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은 지난 3월 25일 58억달러(약 8조 5000억 원)를 들여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기반 일관제철소를 짓겠다는 투자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 기아의 최대 시장인 미국 내 증가하는 판매량에 대응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을 피해 자동차 주요 소재인 철강을 현지 생산해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포스코도 미국 제철소 사업 투자에 협력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철강 산업의 경쟁력은 고부가가치 친환경 철강재 생산에 달렸다. 2023년 4월 26일 현대제철이 발표한 ‘탄소중립 로드맵’이 2주년을 맞았다. 국내 2위 철강사인 현대제철의 탄소중립 이행 현황과 과제를 진단해본다.
현대제철 '탄소중립 로드맵' 발표 2주년, 전기로 줄이고 고로 가동 늘리며 탄소배출량 증가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린다. 건설, 기계, 전자제품과 같은 다양한 산업에서 필수 소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풍력과 전기차를 비롯한 미래 핵심 산업에서 철강은 중요한 자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저탄소 철강은 글로벌 시장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2024년 5월 기준 저탄소 철강의 장기 구매계약은 112건으로 집계돼, 100건을 돌파했다. 저탄소 철강의 최대 고객은 자동차 부문이다. 집계된 저탄소 철강 구매 건수 중 39%가 메르세데스 벤츠, 제너럴모터스, BMW, 볼보 등 자동차 제작사에 해당했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사 'Kirchhoff'도 포함됐는데, 현대제철이 지난해 저탄소 강판 판매 협약을 체결한 기업이다.
국내 2위 철강사인 현대제철은 저탄소 철강 생산에서 유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선 최대 고객사인 현대차 기아가 저탄소 철강을 구매할 잠재력이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45년까지 자동차의 공급, 생산, 사용, 물류, 폐기 등 가치사슬 전 단계의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했다. 특히, 기아는 "2030년부터 저탄소 철강을 양산차에 단계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자동차 강판에 주력하며 고객사를 다양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제철의 글로벌 자동차 대상 판매 비중은 2024년 현재 19%인데, 2030년까지 30%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자동차 강판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과 같은 탄소 규제 대응이 중요하다.
고로 많이 가동할수록 탄소 배출량 증가하는데...
당초 전기로 철강사로 출범했던 현대제철은 자동차 강판을 생산하기 위해 2010년 당진에서 고로 기반 일관제철소 가동을 시작했다. 쇳물부터 자동차강판까지 아우르는 현대자동차의 수직계열화 구상에 따른 것이다. 2013년 당진제철 3고로를 가동하며 현대제철은 연간 1200만 톤 고로 조강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기존 전기로 1200만 톤에 더해 총 2400만 톤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됐다.
고로 일관제철소는 자동차 강판과 같은 고강도 고부가 철강재 생산이 가능하지만,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은 높다. 고로 공정을 통해 철강 1톤을 생산하면 이산화탄소 2톤이 배출된다. 전기로에 비해 4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고로를 많이 가동할수록 탄소 배출량은 증가하고 저탄소 철강 생산에 불리해진다.
고로를 가동하고 10년 뒤 현대제철은 탄소중립 선언에 동참하며 새로운 도전을 맞았다. 2021년 2월, 현대제철을 비롯한 6개 철강사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공동 선언했다. 현대제철의 탄소중립 전략은 2년 뒤 구체화됐다. 2023년 4월 현대제철은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의 주된 내용은 2030년까지 중기 전략에 맞춰져 있다. 현대제철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12%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핵심적 역할은 전기로가 맡게 된다. 우선 기존 전기로를 활용해 철스크랩과 직접환원철과 같은 저탄소 원료를 녹이고 이를 고로 공정에 합탕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제철은 1500억 원을 투자해 올 상반기 안에 당진제철에 기존 전기로를 재가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현대제철은 2030년까지 신규 전기로를 건설해 연간 100만 톤의 저탄소 철강을 추가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로드맵 발표와 함께 현대제철은 저탄소제품 브랜드인 '하이에코스틸'을 발표하며 친환경 이미지 구축에 힘쓰고 있다.
현대제철의 탄소중립 선언, 이행 중간 성적은 어떨까. 현대제철이 '통합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자료는 2023년 데이터가 가장 최신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탄소중립 공동 선언에 참여한 2021년부터의 3년간 실적을 통해 추이를 살펴볼 수 있다.
