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단 사업장 무더기 유해물질 배출조작 사태 ‘빙산의 일각’
◇오염물질 초과 배출하고도 ‘기준치 미만’ 조작, 부담금 면제 ‘부당이득’
◇산업시설 미세먼지 배출 55% 차지하지만, 조작과 누락으로 관리 정책 ‘누더기’
◇환경부, 수차례 배출조작 ‘근절’ 약속했지만, 자가측정 유착구조 여전
◇불법 적발되도 과태로 최대 500만원 불과… 대기업 ‘솜방망이’ 처벌 비웃었다
◇“철저히 진상 규명하고 처벌 강화 등 제도 개혁돼야”
‘여수 밤바다 이 바람에 걸린 알 수 없는 향기가 있어’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여수는 남해바다의 풍취를 만끽할 수 있는 낭만적인 지역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지역 민심은 이 ‘바람에 걸린 알 수 없는 냄새’ 때문에 들끓고 있다. 최근 불거진 여수 산업단지 유해물질 배출조작 사태는 수습되기는커녕 기업들의 불법 행태가 추가로 드러나는 양상을 보이며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여수 산업단지가 들어선 지 반세기 동안 숱한 인명피해와 환경사고에도 주민들은 참고만 살았다. 매캐한 연기가 나오고 시커먼 가루가 쌓여도 국가발전이라고 생각하며 오염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관리한다는 기업의 말을 설마하는 심정으로 믿었다. 대기업 집단이 엄청난 불법을 저지르고 주민을 기만한 것에 대해 여수시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응징하자!”
5월 14일 오후 3시 여수시청 앞에서 열린 ‘여수산단 유해물질 배출조작 규탄 시민결의대회’에 모인 300여 명의 목소리는 격앙됐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조작을 저지른 업체가 LG화학과 한화케미칼 등 환경당국이 앞서 발표한 6곳 외에도 삼성전자, GS칼텍스,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등 추가로 적발됐다는 뉴스가 이틀 전 보도됐다. 이날 여수지역 45개 시민사회, 노동단체, 정당으로 구성된 여수산단 유해물질 불법배출 범시민대책위원회가 출범해 이번 산업시설 불법배출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수상한 여수 밤바다의 ‘향기’
4월 17일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은 대기오염물질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먼지·황산화물 등을 속여서 배출한 여수 산단 지역의 기업들을 무더기로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235개 배출 사업장이 2015년부터 4년간 대기오염물질 측정값을 축소하여 조작하거나 실제로 측정하지 않고 허위 성적서를 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총 1만 3,096건의 대기오염도 측정기록부가 조작되거나 허위로 발급됐다. 그 중 8,843건은 오염물질을 실제 측정하지 않은 허위 측정으로 확인됐다. 미세먼지로 인해 시민 모두가 신음할 때 기업들은 유해물질 측정값을 조작하며 과다 배출하고 부담금을 회피하며 부당이익을 취했다.
대기업이 오염 측정을 대행업체에 의뢰하면서 노골적으로 측정 조작을 공모한 사실도 드러났다. 오염배출 기업은 오염물질이 법적 기준치를 초과한 경우 기준치 미만으로 수치를 조작해 배출부과금을 면제 받거나 감면 받았다. LG화학 여수화치공장의 경우, 특정대기유해물질에 해당하는 염화비닐(PVC의 원료물질)의 시료 측정값이 207.97ppm으로 배출허용기준 120ppm을 크게 초과했지만 3.97ppm으로 결과값을 수정하는 등 149건에 대해 조작했고, 이를 통해 2017년 상반기 기본배출부과금을 면제 받았다.
