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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대지진과 방사선 위험… 일본 학생들에게 봄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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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4일 대지진 피해를 받은 이와테현 이시노마키시에서 열린 졸업식에 참가한 초등학교 6학년 미라이 오쿠다 학생이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AP Photo/Vincent Yu

방사선 피폭 위험이 높은 후쿠시마 지역에서 일본 정부가 4월부터 예정된 입학식을 그대로 추진하려는 가운데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로 입학식을 연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4월부터 새학기가 시작되는 일본에서, 문부과학성은 3월25일 각 현의 주지사와 교육위원회에 입학식 등의 학교행사에 대해 "탄력적 대응"할 것을 권고했다. 문부과학성은 각 교육위원회에 보낸 ‘동북지방 태평양해 지진 발생에 따른 교육과정 편상상의 유의사항에 대해’라는 제목의 문서에서 “입학식 등 학교행사에 대해서는 각 학교와 교육위원회의 판단에 따라서 그 시기를 정할 것이며, 특히 재해지역의 학교 교육위원회에서는 학생과 학교 그리고 지역의 형편을 고려하여, 당초 예정했던 일정을 변경하는 일을 포함하여 탄력적인 대응으로 배려해달라”라고 전달했다.

지난 2일 문부과학성은 권고에 따라 현재 입학식을 연기하거나 중지한 학교는65개 대학교와 3개 고등학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또 65개 대학과 52개 대학은 각각 4월과 5월 중으로 개강을 연기했다.

하지만 원전 사고 수습의 전망이 불분명한데다 방사능 오염이 가장 심각하다고 확인되는 후쿠시마현에서 대학교와 고등학교의 결정과 달리 초중교 입학식과 수업이 예정대로 시작될 것이란 소식에 시민들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문부과학성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초중교 교육과정을 관할하는 현 교육위원회가 예정된 일정을 그대로 추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만 후쿠시마현 교육위원회는 6일부터 일부 학교에서 수업이 시작되면서 보호자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5일부터 3일간 초중교 등에서 대기 중 방사선량을 측정하기로 결정했다. 대상은 대피령이 내려진 원전 20킬로미터 바깥 지역에 있는 1,428개의 초중교, 유치원, 보육원이다.

이에 대해 ‘핵과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후쿠시마 회의(이하 후쿠시마 회의)’는 입학식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발표에 학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대피시켰던 아이들을 급히 다시 데려오고 있다고 지난달 31일 전했다. 후쿠시마 회의는 재난 복구활동을 위해 자발적으로 구성된 주민들의 모임이다. 정부 대피명령 지역 이외에도 후쿠시마에서 상당수의 학부모들은 초등학생이나 미취학 자녀를 이미 다른 지역으로 대피시킨 상태다.

정부 발표에 우려가 커지자 앞서 이 모임은 직접 방사선 측정에 나섰다. 후쿠시마 회의는 3월 29일과 30일 후쿠시마시와 가와마타군에 있는 7개 초등학교에서 방사선을 측정했다. 측정은 휴대용 방사선 계측기로 지면에서 10~20센티미터 거리를 두고 이뤄졌다. 많은 일본에서는 시민들이 휴대용 계측기로 직접 방사선을 측정하는 방식이 꽤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지역은 대피명령과 실내거주 권고가 내려진 원전 반경 30킬로미터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거리에 있다.

이틀 동안의 간단한 측정 결과에 대해 학부모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있는 환경에서 오염지역이 커지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측정치는 한 학교의 배수로에서 최대 13,000cpm을 기록해 정부가 제시한 기준 이하였지만, 아이들이 성인에 비해 방사선의 인체영향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시민들의 입장이다.

방사능 오염도를 나타내는 단위 ‘cpm’은 1분당 측정되는 방사선수(count per minute)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오염물질에 방사성물질의 농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일본 정부의 인체 방사선 오염제거 기준으로 보면, 100,000cpm 이상일 경우 전신 오염제거를 13,000cpm 이상이면 부분 오염제거를 받아야 한다. 일본 정부는 대지진 직후인 3월14일 부분 방사선 오염제거 기준을 6,000cpm에서 13,000cpm으로 대폭 상향 조정한 바 있다.

후쿠시마현 방사선 검사기준 (대지진 이후 3월14일 상향조정) 부분 오염제거 13,000~100,000cpm / 전신 오염제거 100,000cpm

측정값은 학교와 장소마다 심한 편차를 보였다. 후쿠시마 회의는 편차에 대해 “방사성물질이 땅에 떨어진 뒤에 이동하다가 특정 지역에 더 많이 축적되는 ‘방사선 웅덩이(radiation pool)’ 현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방사선 웅덩이’는 더 고농도의 방사선을 내게 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저마다 다양한 행동 유형을 나타내기 때문에 따라서 전반적인 오염도가 낮더라도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피해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공기나 토양의 방사성물질에 의한 외부 피폭 이외에 특히 아이들은 내부 피폭에 더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피부에 미세상처가 있거나 손가락으로 입이나 코를 만지는 경우 외부 방사성물질이 몸 속으로 흡입돼 내부피폭을 일으키게 된다. 손을 씻지 않은 채 음식을 먹거나 머리카락에 붙어있던 방사성 먼지를 털어내 다시 흡입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후쿠시마 회의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지난달 31일 후쿠시마현 주지사와 교육위원회에 공개서한을 전달하며 “방사선 오염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자체가 조급하게 입학식을 진행한다면 유감스러운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이라면서 즉각적인 정밀 조사를 실행하고 특히 원전 반경 30킬로미터 권역을 포함한 지역에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입학식을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현재 원전 반경 20킬로미터에 내려진 일본 정부의 대피명령 지역을 더 확장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3월18일부터 26일까지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25~58킬로미터 내에 있는 토양 시료를 자체 분석한 결과 원전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이타테 마을에서 대피명령 기준을 초과하는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원전에서 20~3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대해 실내거주와 ‘자발적 대피’만을 권고하고 있다. 후쿠시마시는 원전으로부터 6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고 가와마타군은 더 가깝다.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방사성물질의 실제 확산 정도에 따라 대피지역 범위를 조속히 재조정해서 확대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방사선의 위협 이외에도 일본의 많은 학교는 이미 대지진과 지진해일로 큰 피해를 입거나 대부분 대피소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달 11일 발생했던 대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학교 건물이 붕괴됐고, 피해를 입지 않은 학교의 교실이나 체육관은 수많은 이재민을 수용하기 위한 피난소로 이미 변했다. 일본 언론은 애초 3월 예정된 졸업식의 경우 이재민들과 함께 체육관에서 진행되거나 또는 아예 졸업식을 진행하지 못한 학교에서는 교사가 직접 학생들을 찾아가 졸업장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방사선 피폭에 대한 안전 조치와 함께 아이들이 대지진의 피해로부터 받은 심리적 충격이나 집을 떠나서 낯선 환경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심한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한 주의 깊은 보살핌 역시 필요하다.

이지언

(4월4일 오전1시에 내용이 1차 수정됐습니다. 4월5일 오후5시55분에 내용이 대폭 수정됐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실린 글은 편집자의 수정으로 일부 내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링크

링크
후쿠시마 회의가 발표한 관련 보도자료, 보고서, 공개서한
http://fukushima.greenaction-japan.org/2011/04/02/the-fukushima-conference-for-recovery-from-the-nuclear-earthquake-dis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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