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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석탄발전

우리에게 일용할 석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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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l


조지 오웰은 1936년 영국 잉글랜드 북부의 탄광 노동자의 실상을 취재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우리 문명의 기반은 석탄이다”라고 썼다. “우리를 살게 해주는 기계가, 그 기계를 만드는 기계가 전부 직간접적으로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오웰은 탄광 막장에서의 체험을 통해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이 없으면 지상의 세계도 없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것, 빵 굽는 것에서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석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고 언급했다.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면,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서 에너지원은 필수다. 산업혁명을 가능했던 것은 증기기관의 발명이라고 배웠지만, 수많은 증기기관을 움직이게 했던 동력은 결국 탄광에서 채굴된 어마어마한 양의 석탄에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국가들은 물질적 부를 축적하기 위한 과정에서 모두 석탄 연소에 힘입었다.


오늘날 석탄은 구시대의 연료처럼 들린다. 한국에서 이제 연탄을 때는 풍경은 매우 보기 드물어졌고 과거 운영되던 탄광은 매우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문을 닫았다. 석탄은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로 이어진 다른 화석연료는 물론이고 핵에너지나 재생에너지 기술에 자리를 조금씩 내어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석탄은 우리 눈에서 사라진 듯 여겨지지만 사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에너지원이다. 국내 전력생산량의 4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발전원은 바로 석탄화력이다. 한국만이 아니다. 중국(81%)이나 인도(71%)와 같은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미국(38%)과 영국(39%)과 같은 선진국도 석탄에 크게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자연과 야생동물의 나라’로 떠올리는 호주 역시 발전량의 69%를 석탄에서 얻는 대표적인 ‘석탄 국가’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심코 전등이나 텔레비전을 켤 때 쓰는 전기의 절반 가까이는 석탄을 태우고 나서 도달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석탄은 우리 생활과 동떨어져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외주화’되어있기 때문이다. 발전소는 냉각수를 확보하기 유리한 해안가에 건설되고 대부분의 석탄은 해외에서 수입하게 됐다. 대량의 전기를 얻기 위해 대단지로 지어진 발전소에서 연소되는 석탄의 양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증가됐고 그만큼 오염물질 배출량도 많아졌다. 세계 4위의 석탄 수입국인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호주에서 대부분을 공급받는다.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의 노동을 통한 채굴은 오늘날 훨씬 광범위한 규모로 산림과 산호초 생태계를 파헤치며 자행되고 있다(물론 여전히 탄광 노동자의 희생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5월 300여명의 사망자를 낳았던 비극적인 터키 소마탄광 사고가 대표적이다).


석탄 대량소비의 시대는 계속 될까. 매장된 석탄 자원이 아직 넉넉할지는 모르지만, 지구의 기후를 안정화시키려면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의 소비를 지금처럼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에 따르면,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선 현재 확인된 화석연료 매장량의 최소 3분의 2는 더 이상 채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기온 상승폭 2도는 국제 사회가 ‘합의’한 목표로서, 이조차도 ‘매우 위험한’ 기후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선진국들은 제한 없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경제성장을 이룩한 결과로 현재의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가난한 개발도상국들이 과거 선진국과 유사한 경로로 경제발전을 추구한다면 어떨까. 한 개의 지구로는 감당할 수 없는 파국을 맞을 것이다. 기후 재난이 미치는 강도는 국가마다 달라서 가난한 국가일수록 태풍, 가뭄, 폭염 그리고 해수면 상승과 같은 이상기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는 가난한 인구에 더 가혹할 뿐 아니라 식량주권이나 생태계 악영향으로 환경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기후변화를 일으킨 책임은 선진국들에게 있는데도 말이다. 개발도상국이 석탄이 아닌 태양광과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경제로 이행할 수 있도록 선진국이 기술 이전과 재정 지원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저탄소 사회로 가고 있을까. 여전히 우리는 욕망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다. 더 많은 부를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 생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 향상으로 인해 경제가 성장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드는 ‘탈동조화’ 사회에 접어든 다른 선진국과는 차이를 보인다. 심지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서도 태양광·풍력 급증과 석탄 소비량 감소로 배출량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도 최근 전력 수요가 줄어들면서 가동하지 않는 발전소가 늘게 됐다. 그럼에도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그리고 도시로 전기를 연결하기 위한 초고압 송전선을 추가하겠다는 계획은 계속되고 있다.


값싼 연료의 경제성을 내세워 정부와 사업자는 석탄을 고수하지만, 석탄 연소는 치명적인 대기오염과 기후변화를 일으켜 오히려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정부가 말하는 기후변화 대응을 통한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사회적 편익을 늘리고 건강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있다.


이 글은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 활동가가 월간 <책> 2015년 5월호 '오피니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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