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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칼럼

외국인이 청계천을 보고 놀라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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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본 녹색 성장⑨] ‘속도전’, 시대착오적 발상

몇 년 전 함부르크 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청계천도 둘러보았는데, 계획·철거·개발 전 과정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재임하던 그 단시간 내에 모두 이뤄졌다는 얘길 듣더니 이 교수가 한마디 했단다. “독일에서는 이렇게 밀어부치는 것이 불가능한데···.”

청계천의 그럴싸한 외관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와대 입성을 도왔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건설회사 출신의 그가 청계천 개발을 밀어부친 이면에는 문화재 가능성이 있는 유물을 그저 하나의 돌덩어리일 뿐이라고 해석하는 천박함과 더불어, 겉보기만 번듯할 뿐 실제 생물의 서식지로서의 기능은 아예 불가능한, 한강의 물을 펌프질해서 다시 흘려 보내는 인공 구조물일 뿐이라는 한계가 근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얼마 전부터 갑자기 ‘속도전’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있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한다. ‘좌고우면’할 시간 없다고. 쉽게 풀어 쓰면, 시간 없으니 빨리 밀어부치자 뭐 이런 뜻 아니겠는가. (속도전이란 이 단어를 접하는 순간 20여 년 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그때 선생님은 만화 ‘똘이장군’을 보여주면서 북괴 공산당'이 얼마나 나쁜지 알려주셨다. 도덕 시간에는 ‘북괴 공산당’들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어떤 전략과 전술을 펼치는지 매우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5호 담당제, 새벽 별 보기 운동, 그리고 속도전. 이거 제대로 못 외우면 선생님에게 크게 혼 났었다).

▲ 청계천에 직접 발을 담근 이명박 대통령. 이 거대한 가짜 수로 개발 사업이 대한민국 하천 복원의 모델이란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묻지마식 청계천 따라하기가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

독일의 한 지독한 제도
건설과 개발 관련한 독일의 여러 절차 중에 ‘Planfeststellungsverfahren’이라는 것이 있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이 긴 한 단어는 ‘사업 전 계획 평가 절차’ 정도로 풀어 쓸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개발이나 건설 행위에 앞서 관련 법에 따라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이 절차는, 기존에 존재하는 지역 개발 계획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고 새로운 개발 계획을 평가하는 그런 절차다. 물론 이 건설 또는 개발 행위가 초래할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다룬다.

가령 새로운 집을 한 채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개발 사업자는 이 구상을 시청에 제출할 것이다. 시청에서는 이 접수받은 새로운 건설 제안을 기존에 있던 지역 개발 계획과 비교 검토한다. 또 이 새 집 건설과 관련해서 영향을 받을 법한 모든 이해 당사자를 불러 모은다. 그들의 의견을 결정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만약 새로운 집 건설로 인해 녹지가 훼손된다면, 시청에서는 이 건설업자에게 훼손하는 만큼의 녹지를 인근 지역에 만들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 만약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차가 너무 커서 어떠한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할 경우 최종 결정은 법원의 몫이 된다. 그렇다고 법원이 곧바로 가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에서는 이해 당사자들에게 충분한 논의를 더 거치라고 제안한다. 이견이 발생하는 지점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라는 것도 법원이 결정을 내리기 앞서 요청하는 사항 중 하나이다.

대단위 건설 사업은 끝도 없는 토론을 벌여야만 한다. 가령 공항을 확장한다고 가정해보자. 관련된 이해 당사자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우선 쉽게는 소음과 관련한 피해가 있을 것이고, 교통문제, 녹지 훼손 문제 등 여러가지 논란 거리가 있을 것이다. 이 사업의 경우 ‘사업 전 계획 평가 절차’에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까? 한 독일 교수에게 이를 묻자 독일인 특유의 손사래를 치며 10년 정도의 토론은 기본이라고 답한다.

실제로 지금 독일 전역에서는 이 절차에 따라 해당 개발 계획이 진행될지 말지를 다투는 논쟁이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한창이다. 가령, 독일 최남단 작은 마을인 콘스탄츠와 징엔을 이어주는 40킬로미터(km) 지방도로 건설을 둘러싸고 10년 이상 이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속도전을 강조하는 ‘다이나믹 코리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 아니겠는가. 한국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아마도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비용 낭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천만에! 계획 과정에서 그만큼의 공을 들여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치고 각종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근거로 제시되기 때문에, 이 절차를 거친 후 결정되는 사업 시행 여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 없게 된다. 또 개발에 따른 각종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과학적인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 전 계획 평가 절차’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갈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보게 된다.

▲ 방조제 건설로 거북 등껍질처럼 갈라진 새만금 갯벌. ⓒ환경운동연합


속도전의 피해
우리의 예가 이를 잘 설명해 줄 것이다. 새만금 개발은 지난 1987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등장했다. 그 후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일단 사업 착수에 들어간다. 환경단체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우려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약'을 지키려는 정권은 이에 아랑곳 않고 일단 밀어부쳤다.

