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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3·11 이후 ‘원자력 안전신화’와 맞서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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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한·일 탈핵교육 교류 워크샵 열려

“현실을 직시하며 배우는 것은 희망과 연결돼있다”


“한 학생이 수업이 끝나고 ‘우리들은 앞으로 긴 시간동안 방사선과 맞서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라고 말하더군요. 지금도 고농도의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제염작업을 한 흙을 처리할 장소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 후쿠시마현의 한 중학교에서 온 교사가 말했다. 사사키 키요시 씨는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의 제6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방사선 수업을 진행해왔다. 그는 “우리 학교는 핵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아 창문을 닫고 생활하고, 아이들도 친구들을 잘 만나지 못 합니다”고 말했다.


5월 25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워크샵에서 사사키 키요시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의 제6중학교 교사가 방사선 수업 사례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용철


이어서 그는 “이런 가운데 학생들에게 방사능 교육을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광범위한 지역이 방사능으로 덮인 재앙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어떻게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르칠 수 있을까. 5월 25일(토) 한일탈핵교육 교류회 준비모임이 주최한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사사키 키요시 씨를 비롯한 5명의 교사와 교육연구자들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배우는 것은 희망과 연결된다”면서, “학생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문을 닫은 교실… "아이들에게 위험 소통 능력 가르쳐야"


후쿠시마에서는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2011년을 ‘방사선교육원년’으로 정하고 학생 주도의 방사선 교육이 실시됐다. 고리야마시 중학교 교사들도 ‘방사선교육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함께 방사선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사키 키요시 씨는 “지진이 일어나고 8개월 뒤에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방사능 문제가 발생했지만 국가에서는 어떤 지침도 마련해주지 않았죠. 그래서 학생들이 직접 방사능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환경을 조사하고 위험 소통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학생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표토를 제거하면서 방사선을 측정해 효과를 확인해보기도 했다. 방사능의 인체 피해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서로 생각을 공유해가며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년 뒤에는 방사선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는 네 명으로 늘었고 공개 수업 등을 진행하는 등 방사선 교육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왔다. 양호 교사에게도 아이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는 것의 중요성을 수업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에 있는 이시가미 제1소학교 교사 시라키 츠구오 씨는 가혹한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꼈던 2년 전을 회상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지원해주는 자세를 갖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어른들이었습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의 이시가미 제1소학교 교사 시라키 츠구오가 5월 25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워크샵에서 지난 2년간의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씩씩한 모습을 잃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말하면서 애써 울음을 참고 있다. 사진=이지언


그가 있는 학교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2011년 4월 개학식을 맞았다. 그는 “어떤 아이는 마스크를 쓴 채로, 또 다른 아이는 마스크를 벗은 채로 교가를 불렀습니다. 씩씩하게 교가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고 소감을 전하면서, “현실을 직시하며 배우는 것은 희망과 연결돼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의 유대감 속에서 희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 발생 1년 뒤인 2012년 3월 44명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졸업했다고 전했다.


아동 인권 관점에서 방사능의 인체 영향 등 다룬 교재 필요


아이들을 단순한 방사능의 ‘피해자’가 아닌 피폭 저감을 위한 실천이나 핵에너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중요한 ‘행위자’로서 교육해야 한다는 시각은 최근 더욱 확산됐다. 일본 정부도 2011년 10월 초·중·고등학생용 방사선 관련 읽기용 부교재를 제작해 배포했다. 정부는 부교재 제작의 목적으로 “지금의 곤란한 사태를 극복하고 일본의 장래를 책임져야 할 아이들에게 초·중·고 각 단계에 맞는 방사선에 대해 배우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교재의 내용은 방사선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나 측정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은경 박사(와세다대 교육학)는 이 교재와 관련해 “아이들이 가장 고민하는 방사선의 영향이나 피해 지역의 상황에 대해선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응해 지난해 4월 후쿠시마현 교직원 노동조합에서는 방사능의 위협, 피폭 저감, 인권 보호와 차별 극복 그리고 ‘원자력=핵’ 현황 등 4가지 내용을 담은 ‘후쿠시마현 방사선 교육 방향’을 발표하기도 했다.


후쿠시마 지역의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지진과 쓰나미 피해에 더해 피폭의 공포, 장래의 건강에 대한 불안, 가족과 주민 사이의 단절, 차별에 대한 불안과 같은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3·11 이후 새롭게 재구성되는 현재를 살아가는 당사자로서 아이들을 존중하고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안은경 박사는 “사회와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신 스스로를 성장시키며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이를 지역과 학교에서 실현시키는 과제, 바로 이것이 3·11이 던져준 또 하나의 과제”라고 말했다.


5월 25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한일탈핵교육 교류회 준비모임 주최로 열린 워크숍의 참가자들(클릭하면 확대). 사진=이용철


글=이지언


이 글은 <탈핵신문> 2013년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다운로드 | 워크샵 발표자료(PDF, 3.87MB)

Workshop-25May201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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