배출허용기준치를 초과해 오염물질을 배출한 경우 사업장은 배출량에 비례해 배출부과금을 납부하고 지자체로부터 개선명령을 받게 된다. 초과 횟수가 누적되면 조업정지나 과징금으로 제재가 강화된다. 하지만 법적 기준 미만으로 오염 배출하면 기본부과금만 부과하고 기준치의 30% 미만으로 배출할 경우 부과금이 면제된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오염 측정값을 조작한 4,253건에 대해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별로 분석한 결과 측정값은 실제 대기오염물질 배출농도의 33.6% 수준으로 낮게 조작되었다. 앞서 4월 초 환경부는 전국 626개 대형 사업장의 2018년 오염물질 배출량이 전년에 비해 9% 저감됐다고 발표했지만, 산업시설 유해물질 배출량 자료가 기업 집단의 조작과 누락으로 심각히 훼손됐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여수산단 인근에 거주한다는 한 주민은 “내 아버지가 기관지 질환을 앓고 옆집 아저씨가 폐암에 걸린 이유를, 내 이웃이 백혈병으로 돌아가신 이유를 이제 알았다. 이익만 추구하는 대기업 집단에게 주민들은 철저히 유린 당했다”며 절규했다. 산업시설은 전체 미세먼지 배출량의 53%를 배출하는 최대 오염원이다. 미세먼지뿐 아니라 제철, 석유화학 시설이 밀집한 산업단지에서는 독성 화학물질 배출로 인해 주민 건강영향이 심각하다고 알려졌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7개 산업단지에서 유해물질로 인해 연간 1,861명이 초과사망하고, 여수는 포항에 이어 유해물질로 인한 사망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나타났다(<함께사는길> 2018년5월호).
오염물질 배출치 짜고 친 기업과 측정업체
유해물질 배출조작은 여수산단 일부 기업의 일탈적 범죄인가. 그렇지 않다. 오염배출 기업이 측정대행업체와 배출조작을 공모한 사건은 전국 산업시설에서 오래 전부터 반복돼왔다는 점에서 여수산단 사태는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오염물질 자가측정이라는 제도적 맹점을 이용해 기업들이 집단적으로 배출조작을 자행해왔고, 설사 당국에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기업이 법을 비웃으며 범죄를 반복하도록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과거에도 매번 재발방지와 근절을 약속했지만, 2015년 불거진 경유차 배출조작 ‘디젤게이트’에 이은 최악의 ‘산업단지 게이트’로 확산되면서 또 다시 정책 실패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2013년 울산공단 폐기물 처리업체 염화수소 배출조작 사건, 2016년 경기도 측정대행업자의 허위 성적서 발행 등 과거에도 불거졌던 문제는 오늘날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때마다 환경부와 지자체는 재발방지와 제도 개선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배출조작은 근절되지 않았다. 자가측정이라는 취약한 제도를 운용하면서도 정부가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처벌이나 규제를 느슨하게 시행해왔다.
사업장 배출조작 문제의 중심엔 자가측정 제도가 있다. 자가측정이란 오염배출 사업자가 배출구에서 오염물질 시료를 채취해 스스로 측정하거나 측정대행업체에게 의뢰해 측정값을 행정에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로 대기환경보전법에 근거를 둔다. 사업장 오염관리의 다른 방식으로 굴뚝자동감시체계(TMS) 부착을 통한 실시간 통신 방식이 있지만, 다량 배출사업장에 해당하는 1~3종 사업장에만 의무화되어 있고 그나마 현재 부착된 600여 개 사업장의 전체 배출구 대비 설치율은 3% 수준에 그친다. 환경부는 굴뚝자동감시장치 부착 사업장수를 늘릴 계획이지만, 전국 5만8천여 개에 달하는 모든 사업장에 단기간에 보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자가측정이란 무엇이 문제인가. 배출 기업이 측정대행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계약하는 방식은 기울어진 갑을관계를 구조화한다. 환경영향평가나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지적돼왔다. 대기업을 비롯한 배출업체가 부당한 입김을 행사할 때 측정대행업체가 이를 거부하려면 측정수수료나 계약 연장 관련 암묵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배출업체 출신의 인사가 측정대행업체로 자리를 옮기며 인적 유착관계가 형성되는 사례도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사업장 오염물질 관리를 기업의 자율에 맡기도록 한 취약한 제도 설계에도, 유착 구조를 방지하고 감시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미흡했다. 4월 17일 환경부의 여수산단 배출조작 관련 브리핑에서 최종원 영산강유역환경청장은 “측정대행업체와 배출업소에 대한 관리 업무가 지자체로 이양된 이후에 이러한 불법행위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이러한 배출업소와 측정대행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측정대행업체 등록과 관리에 대한 업무가 환경부에서 지자체로 이양됐지만, 지자체 관리감독이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관리 부실과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 키웠다
그러나 환경부가 사업장 오염물질 자가측정 권한을 지자체로 이관하면서 배출업체와 측정대행업체간 유착구조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앞서 2015년 환경부는 10년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대기환경보전 법정 계획인 ‘제2차 대기환경개선 종합계획(2016-2025)’에서 ‘자가측정 신뢰성 제고’를 정책 과제로 담으며 “측정·분석결과의 허위작성 방지를 위하여 시료채취 및 시험분석 자료를 실시간 입력”하는 방안 등 대기배출사업장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측정 분석자료의 실시간 입력 시스템 구축은 아직까지 구현되지 않았다.
