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은 페미니즘 사안이자 친환경 정책
「오버타임」, 윌 스트런지, 카일 루이스 지음, 성원 옮김, 시프, 2021
최근 한국행정연구원이 일반 시민 1천명, 공무원 600명 등을 대상으로 '새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조사한 결과 '경제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한국행정연구원, 데이터 브리프, 2022.6).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는 반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 수준은 여전하고 근로자간 임금격차도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 수십 년간 국민소득 가운데 임금 비중은 낮아지고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다. 직장에서의 '고된 일'보다는 주택 같은 자산을 소유하는 일이 경제적 성공을 이루기 더 쉬운 시대다. 노동을 통해 기대되는 보상이 낮아도 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에 시달려야 한다. 엄청나게 많은 무보수 초과노동을 하고, 불과 10년 전보다도 더 먼 거리를 통근하고, 실질 임금은 줄어들었다. 안정적인 생계를 보장할 수 없는 일자리도 급격히 늘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런 '비표준' 노동 증가가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어찌 된 일일까.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기술 혁신은 노동시간의 단축, 결국 노동 해방으로 이어진다고 하지 않았나. 케인스는 이렇게 예측했다. 실제로 1930년 당시 영국은 1860년에 비해 연평균 노동시간이 400시간 이상 줄었다. 케인스는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데 요구되는 인간의 시간은 점점 줄어 2030년경이면 주당 노동시간은 15시간으로 줄어들 것으로 봤다. 우리는 결국 이 예측이 틀렸다는 걸 안다. 기술 혁신은 GDP 증가로 이어졌다. 그런데 경제는 부유해졌지만 노동시간은 이에 맞춰 줄어들지 않았다. 관건은 분배의 문제다. 자본가는 향상된 기술력만큼 더 많은 생산량과 이윤 축적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은 제한하려는 동기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적 또는 자연적 법칙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 요구의 결과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오버타임」은 현대의 '노동 중독' 사회가 가정 내 여성화된 노동 불평등 그리고 기후위기 문제와 긴밀히 얽혀 있고 따라서 노동 시간 단축이 두 문제 해결의 핵심 기둥이라고 주장한다. 산업화 이후 가정 영역에서의 노동은 임금노동이라는 경제 영역에서 분리된 채 "남성들에게 사유화된 안식처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남성 가장을 부양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재생산 노동은 부불노동인데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가려져왔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아졌음에도, 젠더 규범은 여전하다. "부불 재생산 노동 대부분을 책임지는 건 여전히 여성들이며, 그런 그들에게 임금노동까지 추가될 때가 잦다. 여성들은 보수를 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의 노역으로부터 해방되기는커녕 이제는 '생산적인' 노동과 재생산노동을 모두 수행하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저자는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많은 직장이 얼마나 (부불노동의 부담을 짊어지지 않도록 설계된) 남성의 커리어 패턴에 맞춰져 있고 여성들이 이런 세계에 스스로를 끼워넣어야 하는지 꼬집는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남성과 여성이 가사노동을 더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번아웃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압력을 낮출 수도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거나 여성의 육아휴직을 남성에게 재할당하는 방안도 효과적이다. 아울러 저자는 돌봄노동을 비롯해 각 가정에서 전담하는 활동의 사회화와 재분배, 공공 인프라의 확충을 주문한다.
'노동 중독' 사회는 생태적 위기와도 맞물려있다. 장시간 노동은 대량생산-대량소비 경제 구조의 유지를 의미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OECD 국가에서의 노동시간을 4분의 1 줄일 경우 탄소 발자국을 30% 줄일 수 있다. 소비 측면에서도, 노동 시간이 긴 가정은 탄소발자국이 더 크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늦은 밤에야 퇴근해서 요리를 하기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배달 음식이나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이나 포장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게 된다.
탄소 집약적인 화석연료 경제 부문을 급속히 전환하기 위한 '그린 뉴딜' 전략에서 일자리는 중요한 의제다. 그린뉴딜에서 실업과 저임금에 대한 해법으로 종종 일자리 보장을 내세운다. 경제를 급진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뒤처지게 두지 않겠다는 정책 방향이다. 다만 저자는 그린 뉴딜 전략에서 노동시간 단축 의제가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녹색 전략에서 노동과 일자리 프레임이 과장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회주의적 근대화'가 갖는 한계와 맞닿는다.
노동 시간 단축은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 수단"이며, 노동과 사회생활을 개선시킨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탈탄소 경제의 핵심 요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노동의 재정의가 핵심이지만 노동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지언
이런 구절
"일자리와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사람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자본주의하에서 불경기나 침체기에 나타나는 관행적인 경제적 접근법)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면 노동이 분배될 것이고, 그리하여 일부의 실업이나 불안정 고용을 피하는 동시에 모두의 자유시간을 확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전략은 자원 집약적인 경제에서 벗어나 더 지속가능한 형태의 노동으로 이행할 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