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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배출권거래제 7년… 기업의 부당이득 감시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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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서 배출권거래제는 실제로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 아니면 배출권 가격하락과 각종 부작용으로 인해 기업들의 구색만 맞춰주는 결과를 낳을 것인가?


2005년부터 이어온 유럽의 배출권거래제 경험은 이 논쟁적인 제도를 새롭게 받아들이려는 국가들에게는 여러 의문을 풀어줄 주요 단서다. 거꾸로 중국, 호주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배출권거래제 시장이 확장되는 흐름을 유럽 역시 예의주시하고 있다. 시장의 확대는 곧 배출권거래제의 안정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유럽 배출권거래제, 위기의 지속인가 확장을 통한 안정화인가


배출권거래제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을 통해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남는 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방식의 도입은 규제에 거부적인 기업들로부터의 정치적 반대에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기후변화 문제의 책임을 생산자에게 지워 오염자 부담원칙에도 부응하면서도 더 이상 소비자들의 자발적 도덕성에 호소하지 않아도 된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개인의 부담이 덜어지니 더 강력한 감축 목표의 설정도 가능해진다.


물론 위험도 따른다. 애초 감축목표가 잘못 설정된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도리어 늘어나도록 허용할 수 있다. 배출권거래제가 변화무쌍한 경제 상황이나 새로운 환경정책에 따른 규제의 ‘중복’에 대응할 유연성도 적어 보인다. 예상하지 못한 장기 경기침체가 생산량 저하로 이어지면서 유럽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향상과는 무관하게 배출권을 얻게 됐다. 배출권의 과도한 무상할당이나 해외 온실가스 감축사업으로부터 배출권을 얻는 상쇄(offset) 등 바로잡아야 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규제가 없는 국가들로 오염 공장이 이전하는 ‘탄소 유출’ 현상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9월 19일 한국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영국산업연합회(CBI), Shell, EDF 관계자과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기업의 입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이지언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은 유럽 시민사회의 도전적 과제로 부상했다.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의 도입은 시장의 효용성에 회의적인 좌파와 기후회의론적 태도의 우파 양쪽으로부터 거부됐다. 도입 후 7년이 지나고 상황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배출권거래제의 부작용을 알리는 동시에 이 제도의 잠재성을 실현시키기 위한 감시 기능의 요구는 점점 커졌다.


런던에 소재한 샌드백(Sandbag)은 유럽 배출권거래제에 관해 활동하는 기후변화 분야의 대표적 단체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녹색연합, 환경정의, 환경운동연합 등 한국 4개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9월 17일부터 나흘간 런던과 브뤼셀을 방문해 샌드백을 비롯한 여러 그룹들과 배출권거래제 현황과 한국에의 시사점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과다 할당된 배출권을 바로 잡겠다"며 창립한 시민단체 '샌드백'


2008년 창립한 샌드백은 적은 인원의 신생 단체지만, 배출권거래제에 관해 시민의 이해와 참여를 고취시키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샌드백의 입장은 실용적이다.


브라이오니 워싱턴 사무국장은 배출권거래제에 “중립적 입장이지만, 이점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샌드백은 배출권의 과다할당 문제에서부터 시작했다. 시장에 나온 값싼 배출권을 시민들과 함께 구매해 폐기하는 캠페인을 벌여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목표 배출량을 초과한 기업들이 헐값에 배출권을 사들이지 못 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샌드백이란 이름도 과다할당 배출권을 의미하는 용어인 ‘뜨거운 공기[핫에어,hot air]’에 열기구의 모래주머니처럼 무게균형을 되찾겠다는 역할을 상징한다.


웹프로그래머인 루이스 크로우 샌드백 기술국장이 9월 17일 한국 활동가들과의 미팅에서 직접 개발한 온라인 배출권거래제 지도와 정보 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지언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는 27개 회원국의 1만2천여개 사업장을 포괄한다. 발전소와 철강회사 등 이들 사업장에서 연간 배출하는 20억 톤의 이산화탄소는 유럽 전체 배출량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샌드백은 사업장의 배출량을 공개하는 동시에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북돋는 활동을 하고 있다. 유럽위원회가 제공하는 단순한 숫자와 표로 이뤄진 배출권거래명부(EUTL)를 활용해 만든 샌드백의 온라인 지도(www.sandbag.org.uk/maps/companymap/)는 기업의 배출량과 초과할당량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방사능 계측기를 모방해 샌드백이 자체 개발한 ‘탄소 가이거(Carbon Geiger)’라는 모바일 어플레이케이션은 신호음과 함께 가까운 탄소 배출 사업장의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복잡한 배출권거래제 문제에 시민들이 쉽게 참여하게 만드는 동시에 샌드백은 정부를 비롯한 정책결정권자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발표해왔다. 영향력 있는 언론들도 호응했다. 영국 <가디언>의 환경전문기자 피오나 하비는 배출권거래제 관련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아주 무미건조하기 십상인 주제인 만큼 맥락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피오나 하비는 “배출량이나 비용과 같은 사실 자료를 충실히 제시하는 동시에 이런 수치들이 일반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샌드백이 개발한 온라인 맵은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초과 할당량 등 정보를 제공한다(클릭하면 확대).



샌드백이 개발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탄소 가이거'는 신호음과 함께 가까운 탄소 사업장의 방향을 알려준다.


유럽 기업들도 배출권거래제에 호의를 나타냈다. 스티븐 알트먼-리처 영국산업연맹(CBI) 선임정책자문은 배출권거래제에 대해 “기술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말하며 “기업들은 이 제도에 대해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국영전력기업인 EDF의 정책국장 알렉산더 마티도 배출권거래제에 대해 배출량의 보고 검증 체계의 수준이 높아졌고 탄소시장이 안정화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물론 긍정적 평가 이면에 에너지 집약산업에 대한 추가 지원이나 해외 상쇄 등 기업 로비에 대해서는 비판적 거리를 둬야할 대목이다. 배출권거래제는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활동에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2015년 배출권거래제 도입하는 한국, 기업 감시운동으로 진화해야


유럽은 경기침체와 배출권 거래가격의 하락에 따른 배출권거래제의 위기를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설정과 시장의 확대를 통해 돌파하려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이런 기대는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시민단체 모두에게서 보여지는 공통된 태도다. 유럽연합은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현재의 20%에서 30%로 상향할 것을 검토 중이다. 한편 호주 등 다른 국가에서 배출권거래제의 확대와 유럽과의 연계를 통해 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한편으로 배출권거래제에 항공분야 등 새로운 산업분야를 추가로 포함시키고, 할당량의 일부를 동결시키는 정부 개입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지난 5월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고 2015년 본격적 도입에 앞서 현재 시행령 마련을 위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 있다. 배출권거래제 시행에 대해 기업들이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태도는 시행 방식을 둘러싼 합리적 토론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도 온실가스 배출 책임의 대부분이 산업계에 있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국내 시민사회도 이를 지적해왔지만, 입장 제시를 넘어선 실제적인 기업 감시운동으로 발전시키진 못 했다. 배출권거래제에 대응하는 전문단체는 당장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기후변화 분야의 시민사회가 역량을 집중해야 할 과제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글은 이지언 서울환경운동연합 기후변화 에너지 담당 활동가가 <함께 사는 길> 2012년 11월호에 '말 많은 배출권거래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옮긴 것으로, 내용 중 일부는 수정됐습니다.


링크

Sandbag http://www.sandbag.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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