠줄 모르는 비를 보면서 덮어놓은 고추가 썩을지 모른다고 몇번이나 걱정을 입에 담으셨죠. 다행히 고추를 말리기에도, 빨래를 널기에도 안성맞춤인 날씨였습니다. 대표님이 매일 먹을것을 주는 고양이일까요, 담장 위에 앉아서 나를 무심히 응시하더라구요.


이 집은 2년 전 버려진 집을 다시 수리한 것이랍니다. 우리 일행이 머물렀던 방은 평소 민박으로 운영하신다고. 손님들이 어떻게 알고 이곳을 찾아오냐는 질문에, 블로그를 통해서 입소문을 타게 됐다고 사모님이 대답하셨어요. 이곳의 특징은 주인과 손님이 한상에서 같이 밥을 먹는 것. 대표님은 모르는 사람과 밥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이 행복해서 앞으로도 민박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분이 오늘 아침에 집을 떠나 며칠 뒤에 돌아오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고추를 잘 말릴 것과 '바둑이'를 부탁하셨죠. 바둑이가 가출을 못 하게 하라는 것! 두 분과 헤어지기 앞서, 함께 사진촬영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버스 시간을 코앞에 둔 모두가 외출준비로 영 자리를 못 잡네요. (2부에서 계속)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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