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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칼럼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대기업들, 정작 교통혼잡은 외면?

사회가 병들어도 기업 부담은 회피?

교통유발부담금 즉각 인상해야


어느 주말에 차를 얻어 타고 옷을 사러 명동에 나간 적이 있다. 나로선 차도 밀리고 주차요금도 비싸게 나올 것 같아 대중교통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승용차를 타게 됐다. 백화점을 비롯한 각종 쇼핑시설이 즐비하게 들어선 명동의 주변 도로는 예상대로 차량들로 몹시 붐볐다. 목적지인 백화점 주차장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려는 차량들로 인해 가뜩이나 혼잡한 도로에서 두 개의 차선이 거의 마비 상태였다. 이 많은 차량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지만, 쉴 새 없이 경광봉을 흔들며 차량 행렬을 안내하는 주차 요원은 늘 벌어지는 풍경인 마냥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지상에서 가까운 주차장의 경우 여지없이 ‘만차’ 상태라서 내가 탄 차량은 가파른 나선형 진입로를 따라 더 깊은 지하층으로 어지러이 내려갔다. 이날 쇼핑은 피곤했다.


도로는 공유재인가. 보행자, 장애인, 어린이, 자전거에 각박하기만 한 우리의 도로 사정을 염두에 두고 던지는 질문만은 아니다. 인근 도로에 교통 혼잡을 가중시키면서 승용차 고객을 마구 끌어들이는 대형 시설물을 볼 때 느끼는 못마땅함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로 대표되는 대규모 시설물은 주변 건물의 주차장까지 빌려 고객 주차공간을 최대한 늘리면서도 온갖 할인 혜택으로 주차요금은 무료에 가깝게 감면해준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라. 대표적인 복합상업시설인 영등포 타임스퀘어나 강남 센트럴시티의 주차장을 이용할 경우 요금 할인을 받는 방법을 친절하게 ‘총정리’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백화점 등은 주변 도로야 막히든 말든 자신의 고객에게 승용차 이용에 따른 비용과 불편은 최소화해주며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대형 업체들이 도로 일부를 마치 사유재처럼 부리면서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을까.


서울에서 3만 평방미터 초과 대형시설물이 전체 발생 교통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에 달한다. 교통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극심하게 늘었지만, 이와 관련해 원인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표시하는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사진은 롯데백화점이 보이는 2002년 명동의 야경. 사진=한국정책방송원 자료


대형 시설물을 교통 혼잡의 원인자로 보고 시설물 소유자로부터 부담금을 징수하는 교통유발부담금 제도가 1990년 도입돼 시행 중이다.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연면적 1천 평방미터 이상의 시설물로부터 부담금을 징수해 대중교통 확충과 교통수요관리 대책 등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서울시의 경우, 3만 평방미터 초과 대형시설물이 전체 발생 교통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에 달한다. 2009년 서울시가 2천3백여 개 시설물로부터 징수한 교통유발부담금은 총 804억 원에 이른다. 다만 이는 교통혼잡비용 7조5천억 원 대비 1%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엔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에서 백화점을 비롯한 대형 상업시설의 입점으로 인근 주민들의 고통이 커지면서 교통유발부담금 징수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부산 기장의 ‘부산 프리미엄 아울렛’이나 제주시 연동 ‘신라면세점’ 모두 주변 도로에 심각한 교통 정체의 원인으로 작용하면서도 교통유발부담금 납부 등 사회적 책임에선 벗어나 있다. 그럼 이들 업체에게 교통유발부담금을 물게 하면 상황은 나아질까.