이어 환경부는 2016년 환경분야 시험·검사에 대한 자가측정 위탁계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행위의 원인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측정대행업체의 소속직원이 ‘자유롭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배출업체(측정의뢰인)의 부당한 간섭이나 지시를 금지하고, 허위계약서를 방지하기 위해 측정대행계약서의 지자체 제출을 의무화한 환경시험검사법을 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측정대행업자와의 불평등한 계약(갑·을)관계가 해소되어 보다 투명하고 정확한 측정·분석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듬해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업계에 만연한 불법 배출조작 행태를 뿌리뽑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정부의 ‘유착 근절’ 선언이 구호에 그쳤음을 드러냈다.
대기환경보전법과 환경시험검사법에서는‘측정·분석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당한 명령이나 간섭을 금지한다고 명시했지만, 사업장 불법 배출조작은 왜 끊이지 않았을까. 고의적으로 측정 결과를 조작하거나 거짓 기록해도 업체가 받는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허위로 측정결과를 기록하거나 산출한 측정대행업체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그리고 영업정지나 등록취소에 해당하는 행정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관리 당국에서도 ‘갑’의 위치에 있다고 인지하는 배출사업장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이 너그럽다. 배출조작한 배출사업장은 과태로 500만원 그리고 경고(1~3차)나 조업정지(4차) 최대 20일에 해당하는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그나마 조업정지의 행정처분에 해당해도 ‘지역경제 영향’을 고려해 낮은 벌금으로 대체되는 편이 잦다.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 소홀과 기업 봐주기식 처벌 관행이 사업장의 ‘묻지마 배출조작’을 방치했다고 볼 수 있다.
공공 측정제도로 전환하고 징벌적 손배제 도입해야
이번에도 환경부는 미세먼지 불법배출을 ‘근절’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업장 배출조작과 유착관계를 차단하기 위한 종합개선 대책을 5월까지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선 제시한 방안을 보면, 드론을 활용해 사업장 밖에서 유해물질을 추적 감시한다든지 자외선 같은 분광학을 이용해 원격에서 굴뚝 배출을 실시간 측정하겠다는 식의 기술적 수단만 나열됐다. 대기오염 관리 체계가 누더기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상황에서도 과연 진정한 개선이 이뤄질지 우려된다.
이번 배출조작 사태의 구조적 원인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진지한 성찰과 개혁 의지를 발휘하지 못 한다면 대기오염 정책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실수를 인정하고 낱낱이 실태와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게 우선돼야 함은 당연하다. 아울러 최소한 두 가지 방안의 제도 개선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우선, 유해물질 측정과 기록을 기업 자율에 맡겼던 자가 측정 제도를 전면 수술해 민간이 아닌 공공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배출기업과 측정대행업체가 직접계약하게 하는 현행 구조를 유지하는 한 갑·을 유착구조를 근절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울러, 시민의 건강과 생명과 직결되는 유해물질에 대한 배출조작 행태를 중대범죄로 규정하고 처벌 규정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파렴치 환경범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도 도입돼야 한다. 시민을 ‘호갱’ 취급하는 범죄를 매번 겪고도, 기업 활동 위축된다고 또 넘어갈 일인가.
글·사진=환경운동연합 이지언 활동가
<함께사는길> 201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