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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석탄발전

녹색기후기금 자랑하더니 “개도국엔 석탄이 유일한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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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은행, 개도국 석탄발전에 41억 달러 지원 “기후위기 부추겨”


한전이 필리핀 현지 전력회사와 공동으로 설립한 합자회사(KSPC)가 운영하는 세부 석탄화력 인근에서 석탄재가 방치된 채 쌓여있다. 사진=CDN


2013년 태풍 ‘하이옌’이 남긴 악몽과도 같았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필리핀은 지난해 말 태풍 ‘장미’를 비롯해 연이은 재난에 시달려야 했다. 인명과 재산 피해는 물론 이재민 생계 지원과 복구에 이르기까지 천문학적 수준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태풍이 더 심해지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데는 기후변화 탓이 크다. 태풍, 홍수,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세계 기후위기지표’ 순위에서 필리핀은 가장 심각한 피해를 받는 국가로 평가됐다.


기후변화에 책임이 큰 선진국이 기술과 자금 이전을 통해 필리핀과 같이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저탄소 경제 이행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송도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녹색기후기금’은 바로 개도국의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을 위해 조성된 국제적 재원이다. 이 기금으로 화석연료 대신 개도국이 태양광이나 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를 늘려가도록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된다.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의 잠재량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은 여전히 석탄 화력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전체 전력생산량에서 석탄은 2012년에 3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재생에너지는 14%를 나타냈다. 하지만 석탄 발전소는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할 뿐 아니라 가난한 지역 주민들의 건강 피해와 환경 오염을 일으키면서 강한 저항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에게는 이국적인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관광지로 유명한 필리핀 세부 섬. 정작 주민들은 섬 한 가운데 위치한 석탄 발전소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0메가와트(MW) 규모의 세부 석탄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다량의 석탄재는 나가 지역의 인접한 주택과 학교 주변에 무단 투기되기 일쑤였다. 주민들이 호흡기질환과 암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확률이 전국 평균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실제로 석탄재에서는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수은, 비소,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이 놀라우리만치 많이 검출되기도 했다.


환경오염과 건강 악화를 우려한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오랜 저항을 무릅쓰고 세부 석탄발전소 건설에 뛰어든 기업은 다름 아닌 한국전력이었다. 한전은 필리핀 현지 전력회사(SPC)와 공동으로 합자회사(KSPC)를 설립하고 2011년부터 석탄발전소 가동에 들어갔다.


한전이 필리핀 현지 전력회사와 공동으로 설립한 합자회사(KSPC)가 운영하는 세부 석탄화력 발전소. 사진=Ubo Pakes


한전은 이른바 ‘청정 석탄기술’을 도입해 오염 배출을 낮췄을 뿐 아니라 ‘1억달러의 수출 시너지 효과 창출’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필리핀 환경단체는 ‘청정 석탄기술’이 오히려 기존 발전소에 비해 석탄재를 네 배나 더 많이 배출한다며 비난했다. 석탄발전소에서 매일 발생되는 250톤의 석탄재가 처리시설 없어 무차별적으로 투기된 것 관련해 주민들의 요구로 법원의 투기 중지명령을 발령해야 할 정도였다.


한전이 필리핀에서 석탄발전소의 사업권을 따내는 데에는 한국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함께 총 사업비의 70%에 달하는 3억1500만 달러의 금융을 지원했다.


수출입은행은 해외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기업에게 대출, 보증, 보험과 같은 정부의 수출신용을 제공하는 정책금융기관이다. 기획재정부 산하의 수출입은행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자본 100%를 소유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이 한국의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에 막대한 자금조달을 통해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수출입은행이 해외 석탄화력 사업에 지원한 금액은 41억7천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두산중공업이 참여한 베트남 몽즈엉 석탄화력 사업에 무역보험공사와 함께 17억 달러, 포스코건설이 참여한 칠레 벤타나스 석탄화력 사업에 5천만 달러 등 11개 사업에 금융을 지원했다. 세계에서 신규 건설된 석탄화력 설비용량의 23%가 OECD 수출신용기관의 금융 지원을 받았다(2005년~2012년, 중국 제외).


올해 말 새로운 기후협약총회를 앞두고 OECD 국가들은 석탄발전소에 대한 수출신용 지원을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새로운 기후체제 도출에 앞서 선진국들이 화석연료 지원에 관한 새로운 합의를 통해 책임 있는 기후변화 대책을 선도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수출신용기관의 지원을 받는 발전시설에 대해 500g CO2/kWh의 온실가스 ‘배출 성능기준’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석탄 화력발전은 지원 대상에서 퇴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석탄발전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대신 오히려 인센티브를 확대하자는 입장을 제시했다. 3월 OECD 회의에 제출한 한국 입장문서를 보면 “개발도상국은 경제적 여건상 값싸고 풍부한 석탄과 같은 에너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OECD 수출신용 지원을 중단하더라도, 개도국이 석탄화력에서 천연가스나 재생에너지로 이행하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학생들이 ‘석탄은 살인자’라고 적힌 가면을 쓰고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가장 더러운 에너지원인 석탄 발전소에 대한 지원을 고수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화석연료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철폐해나가자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부끄러운 태도”라며 규탄했다.


한전의 세부 석탄화력 건설에 반대해왔던 ‘세부재생에너지연대’의 빈스 신체스 활동가는 “화력발전소가 건설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의 세수를 늘리며, 전력난을 해소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이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사탕발림일 뿐이며, 그들이 약속한 100개의 일자리는 12만 나가 주민 전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발전소 건설의 혜택이라고 주장하는 정부의 수치들은 지역사회가 겪게 될 건강과 생계, 환경 파괴 문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빈스 신체스는 “우리는 필리핀 나가 지역사회를 해치는데 돈을 퍼붓게 될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투자하지 말도록 환경을 사랑하는 모든 한국 국민과 정부 및 관련 기관에게 호소합니다. 한국 국민의 세금은 나가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데 쓰여져서는 안되며, 지역 주민의 복지를 증진하는데 지원되어야 합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한전은 '필리핀 전체 발전량의 약 10%를 공급하고 있고 신규 사업을 통해 이를 12%까지 끌어올릴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전은 재생에너지와 같은 청정에너지원이 아닌 석탄화력발전소 확대를 고수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세부 섬의 또 다른 노후 발전소를 인수한 한전은 새롭게 300MW급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전은 바탄 섬, 민나나오 섬, 카디스 지역에서 추가적으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의향을 나타냈다. 필리핀 시민사회가 한국 시민사회에 절실한 연대의 손길을 호소하는 이유다.


기획재정부와 수출입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어달라”는 필리핀 주민들의 목소리를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 한국 정부가 진정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인다면, 파리 기후총회 전까지 석탄화력에 대한 수출신용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공식 선언에 나서야 한다.


이지언



링크

개도국 석탄발전 금융 지원, 한국 OECD ‘1위’(한겨레, 4월16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687113.html


Abbott government resists US moves against coal power

http://www.smh.com.au/federal-politics/political-news/abbott-government-resists-us-moves-against-coal-power-20150326-1m7mx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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