그 후 본격적인 사회적 갈등이 시작된다. 이미 삽질은 시작되어 멈출 수 없다는 정부와 지금이라도 사업을 멈추는 것이 더 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환경단체 간에 치열한 몸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부는 쉽게 말한다. ‘사업 전에 미리 문제제기하고 토론하지 왜 사업이 시작된 후에 난리’냐고, 환경단체는 평소엔 가만히 있다가 사업 시작하면 항상 뒷북만 친다고. 사실 충분한 토론 기회를 박탈한 것은 바로 정부의 밀어부치기 사업 방식이었는데도 말이다. 최근 경인운하 공청회가 이를 잘 보여준다.

환경단체와의 갈등은 사회적 비용에 있어서 사실 빙산의 일각이다. 사실 더 큰 사회적 비용은 바로 정부가 계획한대로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화호 개발에서 보듯, 초기 정부의 계획은 장밋빛 그 자체였다. 둑을 막아도 물은 절대 썩지 않는다는. 사업이 완료되고 보니 웬걸, 환경단체가 우려했던 대로 물은 ‘당연히’ 썩었다. 일부에서 우려했던 문제점에 대해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더니 결국 누구나 ‘예상했던’ 그러나 정부만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약 18조 원을 들여 경부고속철도 짓겠다고 했을 때 환경, 생태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과연 수익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다. 결과적으로 코레일이 경부고속철도로 인한 적자의 늪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보라.

이런 속도전 문화는 재생 가능 에너지 분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06년 초 제주도 한 마을에 풍력 발전기 설치가 계획되었다. 정부로부터 발전 사업 허가까지 받은 이 사업은 결국 특정 종교 공동체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현재까지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 외국으로부터 풍력 발전기를 수입한 이 사업자는 풍력 발전으로 돈을 벌기는커녕, 항구에 이 거대한 발전 설비를 보관하는 대가로 보관료를 지불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허가를 내주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충분한 논의가 있었다면 이런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 독일 북부 디르크스호프(Dirkshof) 시민 풍력 발전 단지. ⓒ프레시안

‘사업 전 계획 평가 절차’의 효과
독일의 이 ‘사업 전 계획 평가 절차’는 앞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사전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사회적 갈등,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말로 떠들며 논쟁하는 것과 이미 시작된 삽질을 되돌리는 것과는 그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비교가 불가능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가 훨씬 경제적이라는 얘기다.

이 절차의 시행은 재미난 부수적 현상을 만들어냈다. 그 중 하나가 오너십(ownership)과 관련한 것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사업 전 계획 평가 절차’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특히나 지역 주민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가령 풍력 발전기 설치를 예로 들어보자. 외지인이 내 땅에 들어와 풍력 발전기 설치해 돈 벌어간다면 그걸 좋게 바라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만약 지역 주민인 내가 이 풍력 발전소에 투자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빌려준 땅에 대한 임대료만 받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 중 한 사람으로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면 풍력 발전소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이 풍력 발전기는 '내 것' 이니까.

이 ‘사업 전 계획 평가 절차’ 제도의 원래 취지는 아니지만, 이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독일인들은 시민 오너십이라는 묘안을 찾아내 지역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주민들 설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민들에게 사업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또 그들의 투자를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 말이다. 독일 어느 지역을 가도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풍력 발전 단지, 태양광 발전 단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제도가 가져다 준 부수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 노이뮌스터 쓰레기 자원화 시설 안내도(왼쪽)와 쓰레기 처리 모습(오른쪽). ⓒ프레시안

더불어 이 제도는 관련 산업과 기술의 발달을 도모할 수 있다. 가령, 쓰레기 자원화 시설을 건설할 경우 악취가 큰 걸림돌이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사업자는 이 악취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신 기술로 시설을 보강해야 한다. 지난 가을 방문한 노이뮌스터(Neumünster)의 한 쓰레기 자원화 시설의 책임자는 ‘시민들의 악취에 대한 민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정부의 규제치가 100이라면 우리는 20이라는 강화된 수치를 적용’했다고 자랑한다. 악취 제거 기술의 개발이라는 부수적 효과를 얻는 것이다. 더불어 관련 산업의 발전도 도모하게 되고.

4대강 정비 사업의 속도전
정부는 지난 연말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공약의 이름만 바꿔 4대강 정비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정부가 만든 법에 엄연히 거쳐야 하는 절차로 명시된 사전환경성검토도 무시한 채 정부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이다. 이 속도전의 피해는 누가 보게 될까? 경부고속철도나 새만금 개발에 따른 피해는 이를 결정했던 정치인들, 행정가들의 몫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그리고 우리 후손들의 몫이 될 것이다.

                        ▲ 4대강 정비 사업 착공식. ⓒ환경운동연합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하지 않은 계획이나 정보에 의존해 지금 당장 결정하고 삽질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삽질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 함께 예상해보고 그 득과 실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독일의 한 절차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하나의 절차라는 것은 일련의 과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 특정 절차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학과 자세일 것이다. 법이 있어도 이를 지키지 않고 안하무인 격으로 밀어부치는 정부 앞에서 어떤 제도나 절차라 한들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겠는가).

* 이 글은 독일에서 유학 중인 염광희 환경운동연합 간사의 글로서, <프레시안>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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