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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째깍째깍 기후위기

고유가 때 반복되는 유류세 인하, 능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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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전 세계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맞았습니다.

기후 붕괴를 막기 위한 마지막 '골든 타임'이 불과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엄중한 상황도 우리 눈 앞에 있습니다.

현재 각국의 위기 대응 흐름을 보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에너지 공급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각국 정부는 '골드 러시'라고 부를 만큼 천연가스 쟁탈전에 뛰어드는 형국입니다. 가스 연료 확보를 위한 신규 탐사와 개발, 파이프라인과 설비 확대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습니다.

가스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수록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C 이내로 억제하자는 기후변화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기후 정책 연구기관인 '기후행동트래커(Climate Action Tracker)'는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대한 각국의 긍정적/부정적 대응 정책을 평가해 공개한 바 있습니다.

부정적 대응 정책으로 꼽힌 대표적인 예는 유류세 인하입니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폭을 37%로 확대한 19일 서울의 한 주유소 유가정보판에 휘발유가 2290원, 경유가 2280원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지난 2년 동안 세계 유류와 가스 가격은 크게 올랐습니다. 현재 상황을 유가가 급등했던 1973년 '석유 파동'에 비견하기도 합니다.

고유가는 휘발유, 경유 자동차에서 전기차와 같은 대안 교통 수단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부는 에너지 가격 앙등의 충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세금 인하 조치를 펴 왔습니다.

한국도 고유가마다 단골처럼 유류세 인하 카드를 빼들었습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유류세 20% 인하를 결정했습니다. LNG 할당관세도 0%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이어 올해 5월부터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을 20%에서 30%로 더 확대했습니다.

그래도 고유가가 잡히지 않자 정부는 7월부터 유류세 인하 폭을 최대 법적 한도인 37%로 조정해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종료 예정이었던 승용차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도 6개월 연장해 연말까지 시행합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7월부터 연말까지 유류세 인하폭을 대통령령으로 가능한 최대폭인 37%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걸로도 모자라, 아예 법을 개정해 유류세 인하 한도를 더 확대하는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현행 30%인 유류세 탄력세율 범위를 아예 100%로 확대하는 내용의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과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여야가 앞다투어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만은 아닙니다. 일본, 뉴질랜드, 캐나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도 유류세 인하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유류세 인하는 자연스러운 유류의 수요 감소와 저탄소 교통수단으로의 전환을 방해합니다. 정부 재정 부담도 증가됩니다.

일괄적 유류세 인하가 아니라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대책에만 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도 이와 관련해 "정책입안자들은 높은 국제 가격이 그대로 국내 경제에 반영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권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정부의 정책 여력이 위축된다는 겁니다.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손실은 수조 원에 달합니다.

안 그래도 코로나 대응으로 인해 정부 재정이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로 인해 다른 공공 서비스 지출을 희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당장 오늘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정부 예산을 내년부터 '긴축 재정'으로 전환하기로 발표했습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따라 한국 등 여러 국가의 유류세 인하 대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국제 기구는 지적한다. 자료: Climate Action Tracker

아울러 "소비 분포가 소득에 따라 늘어나는 상품에 대한 보편적 가격 인하는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는 지적도 주요한 이유입니다.

비싼 가격이면 소비가 줄어들텐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춰 석유 소비를 늘리게 유인합니다. 무엇보다 대중교통보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 경차보다 대형차를 이용하는 사람과 같이 더 부유한 계층이 더 소비할 수 있는 정책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심지어 정부의 유류세 인하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이 소비자가 아닌 정유사에 돌아가 '초과 이익'을 거둔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왔습니다.

정유사에 대한 초과 이익에 과세하기 위한 '횡재세' 도입 방안이 언급되고 있지만, 정치권의 실질적인 법제화 의지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기후행동트래커' 역시 "보조금은 높은 가격을 부담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방식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아울러, 유가가 다시 내려갈 경우 정부가 화석연료 보조금을 축소하고 탄소 가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덴마크의 경우, 러시아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기후위기 대응을 가속화하기 위해 저탄소 교통에 대한 탄소세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도 취약 가구에 대한 맞춤형 재정 지원을 하거나 대중교통 요금 인하와 같은 조치를 제안했다는 사실을 국내 정치권에서도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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