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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그린 철강

[기고] 철강 불모지 신화, 탄소중립에서도 재현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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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경북 포항제철소 외곽에 2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생겼다. 포스코가 태풍에 대비해 만든 차수벽이다. 지난해 9월 포스코는 역대급 규모의 태풍 힌남노로 49년 만에 처음 시설 가동을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2조원 이상의 손실과 인명 피해를 낸 기후재난을 또 겪지 않겠다며 내놓은 방지대책이 바로 이 차수벽이었다.

힌남노가 바꾸어 놓은 것은 비단 포항제철소 풍경만은 아니었다. 코로나19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던 국가 온실가스 총 배출량도 극적으로 감소했다. 탄소 배출량 1위 기업인 포스코의 2022년 배출량이 전년 대비 10%가량 준 영향이 컸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포스코가 지난해 국가 총 온실가스 감축분에 기여한 비중은 35%에 달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감축은 힌남노로 포항제철소 가동이 3개월간 멈추면서 발생했다.

탄소무역장벽, 저탄소 철강 전환 시급

그렇다고 낙담하기는 이르다. 역설적으로 포스코가 변하면 산업계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탄소 배출량이 효과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온실가스 최대 단일 배출원인 석탄 발전을 줄이고자 힘을 모은 것처럼, 이제 그 공은 철강 등 탄소집약 산업계로 넘어갔다.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문제는 개별 기업의 노력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설계하고 함께 노력해야 할 사안이다.

철강 산업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10%의 책임을 갖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철강계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9년 대비 30% 감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포스코와 현대제철과 같은 국내 주요 철강사들의 같은 기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1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열대화로 접어든 지금,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각계의 탄소 배출 저감 노력이 절실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탈탄소화 요구가 산업계에 부담을 가중시켜 국가 경제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국제적으로 탄소무역장벽 리스크가 확대되고, 자동차 조선 풍력을 비롯한 수요 기업들의 저탄소 철강 요구가 확산되는 중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고로 방식으로 생산하는 고탄소 철강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빠르게 상실할 수밖에 없다.

전기로의 재생에너지 조달 위한 투자 필요

이런 흐름에 따라 세계 주요 철강사들은 단순히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세계 2위 철강사 아르셀로미탈은 2025년부터 수소환원제철을 상용화해 탄소제로 철강을 생산할 계획이다.

또한 스웨덴의 사브(SSAB)는 2년 전 이미 화석연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철강제품 시험 생산에 성공한 데 이어 2023년 현재 철 스크랩과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해 상업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반면 포스코는 2030년에서야 수소환원철을 시험 생산하는 일정을 갖고 있을 뿐이다. 포스코의 새 브랜드 슬로건 '그린 투머로우, 위드 포스코(Green Tomorrow, With Posco)'에서 느껴지듯, 포스코 역시 시대의 요구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탄소의 절대 배출량을 줄이고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철강 생산 방식의 구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석탄 기반의 노후 고로를 조기 폐쇄하고, 전기로로 전환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실제 고로의 경우 전기로에 비해 약 4배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1.5℃ 시나리오에 따라 2030년까지 전 세계가 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 고로를 모두 운영하면서 2030년 수소환원제철 시험이 성공하기를 기다릴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다. 동시에 전기로의 재생에너지 조달을 위한 국가 투자 및 정책 변화도 요구된다.

철강 산업은 한국 산업화의 견인차로서 우리 경제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1960년대 후반 포스코가 처음 제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누구도 그 성공을 쉽게 내다보지 못했다. 지금 우리는 세계 6위 철강 생산국이 됐다. 말 그대로 불모지의 신화였다.

이제 철강이, 그리고 한국 철강이 기후위기의 견인차로 나설 때다. 재생에너지 사용 '세계 꼴찌' 수준인 한국에서 철강이 다시 한번 불모지의 신화를 보여줄 때다. 포스코가 변하면 한국의 기후 대응이, 나아가 세계의 기후 대응이 바뀔 수 있다.

이지언 국제환경단체 액션 스픽스 라우더 그린스틸 캠페이너

2023-09-11 내일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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