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7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얽힌 공모 문화(Culture of Complicity Tied to Stricken Nuclear Plant)'라는 제목의 헤드라인 기사(아래 링크)는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한 느슨한 대응이 위기를 키웠고 여기에 동경전력과 정치인 사이의 유착관계가 숨겨져 있었다는 기존의 보도에서 더 나아가 일본의 핵심 원자력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보안원 역시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음을 밝혔다. 아래에 기사의 일부를 옮겼다. <에너지탐정>

제너럴일렉트릭사에서 원전 조사관으로 일했던 일본계 미국인 케이 수가오카는 지난 2000년 후쿠시마 제1원전의 증기건조기에 금이 생긴 것을 확인했으나 업체가 문제를 숨기는 것 같아 일본의 원자력 규제당국에 이를 알렸다. 이 사실이 공개됐다면, 발전소 운영사인 동경전력은 수리에 많은 비용을 들여야 했을 것이다.

원전 조사관으로 일했던 케이 수가오카씨는 11년 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일어난 규제 관련 문제를 증언했다. 한 명의 조사관에 의해서 동경전력의 경영진이 사실 은폐에 공모했음이 밝혀졌다. Jim Wilson/The New York Times

하지만 실제 일어난 일은 그렇지 않았다. 그 대신 고질적이라고 비판 받아온 일본 원자력 업체들과 규제기관 그리고 정치인 사이의 유착 관계가 다시 나타났다.

내부 고발자의 보호를 규정하는 새로운 법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규제당국인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수가오카의 신분을 동경전력에 폭로했고, 그의 이름은 원자력업계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조사관을 후쿠시마 원전으로 곧장 파견하는 대신 동경전력에 지시를 내려 원자로를 자체적으로 검사하라고 했다. 게다가 차후 조사에서 궁극적으로 밝혀졌듯, 동경전력의 경영진들은 다른 더 심각한 문제도 은폐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테면 원자로 노심을 덮는 격벽(shroud)에 틈새가 생겼음에도 원자력안전보안원은 2년 동안이나 원자로 운영을 계속하도록 허가했다.

안전 문제나 느슨한 규제가 체르노빌 이후 최악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어느 정도의 원인을 제공했는지에 대해 조사관들이 판단하기 위해선 수개월이나 수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원전에서 발생되는 문제와 방사선 공포가 지속되면서, 그동안의 유착 관행이 3월11일 일어난 재해로부터 원전을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관점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가장 노후한 원자로의 10년 가동 연장은 원자력 확대에만 혈안이 돼있던 정치인, 관료, 산업 경영진들에 의해 규제 체계가 얼마나 느슨해져 있었는지를 보여줬다. 안전성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규제 당국은 쓰나미가 밀려오기 몇주 전에 40년으로 정해진 원자로의 법적 연한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해 동경전력은 핵심 장비에 대해 적절한 점검을 하지 않았다고 차후 시인했다.

과거의 안전 위반사례에 대해 가벼운 처벌이 내려졌던 것은 주요 원자력 관계자들이 안전성 제고보다는 이익 보호에만 몰두했음을 보여준다. 2002년 동경전력의 은폐 사실이 공개되자, 회장과 사장은 사임하고 회사의 자문 역할만을 맡기로 했다. 다른 운영진들은 좌천됐지만, 이후 동경전력의 협력 업체로 직장을 옮겼다. 은폐에 관여했던 더 많은 이들에 대해선 가벼운 급여삭감이 내려졌다. 임시 가동중단과 보수 이후, 동경전력은 후쿠시마 원전의 가동을 재개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자택에 있는 수가오카 씨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원자력을 지지하지만, 온전한 투명성을 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까지만 해도 안전성보다는 이익 극대화에 더 관심을 쏟는 산업 부문에 대해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조차 정치적 자살로 여겨졌었다고 쿠수오 오시마 민주당 의원이 말했다. 그는 원자력 산업에 대해 오랫동안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던 소수의 국회의원 중 한 명이다.

