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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사고 8개월 뒤, 기자가 직접 방문한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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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재앙이 발생한지 8개월. 사고 직후 원전으로부터 반경 20킬로미터까지 피난구역으로 정해져 출입이 금지됐다. 더 이상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마을, 방사능의 위협 속에서도 사고 수습을 위해 원전 현장에 남은 노동자들, 그리고 9만여 명에 이르는 피난민들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을까. <이코노미스트>의 한 기자가 피난민의 도움을 받아 '금지구역'에 잠입해 취재한 기사 "황혼의 지역(The twilight zone)" 전문을 번역해 옮긴다. <에너지탐정>


바리케이드 경계 안쪽은 별천지였다. 출입금지 지역으로 설정된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킬로미터 안으로는 허가 받지 않은 차량은 통과할 수 없다. 유령 같은 흰색 방호복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3월11일 이후 사람들이 떠난 마을이 늘어났고 이제 문에는 거미줄만 드리워져있다. 어느 노부인이 썼을 적갈색 가발이 길바닥에 내뒹굴고 있는데,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핵 재앙으로 대피하면서 잃어버린 모양이다. 원전에서 9킬로미터 떨어진 토미오카에서는 “밤의 친구”라는 나이트클럽 바깥에서 야생 타조와 맞닥뜨리기도 했다.

기자들은 출입금지 지역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동정 어린 피난민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들 대부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 당국에 몹시 화가 나 있었다. 89,000명의 피난민 중에서 일부는 일일 허가권을 받고서 집으로 돌아가 귀중품을 챙겨 나올 수 있었다. 외부인의 눈에는, 사람들이 떠나간 넓은 지역과 그곳에 얼마 전까지도 활기가 넘쳤을 거란 사실이 극명히 대조됐다. 논뿐만 아니라 대형 건물과 수백 명의 아이들이 다녔을 학교에서 풀이 돋아나 있다.

3월11일 이후 후쿠시마 사고 현장이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11월12일 방호복을 입은 기자들이 원전 3호기에 다가가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사진은 원자로 4호기의 모습. 사진=Ikuro Aiba/아사히신문


순찰차가 지나가는 차량을 멈춰 세운다. 경찰은 특히 허가 받지 않은 인원이 원전 사고 현장에 접근하지 못 하도록 단속했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동경전력은 일본 최대의 발전사다. 악몽 같은 원전 사고의 수습 작업을 맡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접근하려고 하면, 입을 열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대부분 동경전력 소속 직원이 아니라 저임금의 계약직 노동자들로서 출입금지 지역에서 남쪽으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이와키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30분짜리 안전교육이 전부”

나일론 운동복 차림이라서 그들을 알아보기란 쉽다. 이들은 사회 최하층에서 고용된 것처럼 보인다. 한 남자가 공중전화에서 집과 통화를 한다. 그는 휴대폰을 살 여력이 없다. 또 다른 남자는 앞니가 하나뿐이다. 둘 다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주저하기는 마찬가지. 채용 조건 중 하나가 발설 금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끼리는 안전에 대한 걱정을 나눈다. 원전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잔해를 청소하는 일로 하루에 15000엔(약 22만원)을 받는 한 명은 받은 안전교육이라곤 30분짜리가 전부였다고 말한다. 그가 방사선의 위험에 관해 배운 대부분은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들이다.

후쿠시마 노동자들 사이에는 엄격한 서열구조가 존재한다. 동경전력 소속 정규직 직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회사는 토시바(Toshiba)나 히타치(Hitachi)와 같은 원전 건설업체로부터 상위층의 하청노동자를 고용한다. 그리고 이들이 건축업자나 기술자와 하청계약을 맺고, 다시 또 이들은 또 하청계약을 맺어 1인 사장에게 고용된 적은 규모의 노동자들에게 이르는 것이다. 일부 하위층 업자들은 야쿠자와 끈이 있을지도 모른다. 저임금 노동자들 중에는 과거 오랫동안 차별 받았던 ‘부라쿠민(전근대 일본의 신분제도에서의 최하층 천민. 신분제 철폐 이후 근현대 일본에서도 이 계층이 존재)’ 출신도 있다.

노동운동가들에 따르면, 하층 노동자들은 특히 열악한 상황에 처했다. 그들은 회사로부터 건강과 연금 또는 정리해고와 관련된 혜택을 받지 못 한다. 일본 공산당 소속의 이와키 지방의원인 와타나베 히로유키가 한 노동자의 누적 피폭량에 대한 자료를 보여준다. 피폭량은 2개월 만에 약 33밀리시버트에 이르렀다. 원전 노동자에게 한해 피폭 선량한도로 정해진 기준의 3분의 1 가량이다. 와타나베는 안전규칙이 무시되는 경우가 잦다고 말한다. 오염된 물을 헤치며 걷는 노동자들은 장화에 구멍이 뚫렸다고 불평한다. 안전 마스크의 필터를 언제 교환해야 하는지 교육 받지 못 했다는 이들도 있다.