우선 2023년 기준 현대제철은 2927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탄소중립 로드맵 기준연도 배출량에 비해 3.3% 줄어든 수준이지만, 이는 현대제철이 자체적으로 수립한 환경목표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제철은 2023년 온실가스 배출 목표로 2916만 톤을 상정했다. 현대제철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1년부터 감축이 아닌 증가하며 '역주행'을 나타냈다. 현대제철은 국내 5위의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으로, 국가 탄소배출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탄소배출량 증가의 주된 요인은 고로 가동률 상승에 있다. 2021년 이후 현대제철의 조강 생산량은 둔화 추세였지만, 전기로 생산량은 줄은 대신 고로 생산량은 늘어났다. 고로 일관제철에 의한 조강 생산량은 2021년 1190만 톤에서 2023년 1240만 톤으로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기로 생산량은 739만 톤에서 656만 톤으로 줄었다. 고로 생산 비율은 61.7%에서 65.4%로 올라갔다.
현대제철이 탄소중립의 핵심 전략으로 전기로 활용 확대를 제시했지만, 지난 3년간 전기로는 적게 돌리고 탄소배출량이 높은 고로 가동률을 올렸던 셈이다.
석탄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고로 가동이 증가하자 탄소배출뿐 아니라 대기오염물질도 더 많이 배출하게 됐다. 현대제철이 배출한 대기오염물질은 2021년 1만3392톤에서 2023년 1만4852톤으로 증가했다. 질소산화물은 감소를 보였지만, 황산화물 배출량은 늘었기 때문이다. 황산화물은 황을 함유한 석탄을 태울 때 주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로,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물질이다.
2030년까지 당진제철에 신규 전기로 건설?
고로 가동과 탄소배출량은 비례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풀지 않는다면 철강사의 탄소중립은 구호에 그칠 수 있다. 고로 대신 전기로 가동을 늘리고 스크랩이나 직접환원철과 같은 저탄소 연료 투입량을 늘리는 효과적 방안은 현대제철이 스스로 제시한 전략이다.
2030년까지 당진제철에 신규 전기로를 짓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계획과 일정은 2년간 오리무중이다. 국내 탄소중립 이행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에 친환경 제철소를 건설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내아주에 연산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기반 제철소를 건설해 2029년부터 상업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58억 달러(약 8조 5000억 원)을 투자해 직접환원철 연료설비부터 전기로와 압연을 아우르는 일관제철소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자동차사의 저탄소 철강 구매에 대응하기 위해 고로 대비 탄소배출량을 60~70% 저감한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제철이 "미국 제철소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시험 무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탄소 철강 생산이 해외에서라도 본격화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현대제철의 조강 생산 설비는 국내에 집중되어 있다. 국내 2400만 톤 생산 설비의 전환 없이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력 다소비 업종이면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외면하는 문제도 현대제철이 표방하는 친환경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현대제철은 2024년 6904GWh의 전력을 소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3위의 다소비 기업으로 나타났다.
5대 전력 다소비 기업 중 현대제철은 유일하게 RE100에 가입하지 않았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 공급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RE100에 가입해 2050년까지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자동차도 2022년 RE100에 가입했다.
현대제철은 최대 전기로 철강사로서 전력소비량이 클 수밖에 없다. 현대제철은 연간 전기요금으로 1조 원 수준을 납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금 인상 부담을 호소해왔던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에 8000억 원 투자해 LNG 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LNG로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게 경제적이고 전력망을 통해 구입하는 전기보다 탄소배출이 적어 탄소중립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값싼 화석연료 전력에만 의존하며 현대제철이 청정 전력 조달에 무임승차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LNG발전소 가동은 탄소중립이 아닌 온실가스 배출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제 환경단체 액션스픽스라우더(ASL)는 현대제철이 LNG 발전을 가동하게 되면 2030년 기준 41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RE100에 가입한 현대자동차와 달리 현대제철은 재생에너지 사용을 외면해왔다. 현대제철은 통합보고서에서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에서 현대제철은 2022년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0'으로 보고해 주요 철강사 중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제철 측은 당진제철 LNG발전을 추진하면서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전력 공급원으로 검토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지언 기후넥서스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