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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석탄발전

석탄발전 절반 줄인다면서… 이행 정책은 묵묵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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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급전 시행 3년, 환경비용 비중 3% 미만으로 효과 미미

환경비용 현실화, 석탄발전 총량 감축제 도입해야

시장에서 판매되는 두 종류의 상품이 있다. 기능은 비슷한 반면 가격은 상품 A가 B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A를 우선 구매하고 부족한 경우 B로 충당한다. 그런데 상품 A를 만드는 과정이 B에 비해 환경오염을 더 많이 유발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오염으로 인해 공기와 물이 나빠져 사람들이 질환을 앓고 치료비를 내야 하는 비용이 상당하지만, 이런 비용은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되지도 않았고 판매자가 부담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시장에서 상품A의 판매는 여전히 지배적이다. 사람과 생태계가 감수해야 하는 ‘지불되지 않은’ 부담은 늘어만 간다.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외부비용’의 개념이다. 어떤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환경오염과 같은 외부 효과가 발생하지만, 생산자는 이를 부담하지 않는 비용에 해당한다. 이 경우 외부비용이 높더라도 그 상품의 시장 가격은 저렴하기 때문에 더 많이 소비된다. 생산자가 부담하지 않은 비용은 사회와 생태계로 전가된다. 이런 ‘시장 실패’는 환경오염의 심화로 귀결된다.

해법은 뭘까. 시장 경제의 렌즈로 보면, 논리는 단순하다. 외부비용이 문제라면, 그 비용을 제대로 평가하고 시장 가격에 ‘내부화’시키면 된다. 과세가 대표적 수단이다. 특정 상품의 자원 절약과 효율적 소비를 명목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가 포함된 유류세가 대표적이다. 다만 국내에서 휘발유와 경유에 부과되는 유류세는 상대적 환경오염 수준을 충분히 반영하진 않는다. 경유의 대기 오염도가 휘발유에 비해 더 높은데, 과세 수준은 그 반대다. 이론과는 달리, 정책 의사결정에 환경 이외의 경제적․사회적 고려가 우선된다고 볼 수도 있다.

전력 부문은 어떨까. 2021년 기준 국내 총 발전량 중 63%가 미세먼지와 온실가스의 주요 배출원인 화력발전에서 공급됐다. 석탄발전은 34.3%로 제1발전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액화천연가스(LNG)가 29.2%로 높은 비중을 나타냈다. 석탄발전은 LNG발전에 비해 온실가스를 2배 많이 배출한다. 정부는 올해 말 수립 예정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석탄발전과 LNG 비중을 각각 21%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전 9차 계획에서 2030년 석탄과 LNG 비중이 각각 30%, 23%였으니, 특히 석탄발전을 더 적극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기조다. 올해 3월부터 탄소중립기본법이 발효되면서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제도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40%에 달하던 석탄발전의 비중을 10년 내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정부가 내세웠지만, 이행을 담보할 정책 수단은 매우 불투명하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2030년 줄어드는 석탄발전 설비용량은 현재에 비해 15%에 불과하다. 4기의 신규 석탄발전소가 여전히 건설 중인데다, 정부가 석탄발전의 가동 연한의 기준을 30년으로 정해서 점진적인 폐지 일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럼 석탄발전 설비는 크게 줄지 않는데 발전량 비중은 어떻게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것일까. 정부가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관련 8월 말 공개한 설명 자료에 따르면 석탄발전의 ‘가동정지와 상한제약을 적용한 추가 감축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짧게 언급했을 뿐이다. 9차 전력계획에서 제시된 제도 보완 대책은 아예 사라졌다. 2020년 수립된 9차 계획에서는 연도별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에 맞춰 석탄발전 발전량을 제약하는 제도 도입과 환경급전을 개선하겠다는 방안이 담겼다.

