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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칼럼

교통혼잡으로 사회 병 드는데 기업 눈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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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동안 동결됐던 교통유발부담금을 올리겠다고 정부가 얼마 전 인상안을 마련했다. 교통 혼잡의 원인이 되는 시설물의 소유자에게 매년 부과하는 교통유발부담금은 1990년 시행 이후 한 차례도 인상되지 않아 실효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1평방미터당 350원 하는 단위부담금을 내년부터 올려 2020년까지 최대 1,000원으로 단계적 인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도시교통정비 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9일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안은 기업의 눈치만 살핀 지나치게 느슨한 안이다. 교통유발부담의 조속한 인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매년 인상안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기업의 경영난을 덜어준다는 명목에서였다. 지난해도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3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을 한 차례 더 미뤘던 근거는 바로 ‘기업의 부담’이었다.


광화문 세종로. 사진=이지언/서울환경운동연합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도 더 이상 이를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올해 가까스로 인상안을 마련했다. 국토교통부는 백화점을 비롯한 업체들과도 협의를 거쳤다고 했지만, 부담금 인상에 반대하는 업계의 볼멘소리는 여전하다. 서울시의 경우 3만 평방미터 초과 대형시설물이 전체 발생 교통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에 달하지만, 교통혼잡을 일으키는 원인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표하는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오히려 대형마트 등으로부터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이 생활필수품의 가격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윽박만을 들을 수 있었다.


교통유발부담금의 단계적 인상을 2020년까지 늦출 이유가 없다. 명확한 근거 없이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을 계속 연기해오면서 우리 사회는 이미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지난 20년 동안 교통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6배 가까이 늘었다. 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증가된 교통혼잡비용을 반영해 교통유발부담금을 현실화할 경우 단위부담금은 2,000원으로 올라야 한다. 그나마 이번 인상안에서 단위부담금이 1,000원으로 정해진 것은 교통혼잡비용은 제외하고 물가상승분만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교통량 감축을 위한 노력이 인정되면 교통유발부담금을 경감해 주는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도 이미 병행 시행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업체들로서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에 반대할 명분은 더 이상 남지 않는다. 이 제도를 통해 시설물은 교통유발부담금을 최대 100%까지 감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의 경우, 2012년 기준 교통유발부담금 징수액 882억 원 중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에 참여한 2700여 개의 대상 시설물이 총 146억 원을 감면 받았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이 하루 수천에서 수만 대의 승용차 고객을 끌어들여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그로 인한 극심한 교통혼잡에 대한 책임은 가볍게 해줬던 교통유발부담금을 내년부터라도 즉각 인상해서 ‘원인자 부담 원칙’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바로 살려야 한다. 


이지언

이 글은 <내일신문> 9월25일자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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