안타깝게도 교통유발부담금은 시행 이후 단 한 차례도 인상되지 않아 23년 전과 동일한 단위부담금을 적용 받고 있다. 매년 매출 증가를 기록하는 기업들로서는 계속 동결된 교통유발부담금을 ‘부담’으로 느낄 리 없다. 그나마 정부는 교통유발부담금을 올리겠다고 얼마 전 인상안을 마련했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1평방미터당 350원 하는 단위부담금을 내년부터 올려 2020년까지 최대 1,000원으로 단계적 인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도시교통정비 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9월 9일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안은 기업의 눈치만 살핀 지나치게 느슨한 안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교통유발부담금의 조속한 인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매년 인상안 마련을 연기했던 것은 업체들의 경영난을 덜어준다는 명목에서였다.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3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을 한 차례 더 미뤘던 근거로 ‘기업의 부담’을 언급한 대목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도 더 이상 이를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올해 가까스로 인상안을 마련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백화점을 비롯한 업체들과도 협의를 거쳤다고 했지만, 부담금 인상에 반대하는 업계의 볼멘소리는 여전했다. ‘손님 줄었는데 교통유발부담금 폭탄’이라는 제목의 8월16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경기 침체에 따른 매출 감소와 출점(出店) 규제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데 교통유발부담금까지 크게 올라 경영에 부담이 될 것 같다”는 한 대형마트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반대로 교통 혼잡을 일으키는 원인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표시하는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오히려 대형마트 등으로부터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이 생활필수품의 가격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체인스토어협회)될 수밖에 없다는 윽박만이 들릴 뿐이다. 전국에서 교통유발부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시설물은 영등포 타임스퀘어로 2011년 10억1149만원을 냈다. 이 건물은 그 해 1조5000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교통유발부담금의 단계적 인상을 2020년까지 늦출 이유가 있을까. 명확한 근거 없이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을 계속 회피하면서 우리 사회는 그만큼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런던이나 파리, 동경 등 다른 국가의 수도와 비교했을 때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단연 높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대기오염에 의한 한국의 사망자 수는 10만 명당 24명으로 비교대상 12개 국가 중에서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다. 게다가 지난 20년 동안 교통 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6배 가까이 늘었다.


교통연구원은 증가된 교통혼잡비용을 반영해 교통유발부담금을 현실화할 경우 단위부담금은 최소 2,000원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추산했다. 그나마 이번 인상안에서 단위부담금이 1,000원으로 정해진 것은 교통혼잡비용은 제외한 물가상승분만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인상 기간까지 느슨하게 설정한다면 교통 혼잡에 대한 업체의 책임을 사회로 전가시키는 시간만 더 벌어주겠다는 셈이다.


2011년 서울시의 버스요금 인상안 발표와 관련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20년째 인상되지 않은 채 제자리인 교통유발부담금에 대해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자료 사진)


교통량 감축을 위한 노력이 인정되면 교통유발부담금을 경감해 주는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도 이미 병행 시행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업체들로서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에 반대할 명분은 더 이상 남지 않는다. 이 제도를 통해 시설물은 교통유발부담금을 최대 100%까지 감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의 경우, 2012년 기준 교통유발부담금 징수액 882억 원 중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에 참여한 2700여 개의 대상 시설물이 총 146억 원을 감면 받았다.


정부는 현재의 교통체계를 대중교통과 자전거·보행과 같은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감형 교통체계 중심으로 개편해 교통부문의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34.3%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얼마 전 발표했다. 이런 식의 ‘친환경 교통’ 대책이 나올 때마다 교통수요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가장 우선순위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시행하는 교통수요관리 정책이란 ‘승용차요일제’나 ‘기업체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과 같이 개인이나 기업의 자율적 노력에만 기대는 측면이 크다. 반대로 교통혼잡 완화의 시행 효과는 크지만 기업 등의 반발이 예상되는 혼잡통행료나 교통유발부담금과 같은 제도에는 정부나 지자체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걷고 싶은 거리’와 같은 슬로건을 내걸며 보행자‧자전거 등 친환경 교통체계를 만들겠다고 선언하지만, 도시의 과밀한 차량 통행량을 줄이지 않는 한 도로가 보행로나 자전거도로에 기존의 자리를 내어줄 것 같지는 않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이 하루 수천에서 수만 대의 승용차 고객을 끌어들여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그로 인한 극심한 교통 혼잡에 대한 책임은 가볍게 해줬던 교통유발부담금을 내년부터라도 즉각 인상해서 ‘원인자 부담 원칙’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바로 살려야 한다.


이지언


이 글은 <함께사는길> 2013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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