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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급식에서 방사능 수산물 빼려는 용감한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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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고 1년도 훨씬 지났지만 일본산 수입 식품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매우 높다. 지난 2월에 실시된 서울환경운동연합의 여론조사를 보면, 최근 1년 동안 일본산 식품의 구매를 꺼려왔다는 사람은 86%에 이르렀다. 이 중에서 “일본산 식품을 전혀 구매하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45.7%로 가장 높았다.


일본산 식품이 사실상 외면 받은 이유는 현재의 느슨한 방사능 검역 체계에 대한 강한 불신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일본산 식품의 수입을 지속해왔다. 검출된 방사능이 기준치 이하의 미량인데 ‘불분명한 근거로 특정 국가로부터 수입을 중단하면 통상마찰의 소지가 된다’는 해명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일본산 식품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강화하거나 아예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은 대다수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선 일본산 수입식품에서 방사능 검출횟수가 크게 늘면서 방사능 우려도 커졌다.


방사능에 대한 우려는 특히 수산물에 맞춰졌다. 방사능이 검출되는 일본산 식품의 대부분이 수산물이란 점 이외에도, 다른 의미가 있다. 먼저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유출된 천문학적인 양의 방사성물질 대부분이 인근 바다로 유입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당연히 바다 생물과 생태계는 가장 심각한 방사능 오염 피해를 받았다.


탈핵에너지교수모임, 차일드세이브, 한국건강연대, 초록교육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단체들이 지난 4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방사능이 계속 검출되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지언


원자로 안에 갇혀있어야 할 방사성물질이 사고로 환경으로 일단 유출되면 먹이사슬을 거쳐 온갖 생명체로 들어가게 된다. 물질의 반감기가 길면 독성물질에 의한 만성 중독의 위험은 더 커진다. 온갖 방사성물질 중 수산물에서 주로 방사성 세슘137이 검출되는 까닭은 30년이라는 긴 반감기와 무관하지 않다. 세슘은 흡입되면 체내를 순환하다가 부위를 가리지 않고 축적된다. 방사성 세슘은 몇 개월이나 몇 년 뒤에 소변을 통해 배출될 수 있지만, 축적된 동안에 간이나 신장, 췌장을 비롯한 장기에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발암물질이다.


바다 속 방사능 농도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의 태평양에서 가장 높겠지만, 해류나 해양생물의 이동으로 인해 오염이 멀리 떨어진 해역까지 확산될 수 있다. 그나마 일본 동쪽 바다의 해류는 한국으로 직접 흐르지 않지만 고등어나 꽁치, 멸치와 같은 해양생물은 한반도를 포함한 넓은 해역에 분포하면서 회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산물의 경우 정확한 원산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게다가 후쿠시마 인근에서 생산된 농수산품이 소비자에게 외면 받으면서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다가 적발된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반적인 방사능 오염이 확인되는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아이를 둔 부모들은 식품 섭취에 의한 방사능 피폭을 걱정하며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방사선 피폭에 의한 건강영향이 어린이에게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정보가 확산되면서 조금이라도 아이의 피폭량을 줄이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대부분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는 방사능에 대해 거의 들어보지 못 했던 부모들은 온라인에서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데서 나아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더 안전한 급식을 공급하도록 집단 행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려는 모임인 차일드세이브는 자발적 방사능 감시에 나선 대표적인 그룹이다. 전국에 분포한 차일드세이브 회원들은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식생활을 위한 학교급식 개정 제안서(급식개정 제안서)’를 만들어 정부와 각 교육기관에 전달하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지난 1월말 발표된 급식개정 제안서에는 ▲미소된장, 일본간장, 가쓰오부시를 비롯한 일본산 소스나 조미료 등의 사용 제한 ▲일본산 대신 국내산 수산물의 사용 ▲수산물 가공식품과 유제품에 대한 가급적 사용 제한 ▲방사능 섭취 예방을 위한 조리법 권장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아래).