환경급전이란 발전 원가에 환경비용을 반영하는 제도로, 지난 8월로 시행된 지 꼭 3년을 맞았다. 전력시장에서는 각 발전소로부터 전력을 공급(급전) 받을 때 발전 단가가 저렴한 순으로 받는다. 과거에는 연료비가 곧 발전 단가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비용을 각각 추가하게 된 것이다. 환경급전은 2017년 ‘전기사업법’이 개정된 이후, 2019년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명시되고 세부 운영 규칙이 개정돼 같은 해 8월부터 ‘환경열량단가’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어 올해 1월부터 ‘배출권열량단가’가 추가로 도입됐다. 환경열량단가는 대기오염물질 관리 비용, 배출권열량단가는 온실가스 비용을 각각 반영한 것이다. 열량단가는 전력시장 운영기관인 전력거래소가 각 발전소별 급전 순위를 결정하기 위해 산정하는 기준이다.

환경운동연합은 환경 급전 제도 도입 3년을 맞아 전력거래소로부터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환경급전이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석탄발전의 경우, 환경비용이 발전단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미만으로 나타났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석탄발전의 평균 열량단가는 올해 7월 기준 Gcal당 50,899원으로, 이 중 환경열량단가 224원과 배출권열량단가 1,131원에 해당하는 비중은 2.7%에 불과했다.

LNG발전의 경우, 평균 0.5% 수준이다. 석탄발전에 부과되는 환경비용의 수준이 LNG에 비해 다소 높지만, 이 정도의 환경비용으로는 석탄발전 감축을 유도하는 효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석탄발전 열량단가는 LNG 열량단가와 2배 가량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추세다. 올해 러시아발 위기로 인한 화석연료 가격 상승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환경급전 효과가 무색한 상황이다.

결국 석탄발전의 과감한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의 정책 보완이 시급하다. 먼저 환경급전을 실제 작동하도록 만드는 방향이다. 석탄과 LNG발전의 외부비용만큼 원가에 최대한 반영하는 방안이다. 그렇다면 화력발전의 외부비용은 어느 수준일까. 2018년 조세재정연구원이 에너지원별 환경피해비용을 추정한 결과를 보면, 석탄발전의 환경비용은 kg당 176.3원 LNG발전은 165.4원으로 평가됐다. 이를 열량단가로 환산하면 Gcal당 각각 29,763원, 12,672원 수준이다. 다시 말해, 현행 석탄과 LNG의 환경비용은 연구기관이 평가한 외부비용의 4% 정도만 반영하는 꼴이다. 석탄발전에 대한 환경 과세 수준이 매우 낮다는 의미다.

이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서 유상할당이 소극적으로 설정된 탓에서 일부 기인한다. 현재 배출권거래제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에서 유상할당 비율은 10%로 정해져있다. 유상할당이란 기업에 부과되는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 중 구매해서 확보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머지는 무상할당으로, 기업은 공짜로 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다. 즉, 유상할당 비율이 낮을수록 기업은 추가 비용의 부담 없이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인정받거나 배출권거래로 이득을 거둘 수 있다.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의 경우, 2013년부터 발전 부문에 대해 100% 유상할당을 원칙으로 시행 중이다. 국내 배출권거래제 역시 발전 부문에 대한 유상할당 비율을 조속히 100%로 상향해 환경비용을 현실화해야 한다.

또 다른 방안은 석탄발전의 조기 폐지와 발전량의 물량 규제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방향이다. 환경급전이 작동하기 시작해 전력시장에서 석탄발전의 퇴출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재 기후위기의 시계는 장기간의 대응을 기다려주지 않는 상황이다.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지구 가열화 1.5℃ 방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석탄발전을 늦어도 2030년까지 폐지해야 한다는 게 과학계의 권고다.

결국 정치권의 의지가 관건이다. 현행 발전공기업에 한해 자발적으로 시행 중인 ‘석탄발전 상한제’로는 한계가 있다. 석탄발전의 가동 수명을 30년으로 보장할 게 아니라 조기 폐지하도록 하고 석탄발전의 총량을 매년 줄여나가도록 의무화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건설 중인 석탄발전을 취소하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탈석탄법 제정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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