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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교통과 자전거

자전거 타는 당신, ‘착한 도시’의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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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담론과 자전거 인터뷰>

- 최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녹색담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제안했다. 과거 개발위주의 반환경적 성장철학을 고수해왔던 정부가 밟아온 지금까지의 행보를 염두에 둔다면, ‘녹색’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사실 자체에서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미 도시화가 90퍼센트 이상 진행된 한국의 숲과 습지의 많은 면적이 포장도로와 건물 콘크리트로 대체됐고, 많은 인구가 대도시로 몰리면서 심각한 에너지낭비와 대기오염 문제를 발생시켰다. 에너지 소비가 늘고 자동차가 도로를 점점 가득 메우게 되면서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배출량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상위 10위에 속하며, 1990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100퍼센트 가까이 늘어났다.

△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는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 한국의 교통혼잡비용은 24조 6천 원으로 추산된다.

자동차와 석유로 상징되는 도시의 일상은 한편으로는 풍요롭지만, 이대로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은 이유다. 교통부문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자동차 중심의 도로계획은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들을 ‘교통약자’로 주변화시킨 결과를 낳았다. 자전거 이용의 경우, 통근과 통학을 목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인구는 전국적으로 1.2퍼센트에 불과한 수준으로서(2005년 기준), 네덜란드 43퍼센트, 일본 25퍼센트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

녹색성장이란 구호 아래 정부는 지난 1월 ‘녹색뉴딜’ 계획을 발표하면서, 2018년까지 전국의 자전거도로를 3,114킬로미터 확충하겠다는 유례없는 자전거 활성화정책을 내놓았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녹색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에 큰 관심을 두고 적극적인 대책을 발표한 것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 자전거 이용이 주는 효과에 대해 말해달라.

우선 자전거는 5킬로미터 이내의 근거리를 이동하는 데 있어 가장 편리하고 효과적인 교통수단이다. 실제로 자전거 이용실태를 보면, 5킬로미터 이하를 이동하는 경우가 99.2퍼센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승용차의 경우 44퍼센트로, 여전히 가까운 출퇴근이나 쇼핑에서도 자동차 이용이 낮지는 않지만, 자전거 문화가 정착된다면 변화될 여지가 충분히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전거로 근거리를 이동하면서 자동차를 대체하는 경우, 무엇보다도 대기오염을 완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도시의 대기오염은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기오염이 심각해서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자전거를 타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대기오염이 줄어 도시인들의 건강이 좋아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2007년부터 ‘자전거로 CO2 다이어트’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자전거 이용이 개인의 건강증진뿐 아니라 결국 사회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1,200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이산화탄소를 8만5천 킬로그램을 줄이는 성과를 냈다. 이만큼의 온실가스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4천9백 그루의 나무를 심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일부러 나무를 심지 않아도 일상에서의 자전거 이용이 도시의 공기를 맑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출퇴근으로 자전거를 이용한다면, 승용차의 유류비나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는 사실은 당연하다. 사회적 차원에서 본다면, 자전거가 자동차 주행을 1퍼센트만 대체해도 1.7억 리터의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 이는 동시에 2천817억 원의 비용의 절감을 의미한다. 석유를 비롯한 대부분의 에너지자원을 해외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자전거 이용이 예측하기 어려운 에너지가격 변동에 장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안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 대기오염과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는 근거리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 이용 활성화는 절실한 과제다. 2007년 서울환경연합의 자전거로 CO2 다이어트 캠페인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지나고 있다. (사진/서울환경운동연합)

