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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이제 위험한 ‘원자력 실험실’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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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리마에 있는 일본인마을의 한 주민이 지진과 해일 피해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종이학을 접고 있다. 사진=REUTERS/Mariana Bazo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일주일에 부쳐

일주일 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첫 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언론에서는 이미 ‘체르노빌’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위험사회>의 저자로 유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 역시 지난 13일 독일의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25년 전에 일어난 최악의 핵 사고를 먼저 떠올렸다.
그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는 당시 보수적인 기독교사회당 지도자에 의해 ‘공산주의적 원자로 참사’로 규정되면서 “매우 예외적인 사고로 치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울리히 벡은 “그렇게 보면 체르노빌 참사는 서구 자본주의 진영이 보유하고 있는 원전의 안전성을 오히려 강조하는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체르노빌의 역설’은 일본 원전사고를 둘러싸고 다시 반복되는 것일까. 지난 14일 아랍에미리트 원전 기공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원자력발전소 안전성 측면에서 한국 원전이 최고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안현호 지식경제부 제1차관도 “우리나라 원전은 쓰나미가 온다고 해도 침수가 안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이어받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의 폭발과 방사능 유출로 모두가 긴장해있을 때 한국 정부는 오히려 ‘우리나라 원전’의 기술적 우월성을 선전하기 좋은 때라고 조바심을 냈다. 한국의 경우는 원자로 기종이 다르고, 3중 방호벽 대신 5중 방호벽을 갖추고 있다고 말이다. 이번엔 ‘열등한 이념’ 대신 ‘열등한 기술’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규정되면서 이번에도 원전사고는 매우 ‘예외적인 사고’로, 특히 아주 이례적인 큰 지진에 의한 예외적인 사고로 치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여러 국가들이 원전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했지만, 한국 정부만은 원전확대 정책을 반성하는 대신 공세적인 태도를 취했다. 17일 엄기영 한나라당 강원도지사 후보자의 삼척지역 원전 유치 찬성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이런 행보에는 원자력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들어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각 신문에 1면 광고를 내 ‘원자력 발전소를 더욱 안전하게 운영하겠습니다’고 호소했다.

18일자 한 신문 1면에 실린 한수원의 광고.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국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지진, 쓰나미 등의 모든 자연재해에 대비 안전하게 설계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원자력 산업계가 체르노빌에서 그리고 후쿠시마에서 배운 교훈이다. 독일이 노후한 원전에 대한 운전연장 결정을 다시 보류한 채 원전 7기의 가동을 멈췄고 중국조차 원전의 안전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과는 상이한 교훈이다. 안전의 문제를 ‘순수한 기술적인 문제’로만 접근하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한국 이상으로 원자력 기술의 안전성을 자랑했던 일본 원전이 처한 상황은 기술주의적 발상만으로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줬다. 평소 어마어마한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이지만 폭발과 방사능 유출로 상황이 악화됐던 것은 정작 냉각장치를 가동할 전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서 보여주는 원자력발전소의 낯선 내부 구조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을 것이다. 특히 두꺼운 강철로 만들어진 원자로 안에 있는 물질의 존재에 대해서 말이다.

이번 사고를 설명하는 여러 논리가 가능하겠지만 결국 위험의 핵심은 용기 안에 들어있는 핵연료에 있지 않을까. 여기서 용기가 몇 겹의 방호벽으로 차단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위험한 것은 핵연료 그 자체니까. 그것은 지금 후쿠시마 원전 4호기에서 무섭게 드러났듯 사용된 후에도 엄청난 열과 방사선을 방출하는 물질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사용후 핵연료 1만1121톤이 원전 부지 네 곳에 나눠서 저장돼 있고, 해마다 680톤의 폐연료봉이 나와 5년 뒤면 저장시설이 포화될 전망이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경우엔 300년 동안 방사성 물질이 주변으로 나오지 않게 설계된 곳에 저장돼야 한다. 경주에서 건설 중인 핵폐기장은 최근 안전성의 문제를 제기한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연기되다 최근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조차 핵 물질의 유출이 예상된다고 인정했다.

그 답변은 이렇다. 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은 “경주 방폐장은 (중략) 장기간 경과 후에는 궁극적으로 물에 잠기게 되고 점진적인 지하수 유동과 방사성핵종 유출이 예상”된다면서도,

“처분폐기물의 특성과 공학적 설계특징 및 부지특성 등에 의한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며 모호하게 얼버무린다. 이에 대해 경주환경운동연합은 “핵물질이 유출된다면 그냥 동해바다에 방사능 폐기물을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라며 비판했다.

우리는 몇십년 또는 몇백년만에 한 번 있을 수 있는 강진에 대한 방재대책에는 호들갑을 떨면서도 정작 우리가 매일 옆에 끼고 살았던 위험한 핵연료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질문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것은 우리와 120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원전사고가 우리에게 다시 선택의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세계를 실험대상으로 만드는 에너지.’ 원자력 에너지를 울리히 벡은 이렇게 표현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원자력 실험실에서 벗어날 준비를 시작할 시간이다.

이지언

이 글은 <레디앙>에도 실렸습니다.

링크
울리히 벡 “세계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원자력에너지”
http://climateaction.re.kr/14089

“다시 못볼것 같아…” 전화에 가족들 무너진 가슴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468747.html

[추신] 원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이 처한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이 아픕니다. 그들을 '영웅이자 희생자'로밖에 만들 수 없는 이 위험한 기술은 결국 주민들과 노동자들만이 짊어져야 하는 것일까요.

경주환경운동연합, KIN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는 경주방폐장의 방사능 유출을 예견하고 있다
http://cafe.daum.net/gjkfem/Gi4j/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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