급식조리시 방사능 섭취예방을 위한 권장 조리법


*모든 식재료를 미지근한 물로 충분히 씻습니다: 일단 식재료 표면에 먼지와 흡착된 방사성물질을 제거하고, 미지근한 물에 씻거나 담가서 세슘과 같이 물에 녹는 방사성물질의 상당량을 용출시킬 수 있습니다.


*생선을 조리할 경우 방사성물질이 많이 함유된 머리와 비늘, 지느러미, 뼈, 내장을 확실하게 제거하고, 식초와 소금물(4-6% 염도)에 제염합니다(물을 가끔씩 교체).


*생선을 조리한 국물을 섭취하는 조리법은 피합니다: 방사성물질이 물에 녹을 수 있으므로 아이들 식단에 국물까지 먹는 생선탕, 생선국이나 찌개 등을 제한합니다.


급식에 추가하면 좋은 식자재


*사과를 이용한 요리법을 활용한다: 다양한 팩틴(애플팩틴 권장) 기반 보조식품과 음료, 사과, 배, 포도 등을 섭취합니다.


*비타민C, 비타민D를 복용한다: 손상된 세포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칼슘, 칼륨, 마그네슘 섭취량을 늘린다: 심장을 공격하는 세슘, 뼈에 달라붙는 스트론튬, DNA를 파괴하는 플루토늄, 우라늄 등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출처=학교급식 개정 제안서(차일드세이브)


차일드세이브의 급식 개정 활동은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현재 유치원과 어린이집 급식의 경우 소속 영양사가 식단을 짜거나 지자체 보육정보센터의 식단을 따르게 돼있다. 차일드세이브의 한 회원은 새학기인 3월부터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의 교사와 원장에게 제안서의 내용을 급식에 반영해달라고 직접 요청했다.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한다지만 황태국, 코다리무침, 어묵 등 해산물이 많이 나오는 급식이 마음에 걸렸다.


몇 주 후 멸치가 제외되고 꽁치구이가 다른 반찬으로 대체되더니, 4월부터는 식단에서 생선을 찾을 수 없었다. 이 회원은 “(제안서를) 보내기 전에는, 괜히 찍히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떨리기도 했지만 아이의 건강이 달려 있는데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바로 실천에 옮겼”다고 말했다. 다른 한 회원은 직접 어린이집의 식단위원을 맡아서 수산물 위주의 반찬을 바꾸려 하고 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지만 방사능이란 낯선 이야기를 꺼내기란 사실 쉽지 않다. 학교와 유치원에 식단과 조리법을 개선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급식을 피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도시락을 싸주거나 심지어 어린이집을 포기하는 가정도 있다. 이런 선택을 내릴 때 물론 방사능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주위로부터 ‘유난하다’는 반응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방사능을 염려하는 이들이 종종 받게 되는 이런 따가운 시선은 낯선 사람뿐 아니라 남편을 비롯한 다른 가족으로부터 비롯되는 경우도 있다.


정부도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아이들 급식에서 방사능 의심 식재료를 제외해달라는 요구는 ‘객관적 근거 불충분’을 이유로 거부되거나 형식적 답변으로 되돌아오기 일쑤다. 그나마 “급식 심의과정에 반영하고 학교와 어린이집 현장 점검시 안내하겠다”는 답변(관악구청)이나 “급식 관계자 연수 과정에서 방사능 섭취예방을 위한 권장 조리법을 전달하겠다”는 대답(서울시교육청)이 작지만 긍정적인 대목이다.


자발적 방사능 감시에 나선 시민들은 사비를 털어 계측기를 구입하고 조사기관에 방사능 분석을 의뢰하기도 했다. 정부와 방사능 방호당국이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시민들이 몸소 깨달은 값진 교훈이었다. 아이 엄마들은 급식 식단에서 방사능 수산물을 제한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를 보호하고 있다.


이 글은 한살림 소식지 <살림 이야기> 2012년 여름호에 실린 이지언 서울환경운동연합 대안정책팀 활동가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이지언 활동가는 지난해 환경운동연합 일본원전사고비상대책위에 참여했으며 노원구 방사능 주민건강 역학조사에 총괄간사를 맡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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