- 정부에서
내놓은 자전거 정책에 대해 환경단체로서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러 정부 부처가 협력을 통해 적극적인 자전거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1조 2,456억 원을 들여 자전거도로를 대규모로 확충한다면, 자전거시설은 크게 늘어나겠지만 과연 자전거 수단분담률이 그만큼 늘어나게 될지 의문이다. 이번 계획에 포함된 자전거도로 확충이 대부분 하천이나 해안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만 보더라도, 700킬로미터 남짓한 자전거도로는 전체 도로연장의 8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대부분 한강이나 지천을 따라 구축되어 있어서 주로 레저 목적으로 활용될 뿐이다. 오히려 도심 자전거도로의 실태는 실망스러운 한숨을 내게 한다. 보행로와 구분되지 못한 자전거도로는 사실상 보행자나 인근 상가의 점용에 의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고, 자전거도로가 서로 단절되어 있어서 결국 자동차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현실에 눈감은 채 ‘전국 자전거도로 네트워크’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전국 일주나 여행을 위해서 해안과 4대강 하천을 따라서 자전거도로를 짓겠다는 것이다. 도시를 가득 메운 자동차로 인한 교통혼잡을 완화하는 맥락에서 나온 자전거 정책이 아닌, 단지 관광이나 건설기업을 위한 계획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기존의 하천 주변의 자전거도로 확충이 수서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홍보식 사업으로 무분별하게 추진돼, 오히려 ‘녹색’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더욱 우려가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일상의 경험에 근거해 다른 대안을 주장한다. 굳이 전국 자전거도로를 만든다면, 새로운 자전거도로를 만들기보다는 잘 활용되지 않는 국도나 버려진 옛길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대규모 예산이 필요하지도 않으며, 새로운 도로를 짓지 않아도 돼 환경파괴를 일으키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진정한 ‘녹색’에 가까운 지혜로운 시민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성급하게 일을 추진하기보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꿋꿋이 자전거를 이용해오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자전거시설의 중요성도 크지만, ‘자전거 이용이 불편하다’라는 부정적인 의식을 바꾸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모든 조건과 환경이 완비된 이후에 자전거를 이용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의 자전거 이용환경이 결코 안전하거나 편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주변의 많은 지인들은 자전거를 ‘매일 목숨을 걸고 탄다’고 고백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매일 꾸준히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자출족’이라는 사실에 굉장히 많은 자부심을 느낀다. 이유가 뭘까?

우선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즐겁기 때문이 아닐까. 자전거는 교통수단이지만 하나의 놀이도구이기도 하다. 개인들은 자신의 자전거에 많은 애정을 쏟으며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다. 버스에 탈 때와는 다르게, 그들은 자신의 발을 굴려 자신의 ‘차’를 직접 움직이며 길을 찾는다. 단순한 ‘교통약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도구로서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 프라이부르크 보봉의 거리에서 아이들이 외발자전거에 색칠을 하며 놀고 있다. 보봉 지역에는 기본적으로 주차가 금지돼 있고, 주차를 할 경우 비싼 주차비를 내야 한다. (사진/한겨레21 박수진 기자)

또 자전거는 개인와 공동체를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거리의 풍경은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스쳐갈 때와 도보나 자전거로 느리게 지나갈 때 분명히 다르게 보인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마을을 향한 애정과 관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보봉시의 경우, 마을의 거리를 아예 자동차 없는 거리로 조성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거리는 아이들의 놀이터와 가족의 산책로로 변했고, 주민들은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자동차 교통사고로 등교길을 위협받는 한국의 아이들이 보봉시에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교통 문화와 도시환경의 차이는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환경운동연합의 앞으로의 계획은?

도시에서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이 한국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자전거시설이 어떻게 생태계와 지속가능한 사회와 조화될 수 있을까? 서울환경연합은 이런 문제의식에 근거해 사람에게 안전하면서도 친환경적인 자전거도로를 위한 ‘행복한 자전거길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자전거도로 문제를 쉽게 만들면 그만이라는 편견을 정책 입안자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제라도 시민들의 지혜를 빌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는 자전거 활성화 정책을 함께 모색해야 할 때이다.

인터뷰 = 이지언 서울환경운동연합 간사

*이 글은 월간 <아시아포럼>의 서면 인터뷰를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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