지난 4월18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그러니까 사고 권역 내 위치한 한 체육관 실내에 설치된 임시 숙소에서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Reuters/Takeshi Tanigawa


와타나베는 재원 부족에 따라 동경전력이 절차를 어긴다고 주장한다. 렌치와 같은 기본 공구도 물량 부족에 시달린다. 언론이 상황을 자세하게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동경전력은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와타나베 의원이 보여준 자료는 지역의 어느 업체 사장이 서명해야 했던 동경전력의 함구령을 담고 있다. 제4조에 따르면 작업과 관련된 모든 내용이 외부인에게 공개돼선 안 된다. 언론 인터뷰를 위한 일체의 요청도 거절해야 한다.

상류 하청노동자도 비밀 유지를 맹세하긴 마찬가지지만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 같다. 3기의 후쿠시마 원자로의 노심용융(멜트다운)을 냉각하는 작업에서최전선에 섰던 한 기술자는 알게 모르게 <이코노미스트>에 말을 꺼냈다. 거무스름한 50대의 이 남자는 원자력발전소에서 25년간 일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선 그는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자로 운영 시스템을 이해하는 사람이란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 5월에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 왔다. 당시 그는 가장 고된 업무가 하류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고 말한다. 치워야 할 잔해가 너무 많다보니, 방호복의 무게와 더위로 노동자들이 종종 쓰러지는 경우가 일어났다. 응급차에 실려 간 뒤, 그들은 다음날 되돌아오곤 했다.

그는 기술자들이 가장 많은 압박을 받은 시기는 6월과 7월이었다고 말했다. 건물 잔해 수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그는 원자로 가동 시스템의 복구에 매달렸다. 7시간 교대 근무는 보통 1시간 작업과 1시간 휴식을 번갈아가며 이루어진다. 근무에 들어가기 전 2세트의 방호복, 4켤레의 장갑 그리고 호흡기가 달린 헬멧을 착용해야만 한다. 이것들은 모두 꽁꽁 묶어서 피부가 피폭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매시간이 끝나고 다시 작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보호막을 벗어서 교체해야 한다. (동경전력에 따르면 폐기해야 할 이런 방호복이 산더미처럼 쌓여 480,000개에 이른다.) 가장 바빴을 때는 1시간 작업, 1시간 휴식 규칙이 무시됐다고 기술자들은 말했다. “모두들 정말 최선을 다 하려고 애썼지만, 동경전력 본사 사람들은 대부분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못 했다. 우리가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난 (사고 수습이) 끝날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거다. 절대로”라고 말했다.

파산 직전

정부 관계자들은 경미한 정도의 안전규칙이 일부 위반되는 것이 용납될 수 있지 않냐고 말한다. 동경전력이 비상 조직체계를 가동 중이고 원전을 안정화시키는 일이 최우선 목표라는 것이다. 일본의 여당인 민주당의 소노다 야스히로 의원은 안전을 둘러싼 우려를 꺾기 위해서 이번주 후쿠시마 원전에서 가져온 물을 마셨다. 11월1일 정부는 최초로 언론에 후쿠시마 원전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여성의 출입은 거절됐다. (동경전력은 건강상의 이유와 원전에는 여성용 화장실이 없다고 말로 해명했다.) 다음날 동경전력은 고장 난 원자로 중 1기에서 예상치 못한 핵분열의 징후가 나타났다면서, 방사능 유출의 재개를 막기 위해서 붕산을 투입해야만 했다. 동경전력의 주가는 폭락했다.

한 노동자가 후쿠시마 제1원전의 1호기 건물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5월9일 촬영. 동경전력 사진


후쿠시마 제1원전의 물리적 파산은 동경전력의 재정 상태와 닮아있다. 동경전력이 정부와 공동으로 작성했다고 알려진 계획안에는 10년 동안 2조5천억엔의 비용을 절감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동경전력이 안전절차를 무시하지 않도록 감시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경전력은 이번 회계연도에만 이미 5700억엔의 손실이 생겨 부채를 가까스로 상환할 것으로 보인다. 11월4일 정부는 동경전력에 대해 1조엔에 이르는 막대한 지원금의 투입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피난민 89000명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이다.

피난 이재민들에 대한 보상이 곧 실시되지는 못 할 것이다. 하지만 피난민들은 후쿠시마 원전이나 과거 수세기 동안 살아온 마을에 드리워진 비밀의 장막에 점차 인내심을 잃고 있다. 언론 보도가 줄어들수록, 궁지에 처한 자신들의 상황이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져간다. 이는 동경전력이 적절한 보상비를 내놓게 할 압력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피난민들 중에서 명령을 마음대로 바꿔서 기자들을 금지구역 안으로 밀입시키는 사람들이 생겨난 이유 중 하나다.

번역=이지언

번역수정 2011년11월23일 2시

원문 링크
The twilight zone(The Economist, Nov 5th 2011)
http://www.economist.com/node/21536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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