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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인도 쿠단쿨람 핵발전소 가동 강행, 주민 저항 거세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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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우려하는 주민들을 강경진압으로 입막음하려는 정부



지난 9월 9일 인도의 최남단 이딘타카라이 지역의 해안에서 인근 주민 수천 명이 아침부터 운집해있었다. 주민들은 이날 정부에 의해 강행되는 쿠단쿨람 핵발전소 가동에 반대하는 행진 시위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인파는 곧 수천에서 3만 명으로 늘어났고 정오를 조금 남겨두고선 핵발전소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시위 행렬은 핵발전소에서 800미터 떨어진 곳에서 경찰 병력과 대치한 채 해변에서 집회는 계속됐다.


집회의 평화로움은 오래 지속되지 못 했다. 다음날 기동타격대를 동원한 경찰은 최루탄을 퍼붓고 곤봉을 휘두르며 수천 명을 강제로 해산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취재기자를 비롯한 다수가 부상을 입었고 주민 수백 명이 연행됐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과정은 외신과 인터넷을 통해 세계로 보도됐다.


경찰의 강경 대응은 결국 참극을 낳았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쿠단쿨람 핵발전소에 장착될 우라늄 연료의 수송을 막으려는 주민들이 철로를 점거하고 나선 9월 11일. 시위 참가자를 향해 경찰이 발포하면서 주민 한 명이 숨졌다.


러시아의 주도로 인도 최남단에 1000메가와트 규모의 원자로 두 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처음 나온 1980년대 후반 이후 쿠단쿨람 핵발전소 반대 운동은 계속 이어졌다. 이 계획은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보류됐다가 1997년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인도 정부는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둘러싼 기본적인 정보조차 공개하길 꺼려왔다. 반핵 단체들은 투쟁을 시작한지 23년 뒤에야 1차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겨우 전달받게 됐다. 방사성 폐기물의 규모와 관리, 냉각수에 의한 해양 영향, 원자로 폐쇄 비용, 피해 보상액 따위에 관한 주요 정보는 여전히 장막에 가려져 있다.


지난해 3월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재앙은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도 핵 사고로 초래될 파괴적 영향을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인도 정부와 핵산업계는 이런 주민들의 우려를 무시해왔다. 7월 쿠단쿨람 핵발전소 제1호기에서 시험 가동이 실시돼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다음 달 인근 주민들은 거리 시위와 단식 농성을 벌이며 쿠단쿨람 핵발전소 가동 중단을 요구했다.


핵발전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12월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몇 주 안에’ 쿠단쿨람 핵발전소를 가동하겠다고 공언해 갈등을 심화시켰다. 이미 인도와 러시아 정부가 2008년 비밀리에 체결한 협약이 핵발전소 사고 피해에 대해 러시아 정부나 기업의 보상 의무를 면제해 반핵운동으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아왔다.


이 협약은 ‘쿠단쿨람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 중에 일어나는 사고로 인한 인도 내부나 외부에 초래될 인명과 재산 피해에 대해서 핵발전소 운영사(인도원자력공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국 핵발전 기술의 안전성을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러시아의 태도에 대해 ‘정말 그렇다면, 사고 피해에 대한 보상을 회피하는 이유가 뭔가’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절차까지 무시한 채 강행된 정부의 핵발전소 가동 추진은 결국 주민들에 대한 무력 탄압으로 이어졌다. 인도 내 모든 핵시설에 대해 후쿠시마 사고 이후 마련된 안전 권고사항을 이행하고 그 이전까지는 쿠단쿨람 핵발전소에 핵연료를 장착하지 않겠다고 원자력규제위원회는 마드라스 고등법원에 확언한 바 있다.


쿠단쿨람 핵발전소 반대를 요구하는 단식농성이 진행되던 지난 5월 15일 인도 첸나이 지역에서 십수 명의 여성들이 핵발전소로 우라늄 연료가 수송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로 위에 드러누워 있다. 사진=IANS



게다가 핵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재난관리와 긴급대피훈련을 시행하지 않은 채 핵연료 장착을 추진한다면 인도 원자력규제위원회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을 위반하는 셈이 된다. 한편 쿠단쿨람 핵발전소 반경 30킬로미터 내에는 15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해, 만약 대형 사고가 나면 대피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인도반핵민중행동(PMANE)를 비롯한 쿠단쿨람 핵발전소의 반대 그룹은 핵 문제가 델리에 있는 소수의 관료나 전문가에 갇혀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가오는 의회 선거를 앞두고 핵발전소를 주요 이슈로 토론하자는 주장이다. 국민회의당이나 인도인민당 등 어떤 정당이라도 만약 인도의 핵발전 확대에 대해 국민 다수를 설득한다면 당장 반핵운동을 중단하겠다는 강수를 둔 것이다.


인도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핵발전소 벨트의 확장을 더 이상은 내버려두진 않겠다는 절박함에서다. 인도 전역에 핵발전소가 들어선다면 방사능 오염으로 내륙과 해양 생태계가 위기에 처해 식량 주권은 더 취약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유아의 42%가 영양결핍 상태인 인도에서 방사능 오염으로 저렴하고도 뛰어난 수산물이 줄어들면 소수의 관료나 부유층만 건강권을 보장받을 것이란 지적이다.


또 핵발전소를 둘러싼 국가적 차원의 토론을 위해서는 정보 공개가 전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영향평가서, 부지평가보고서, 안전성분석보고서, 비상대응계획, 피해보상체계를 비롯한 올바른 정보가 일반에게 공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 정부와 원자력공사가 정보 공개를 계속 회피하면서, 결국 핵발전소 확대 정책이 전력 수요가 아닌 핵무기 생산을 위한 수단이라는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이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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