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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도쿄 수돗물 방사능 오염, 안전하다는데 왜 안심 못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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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이와 임산부에게 수돗물을 섭취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안내문을 붙여놨다. 사진=Takuro Negishi/아사히신문

지난 수요일 도쿄도의 한 슈퍼마켓에선 생수를 찾는 손님들로 2리터짜리 페트병이 20분만에 모두 바닥났다. 한 발 늦은 사람들은 대신 작은 생수병이나 보리차를 사야 했다. 한 60대 할머니는 슈퍼마켓을 네 군데나 돌아다녔다.

상점만이 아니었다. 음료수 공장이나 찻집과 식당에서는 수돗물을 사용할지 말지 혼란스러워했다. 한 술집 체인점에서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에게는 수돗물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 대신 유아식에 섞을 물을 주문하는 경우엔 광천수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런 낯선 풍경은 수돗물에서 유아 섭취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됐다는 공식 발표가 나온 직후에 일어났다.

이날 앞서 도쿄도 정부는 가쓰시카구 정수장에서 채취한 수돗물에서 유아 섭취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검출된 방사성 요오드는 1킬로그램당 210베크렐(Bq)로 월요일에 발표된 유아 섭취기준치 100베크렐보다 2.1배 높다. 수도의 북쪽에 위치한 이 정수장은 도쿄도의 23개 구와 무사시노시 등 5개 도시에 식수를 공급한다.

지진 해일에 잇따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지 열흘이 지났다. 애초 ‘침착하다’고 그려진 일본 시민들의 표정엔 조금씩 불안감이 커져가는 것 같다. 무엇보다 240킬로미터나 떨어진 후쿠시마 원전에서 빠져 나온 방사성물질이 도쿄 시내 지하에 있는 수도관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그랬다.

정부는 유아에게 수돗물을 먹이는 것을 삼가라면서도 “건강에는 영향이 없고 생활용수로 쓰는 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사성물질이 도쿄도 인근에 있는 지바현과 이바라키현의 정수장에서도 기준치를 초과했고 공기와 식품에까지 전반적으로 오염이 확인되면서 시민들의 불안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정부와 전문가는 기준치를 제시하며 계속 ‘안전’하다고 강조하지만 결국 시민들을 ‘안심’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문제는 약간의 오염은 괜찮다는 식의 해석이다. 낮은 농도의 방사선 피폭은 당장의 건강영향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사성물질의 긴 반감기를 고려한다면 장기간에 걸쳐 갑상선암과 백혈병 등 질병이 발생할 수 있고 특히 어린이나 임산부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1986년 일어난 체르노빌 사고로 현재까지 6000여명에게서 갑상선암이 보고됐는데 이들은 피폭 당시 아이들이었다. 피폭 피해자의 발병률은 시간이 흐르면서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원인은 방사성 낙진에 묻은 풀을 뜯어먹은 소의 우유였다. 방사성물질이 들어있는 우유를 마시지 말라는 권고가 있었다면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의 경우 갑상선의 활동이 많고 따라서 요오드 요구량도 많다. 그런데 어른에 비해 아이의 갑상선 크기가 작아서 같은 양의 방사성 요오드에도 피폭량은 더 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같은 양의 방사성 요오드를 섭취했을 경우 어른에 비해 갓난아기는 16배, 한 살 이하의 아이는 8배, 다섯 살 어린이는 네 배 갑상선 피폭량이 높다. 같은 이유로 임산부도 피폭에 훨씬 더 취약하며,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은 섭취한 요오드 중 4분의 1 가량을 모유로 분비한다고 알려졌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안전한 피폭 허용치는 없으며 가능하다면 방사성물질 섭취를 최소화해야 한다. 방사능 오염의 피해를 되도록 줄이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위험을 사전에 예방해서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싶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정부와 전문가들은 일본의 상황을 CT나 엑스레이와 같은 의료방사선이나 심지어 자연방사선과 비교하면서 원전사고에 의한 총체적 피폭의 심각성을 가볍게 해석한다. 한 사람이 받는 전체적인 피폭량이 아니라 이를테면 수돗물의 요오드131과 같이 한 가지 요인의 한 가지 방사성물질에 대한 기준치만을 설명한다. 심지어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물질이 검출돼도 “당장의 인체영향은 없다”고 말하면서 시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킨다.

이는 한국정부도 마찬가지다. 24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일본산 식품의 심각한 방사능 오염이 우려될 시에는 일본산 식품의 수입을 잠정 보류하는 등의 조치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이는 원전 폭발사고 이후 바람의 방향을 근거로 “우리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한 정부의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계속 방출되고 있는 방사성물질의 확산이 점차 광범위해지면서 물과 음식까지 오염되고 있다. 원자로의 불이 여전히 꺼지지 않은 이상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아직은 안전하다고 말할 때가 아니다.

이지언

이 글은 3월25일자 <민중의 소리>에 기고됐습니다.
http://www.vop.co.kr/A000003761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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