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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인간은 핵에너지의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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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위기의 교훈: 인간은 핵에너지의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위기의 규모
 
지난 3월12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첫 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언론에서는 이미 ‘체르노빌’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25년 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최악의 체르노빌 참사 이후 방사성물질과 관련한 사고가 있을 경우에 즉각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원자력사고등급(INES)이 만들어졌다. 0~7단계 중 가장 심각한 7등급은 ‘중대한 사고’로 분류되며 체르노빌이 유일했다. 후쿠시마 원전 위기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반경 20킬로미터까지를 출입금지 지역으로 지정함에 따라 4월말 원전 인근에 소재한 후타바정은 텅 비게 됐다. 도로 표지판에는 원자력은 밝은 미래의 에너지라고 적혀 있다. 사진=아사히신문 자료사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이미 체르노빌의 규모를 넘어섰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 됐다. 최소한 방출된 방사성물질의 양으로 계산해도 그렇다. 보수적인 프랑스 방사능보호핵안전연구소(IRSN)의 발표에 따르면 3월12일부터 22일까지 후쿠시마 원전에서 500,000테라베크렐(TBq) 요오드-131이 방출됐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1기의 원전 사고에 해당하는 체르노빌과 달리 후쿠시마의 경우 3기의 원전 각각이 7등급에 해당하는 ‘세 개의 중대한 사고’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플루토늄을 비롯한 위험한 방사성물질이 여전히 계속 방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원전 사고로 인한 건강영향: 피폭과 정신적 고통
 
3월23일 강원도에서 방사성 제논이 검출된 데 이어 일주일 뒤에는 후쿠시마로부터 날아온 방사성 요오드가 전국에 걸쳐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방사성물질 오염 확산을 둘러싼 우려가 현실화된 순간이다.
 
다만 앞서 확인된 방사성 제논을 제외하면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방사성물질이 한국에 도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게다가 원자력안전기술원은 23일부터 강원도 방사능측정소에서 제논-133을 검출을 확인했지만 이를 나흘 뒤에야 공개했다.

공기뿐 아니라 빗물에서도 검출된 방사성물질에 대해 정부와 대다수 전문가들은 “극미량”이라고 강조하면서 안전을 강조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일본에서처럼 국내도 이제 야채나 우유와 같은 먹을거리의 방사능 오염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아직 국내로의 방사성물질 유입이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하미나 단국대 의과대 교수는 28일 열린 ‘원전사고와 시민건강’ 토론회에서 일본 핵폭탄 피해자 사례를 통해 “저선량에 노출되더라도 피폭량에 비례해 백혈병과 고형암 발병률이 높아졌다”며 방사선에 의한 노출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3월24일에 발생한 후쿠시마 농부의 자살 사건은 우리가 원전사고와 관련해 놓쳐선 안 될 중요한 문제를 시사한다. 방사능에 의한 직접적인 건강피해를 넘어 사고 지역의 피해자들이 겪을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이 그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의 영향에서도 확인된다. 체르노빌 사고 20주기를 맞아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한 국제기구가 2005년 공동으로 펴낸 보고서 <체르노빌의 유산: 건강, 환경 그리고 사회경제적 영향>에서는 구소련 연방 지역에서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폭 문제보다 정신적 충격, 가난, 삶의 질 저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전하고 있다.
 
보고서는 “사고와 그 이후에 일어나는 심리적 고통은 개인과 공동체의 습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피해 지역의 주민들은 건강이나 삶의 질에 대한 자기평가에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감정을 심하게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 원전과 안전대책의 허구성

후쿠시마 위기에서 보여지듯 대규모 원전 사고의 피해는 너무 광범위해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일본 대지진 이후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해온 한국의 사정은 나을까?

10월20일 후쿠시마현 다테에 거주하는 주민인 시시도 다카코(39)씨가 문부과학성 앞에서 원전 사고로 자발적 피난민들이 처한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Naoko Kawamura/아사히신문


에너지정의행동에 따르면 국내 4개 지역의 원전 반경 30킬로미터 내에는 37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특히 82만 명의 울산시민의 경우 남쪽에 고리원전과 북쪽에 월성원전 등 현재 9기의 원전에 둘러싸여 있다. 과연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이렇게 많은 인구를 대피시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지금 이대로 정부가 원전 확대정책을 고수한다면 한국은 면적당 원전설비 용량이 가장 많은 ‘원전 밀집도’ 1위의 국가가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위험사회’로 치닫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강원도 삼척을 비롯한 신규 원전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 수명연장에 의한 노후한 원전의 위험성 증가, 포화상태에 이르는 핵폐기물 등 후쿠시마 위기는 한국에 내재된 핵물질의 위험성을 돌아보게 했다. 과연 이런 온갖 사회적 비용이 원전이나 핵에너지의 ‘값싼 비용’에 반영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일본 현지에서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시민들과 NGO의 활동이 활발하다. 지난 28일 노동후생성과의 면담을 신청한 일본의 주민들은 원전 주변 20-30킬로미터 내 주민들에게 내린 “자발적 대피” 권고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항변했다. 주민들이 받은 누적 피폭량을 계산해 정기적으로 공개하라는 요구도 제기됐다. 세계적 환경단체 그린피스도 방사선 전문팀을 파견해 사고의 실제적 영향을 모니터하고 있다.

방사선은 긴 반감기의 특징에 의해 장기간의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만큼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 피해는 국경을 초월하고 어린이나 임산부에게 더 차별적인 영향을 남긴다. 일본과 한국 정부가 보여준 허술한 대처는 결국 핵에너지가 근본적으로 얼마나 통제하기 어려운지 보여줬다.

일본의 유명한 여성작가 쓰시마 유코이 국내 언론에 기고한 대지진 체험기 일부를 옮긴다.

“원전이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선다면, 앞으로 결코 원전처럼 자연을 모독하는 것은 지구상에서 사용하지 않을 것, 이를 위해서라면 전기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노력하자고 호소하고자 합니다.
한국에서도 아무쪼록 원전 폐지 운동을 시작해 주십사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자연재해는 무서운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원자력에 의존하는 생활은 역시 너무 불손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은 화성환경운동연합 소식지 ‘좋은 인연’ 4월호에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일본원전사고 비상대책위원회 활동가가 기고한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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