"모두가 [원자력 문제에 대해] 성역이라고 여겨서, 아무도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오시마 의원은 말했다. 그는 원자력 관련 단체가 아닌 일본의 최대 불교 평신도 모임 중 하나인 리쇼고세카이의 후원을 받기 때문에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모든 게 돈과 관련됐죠."

왼쪽부터 이치로 타케쿠로(일본 국제원자력개발 사장), 타로 코노(자민당 국회의원), 이키히로 오하타(경제무역성 장관). 국제원자력개발은 원자력 수출 촉진을 위해 일본의 13개 전력사들이 참여한 컨소시엄. 이치로 타케쿠로는 동경전력 출신이다. 이키히로 오하타 장관은 히타치의 원자력 부서에서 기술자로 일했고 민주당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원자력 옹호자로 알려져있다. 타로 코노 의원은 민주당과 자민당 모두가 발전소 업체에 사로잡혀 있다며 비판하는 개혁성향의 인물로 알려졌다.

원자력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을 맡은 원자력산업보안원은 일본의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는데, 바로 원자력 이용을 촉구하는 역할을 맡은 행정부서다. 오랫동안 공무원들은 원자력 감독 기관과 촉진 부서 사이에서 자주 자리를 옮기면서, 이 둘 사이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졌다.

영향력 있는 관료들은 원자력 산업에 옹호적이기 십상인데, 이는 '아마쿠다리(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의미로 관료가 퇴직 후 관련 민간기업 등에 좋은 조건으로 재취업하는 일본의 관행을 가리킴)'라는 관행 때문이다. 일본의 주요 산업 분야에서 일반화된 관행인 아마쿠다리는 한때 자신이 한때 감독하던 기업의 편한 직업에 고위 관료들이 재취업하도록 허용해왔다.

1959년부터 2010년까지 네 명의 전직 경제산업성 고위 관료가 동경전력의 부사장을 역임했다. 한 명이 동경전력에서 은퇴하게 되면, 후임이 경제산업성의 "예약석"으로 알려진 업체의 부사장직을 인수인계했다.

원자력 산업계에 도전하면 외면 받는 것은 학계도 마찬가지다. 3월11일 이후 원자력계의 유착 문제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면서, 일본 언론은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학자들이 받았던 차별 대우를 다뤄왔다.

일본에선, 원자력에 대한 연구는 정부나 원자력 관련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는다. 이런 방식에 회의를 품은 학자들은 연구를 수행할 수조차 없다. 특히 교토대학의 여섯 명의 학자들은 수십년 동안 조교수 자리에 머물러있다.

원자로 전문가인 히로아키 코이데는 그 중 한 명으로서, 교토대학에서 37년간 조교수에 해당하는 직책을 맡아왔다. 젊은 시절 그는 연구비를 신청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저 같은 아웃사이더에겐 연구비가 지급되지 않죠."

인용
"원자력학자와 관련 부처는 전력회사와 결부돼 있다. 일본 정부 산하의 원자력안전위원회에는 원자력학자들이 모여 있다. 위원장은 마다라메 하루키 도쿄대 교수다. 대학으로 옮기기 전 그는 도시바의 원자력부 사원이었다. 원자력안전보안원은 경제산업성에 속해 있다. 데라사카 노부아키 원장은 관료다. 도쿄전력에 경제산업성 차관이 낙하산으로 내려온다. 원자력발전소를 컨트롤하는 2개의 조직은 원전이 안전하다고 선전하는 조직이었다. 마다라메는 원전 가동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전력회사 측의 증인으로 활약해온 인물이다. 이번 사고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사고 당일 모이지도 않았다. 또한 일주일 이상 지난 후에야 사고 현장에 직원을 파견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 ‘이유있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022018455&code=990000

링크
Culture of Complicity Tied to Stricken Nuclear Plant

http://www.nytimes.com/2011/04/27/world/asia/27collusion.html

시사인(186호) “우리는 패밀리” 뿌리깊은 ‘원자력 마피아’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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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언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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