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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교통과 자전거

자전거 등록제, 찬성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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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절반 이상 자전거도난 경험

서울은 자전거 타기에 좋은 도시인가? 단지 도심에 충분한 자전거도로가 놓여있는지를 상기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로 꽉 막힌 차로를 통해 힘겹게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자전거를 정작 어디에 보관해야할지 막막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선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주차장이나 보관대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시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전거는 180만 대 정도. 하지만 공공장소에 설치된 자전거 보관시설에서 수용할 수 있는 자전거대수는 9만1000대 수준(5.1%)에 불과하다.


주택에서 자전거를 보관하기는 편리할까?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시민 1,02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09)에 의하면, 집 외부에 자전거를 보관하는 경우가 전체응답의 45%로, 집 내부 39%, 집 주변 11% 순서로 나타났다. 이는 아파트 거주비율이 높은 주거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부분이 ‘자전거 보관에 적합한 공간이 없음’이라고 대답했다. 최근 송파구는 공동주택을 신축할 때 가구당 1대 이상의 자전거주차장 설치를 의무화하는 건축기준을 마련 중인데, 다른 지역에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안전하게 자전거를 보관하는 시설이 충분히 만들어져야 하지만, 자전거 도난과 방치문제에 대한 해법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앞의 설문조사에서 시민 339명 중 53%가 자전거 도난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문제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경험이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응답자 중 도난경험 횟수는 1회 38%, 2회 34%, 3회 17%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반복된 자전거 도난경험이 자출을 포기하는 이유’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는 맥락과 상통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잃어버린 자전거를 다시 찾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오종렬 운영자는 “자전거 도난을 파출소에서 신고하면 사실상 찾기 어려우니 새로 구입하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경찰로부터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전거등록제에 대한 기대

자전거 동호회를 중심으로 회원들이 자신의 자전거를 등록하여 자전거도난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유명무실’한 자전거등록제를 실효성 있는 제도로 전환시키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전거등록제는 자전거의 도난 및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자전거를 자동차처럼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전산관리하는 제도이다. 외국의 경우 대표적으로 일본에서 스티커를 부착하는 형태의 자전거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덴마크와 네덜란드도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22조, 제23조와 같은 법 시행규칙 제5조의 규정에 따라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으나 제도의 시행에 대한 강제성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전거 등록제를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서울시 양천구, 경기도 과천시, 경남 진해시, 제주시 등에 불과하고, 자전거의 등록여부 또한 임의조항이기 때문에 시민의 참여 또한 미흡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절취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데 아무런 제약도 없고, 자전거를 다시 찾더라도 자신이 자전거의 소유자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에서의 자전거 등록제는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 9월15일 서울환경연합과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서울기후행동, 오마이뉴스가 공동주최한 ‘자전거등록제 도입방안 토론회’에서 자전거이용 활성화를 위한 자전거등록제 시행에 대한 기대와 앞으로 풀어야 과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원영 서울환경연합 서울CO2위원회 위원은 “자전거등록제가 도난문제를 100% 해결해주진 않겠지만 행정적인 안전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원영 위원은 이어 자전거등록제의 시행과 지속적 캠페인을 통해 2008년 현재 자전거 분실율을 2002년의 절반 수준으로 낮춘 암스테르담의 사례를 언급하며, “이 제도로 절취되거나 분실된 자전거를 되찾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전거도난 방지에 대한 사회적 경험이나 기초자료가 부족한 우리의 상황에서 자전거등록제를 이미 시행 중인 해외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의 ‘자전거방범등록제도’는 지속적인 추진을 통해서 자전거 도난방지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사례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제도가 처음 도입됐지만, 일본의 자전거 도난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자전거도난 대수는 크게 증가하는 추세였지만, 1994년 자전거등록이 의무화되면서 자전거도난대수는 하향곡선으로 돌아서게 됐다. 1990-1994년 동안 주인에게 돌아간 자전거 중 77%가 등록된 경우에 해당했다. 자전거 등록률은 1994년 51%에서 2007년 현재 77% 수준에 이르고 있다.

느림의 원칙에 따라 충분한 사회적 논의 먼저

하지만 지금까지 시행된 자전거등록제 사례의 명과 암을 함께 봐야한다. 지역단위로 시행되는 일본의 자전거등록제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경우 자전거를 새롭게 등록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전국적인 통합전산망을 운영해 어디서나 자전거 등록과 조회가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리고 온라인 기술과 같은 ‘저비용 고효율’ 방식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쉽게 자전거등록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자동차 중심의 교통정책에 가려져 자전거에 대한 사회적 주목이나 정책개발은 그만큼 지체되어왔다. 그나마 자전거정책이라고 부를 만한 정부의 자원과 역량은 자전거도로나 주차시설과 같은 하드웨어적 팽창에만 머물러있다. 자전거 도난문제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 최근 불거진 자전거등록제를 둘러싼 논의는 ‘소프트웨어적’인 자전거정책에 대한 기대를 반증해주고 있다.

‘녹색’을 외치는 구호는 단순히 법조항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최근 자전거이용 활성화를 내세운 계획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과거 일방적인 추진으로 시행착오를 겪은 자전거정책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여전하다. 오히려 자전거에 관한 기초자료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전거정책을 위한 더 많은 연구와 공론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일본은 자전거등록제를 추진하는 15년 동안 전국적인 홍보와 국민을 설득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자전거정책이 ‘느림’의 원칙에 따라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한다”고 강조한 자전거21 오수보 사무총장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지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에너지팀 활동가(leeje@kfem.or.kr)

*이 글은 월간 함께사는길 2009년 10월호에도 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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